메뚜기 헌터, 그게 바로 나야
바람이 불면 들판은 늘 바다처럼 출렁였다.
벼이삭들이 노랗게 고개를 숙이고, 억새풀들이 바람결에 몸을 흔드는 계절.
그 틈새마다 팔짝팔짝 메뚜기들이 뛰어 올랐다.
아이들 눈에는 메뚜기들이 다 보물처럼 보였는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잠자리채나 양파망 하나쯤은 들고 들판으로 나섰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집에 던져놓고, 신발만 갈아신은 채로 달려가던 그 길.
들판은 우리에게 놀이터였고, 메뚜기는 가을의 장난감이었다.
잡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
어떤 날은 두 손으로 조심스레 덮치듯 잡았다가, 또 어떤 날은 갑자기 튀어 오르는 녀석을 놓쳐 허공에 손만 허우적대곤 했다.
메뚜기가 내 뺨에 스치고 날아가면 기겁을 하면서도 이내 까르르 웃었다.
옷 속으로 들어온 녀석 때문에 뛰어다니며 발을 동동 굴리던 애도 있었다.
머리위로 뛰어올라 핀처럼 얌전히 앉아있기도 했고,
메뚜기 앞으로 조심스레 양파망을 들이멀면 그 안으로 스스로 들어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메뚜기를 잡다가 서로 부딪혀 구르는 바람에 흙투성이가 된 날이면, 엄마한테 혼날 걸 알면서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경쟁심도 대단했다.
누가 더 많이 잡았는지 보여주려고, 주머니를 뒤집어 와르르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면 풀잎 냄새와 함께 수많은 메뚜기들이 여기저기 팔짝거리며 달아났다.
잡은 게 한순간에 사라져도 이상하게 하나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았다.
또 잡으면 되니까. (요놈에 악마들)
그때는 친구들과의 내기를 한다는 사실과 그 순간의 웃음이 더 중요했던 거 같다.
그때 우리는 모두 장비도 나름 갖춘 채였다.
보통은 양파망을 들고 있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쓰던 걸 슬쩍 들고 나와 메뚜기를 담는 용도로 썼다.
어떤 친구는 페트병을 잘라 구멍을 내고, 끈을 매달아 목에 매달고 다니며 일명 메뚜기 호텔을 만들었다.
안에 풀잎을 넣어주면 메뚜기들이 며칠은 살 수 있다고 으스대기도 했다.
그 안에서 폴짝거리던 메뚜기를 들여다보며 “얘네끼리 결혼하면 애기도 낳는 거 아냐?”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메뚜기를 잡는 도중, 들판에서 벌어지는 작은 해프닝들도 잊을 수 없다.
종찬이는 메뚜기를 손에 잔뜩 모아두다가 한꺼번에 놓쳐버렸는데, 그중 하나가 얼굴에 철썩 달라붙었다.
그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고, 옆에 있던 우리 모두는 배를 잡고 웃었다.
또 재준이는 풀피리를 불면 메뚜기가 잘 모인다고 우겼다. 다들 호기심에 풀잎을 따서 입에 물고 불어댔지만, 휘파람 비슷한 소리만 날 뿐 메뚜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시간은 충분히 즐거웠다. 함께라는 것만으로 한참을 웃으며 놀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가 기울 무렵, 잡은 메뚜기를 양파주머니 가득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펜을 꺼내 불 위에 올렸다.
잡아온 메뚜기를 쏟아 넣고 뚜껑을 닫으면, ‘지지직’ 소리가 나며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다른 집 아이들은 그걸 맛있다며 잘 먹었지만, 나는 끝내 먹지 않았다.
손에 쥐고 뛰어다닐 때는 그렇게 재미있던 메뚜기가, 막상 불 위에서 튀어 오르며 볶아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징그럽기도 했고, 왠지 불쌍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잡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사실 나에게 메뚜기는 간식이 아니라 모험의 증거였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웃고 떠들던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볶아 먹는 건 그저 어른들의 몫일 뿐이었다.
가끔은 잡아온 메뚜기를 슬쩍 풀어주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펼치면, 메뚜기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파드득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작은 녀석이 날아오를 때 남기고 간 순간의 시원한 바람결이 손끝에 스치던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은 “왜 다 풀어주냐”며 아쉬워했지만, 내겐 그게 오히려 뿌듯했다.
다시 들판으로 돌아가는 메뚜기를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어느 날은 해가 다 저물 때까지 메뚜기만 쫓아다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 혼난 적도 있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변했고, 무릎은 풀과 흙에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날 잡은 메뚜기의 숫자를 세어 보느라 혼난 기억은 금세 잊혀졌다.
아이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날의 기록이었다.
“오늘은 삼십 마리나 잡았다!” 하고 자랑하면, 그날은 성공한 하루가 되는 셈이었다.
이제는 들판에서 메뚜기 떼를 보기 힘들다.
농약 때문인지, 도시화 때문인지, 아이들 눈에 메뚜기는 더 이상 금덩이가 아니다.
대신 휴대폰 속 게임과 영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가을 들판은 여전히 살아 있다.
벼 사이로 팔짝거리던 메뚜기, 그걸 잡으려다 헛손질하며 웃던 친구들,
그리고 엄마가 펜 뚜껑을 닫고 볶아주던 저녁의 풍경까지.
나에게 메뚜기 잡기는 그저 놀이였다.
잡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신났고, 풀밭 위에서 넘어지고 뒹구는 것도 하나의 모험이었다.
먹지 않았어도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웃으며 뛰어다녔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 웃음이 아직도 내 가을 기억 속에 팔짝팔짝 살아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여러분도 어린 시절 메뚜기나 곤충을 잡으며 놀던 기억 있으신가요?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혹은 개미나 콩벌레까지…
작고 별것 아닌 듯 보이던 곤충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어쩐지 알 수 없는 귀여움(?)마저 전해주곤 했죠.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누가 다시 곤충을 잡아보라 하면...
아마 저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줄행랑을 치고 말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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