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갈망 끝엔 낙망이 있었다.
재작년 여름 집에 돌아오는 길엔 늘 작은 쪽방촌을 지나야 했다. 재개발 투쟁으로 인한 빨간색 그래피티와 찢어진 천막이 비록 으스스했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가는 길은 그 자체로 산뜻하였다. 신발 밑창이 까진지도 모른 채 널브러진 돌을 질질 끌다 보면 그 자체로 안도감이 느껴지고는 했으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굳이 돌 때문은 아니고, 쪽방촌이 주는 특유의 온화함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방이 백열등을 때리는 소리. 길고양이 드르렁 코 고는 소리. 매미들의 구애와 귀뚜라미들의 합창소리. 부산스러운 번화가의 외곽에는 항상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 나는 열기를 내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그곳의 온화함을 좋아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친구 녀석과 함께 서교동 구석 빼기에 터를 잡고는 무작정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젊음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는 근사한 명목으로 살림살이를 들여놓았건만 우리는 엄마의 곁을 떠난다는 것이 그토록 버겁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곳에선 온종일 일과 돈에 시달리며 겨우 하루를 때웠다. 무릇 저녁이 찾아오면 허기를 달랬던 인심 좋은 백반집과 마트에서 대량으로 쟁여둔 냉동 만두만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해주었으리라. 밤이 되면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장에 손을 뻗어보았다. “그래도 어딘가에 우리 자리가 있겠지.” 잠에 들기 전 우리는 입버릇처럼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것은 일종의 각오였다. 앞으로 다가올 날은 비좁은 단칸방으로 끝내지 말자는 각오. 우리는 그 말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러기에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평범한 밤, 그러니까 보통의 소음과 고민들이 심야택시에 실린 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방황하며 도시의 열기를 지피는 그런 밤이면 그로 인해 달아나버린 꿈을 주워 담기 위해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그 이유를 고사하더라도 서울의 밤공기는 너무나도 황홀하여 잠을 청하기 섭섭할 지경이었다. 나는 매일 새벽 패딩 지퍼를 턱 언저리까지 쭉 올리고는 홍대의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늦은 새벽에도 불빛이 번쩍였고 주머니엔 동전이 짤랑거렸고 북서풍의 바람 탓에 코가 시뻘겋게 변했다.
나는 머릿속이 너저분할 때마다 거리 위를 걸었다. 내 하찮은 걸음새에 집중하다 보면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그 행위는 몽상을 허용하였기에 종종 이전에 스쳤던 판자촌의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하였다.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었으나 그 추상을 따라 걷다 보면 쓸쓸함이 씁쓸함으로, 씁쓸함이 그리움으로 뒤바뀌었다. 투박한 콘크리트 바닥에 움튼 섬약한 민들레 한 송이가 보고 싶었고, 처마 밑에 한 움큼 쌓인 물웅덩이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그 길을 배경 삼아 오고 갔던 그때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듬해 겨울 나는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가정식 백반에는 더 이상 가격표가 붙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청소나 빨래를 몰아서 할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얻은 것들, 이를 테면 각종 볶음밥의 레시피 혹은 세제 비율이나 종량제 봉투 가격 따위를 알게 된 나는 스스로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전보다 나는 성숙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거리도 바뀌었다. 영영 가난할 줄 알았던 허름한 동네는 이미 커다란 아파트가 들어와 입주민이 띄엄띄엄 불을 켜놓고 있었다. 황량했던 거리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신축 아파트의 페인트 냄새만이 나를 약 올렸다. 그 흔한 길고양이조차 종적을 감춘 그곳에서, 나는 문득 서울에 두고 온 나의 걸음과 발자국을 그리워했다. 이상했다. 나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며 그리워 한 곳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같은 길에도 다른 감정이 점재 하는 건 단지 주변의 색이 변해서일까. 어쩌면 마음의 색이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이 또한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고요히 불어오는 새벽바람을 붙잡아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