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나는 가을이 좋다. 상념이 시상이 되는 세상의 다정이 좋다.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을 지나온 우리의 성실함이 좋다. 선선한 공기와 찾아오는 무던한 기대가 좋다. 얌전히 불어오는 미풍의 바람이라든지. 바닐라빈을 듬뿍 넣은 따뜻한 라떼라든지. 이제는 초저녁만 되어도 날이 어둑해지고 크루넥 니트를 입어도 덥지 않아. 소슬바람과 가을비. 습기에 온정이 번져 빗방울 한 송이에 곧장 사랑을 덧댈 수 있는 그런 계절이 좋다. 나는 가을이 전유하는 것들로 하루를 대체한다. 먼 훗날, 여름과 겨울이 팽팽히 기울어져 가을의 부피를 줄일지라도. 가을의 언어로 여름의 흔적을 나는 서술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것을 사랑하려 애썼던. 열정 같은 것을 꾸준히 쌓아 올린 한없이 뜨거웠던 지난여름을. 가을은 차분하여 포용력이 있기에 그런 마음을 정돈하기에 적합하다. 과연 세심한 다정이 주는 그런 안정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