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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고충

by 해니

머리만 대도 어디서든 잘 잘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전생에 뭘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타고난 수면 복 덕분에 쉽게 자고, 많이 자고, 푹 잘 잤다. 하지만 세상에 나를 있게 한 존재는 그렇지 못했다. 예민한 기질로 신경이 늘 곤두서 있었기 때문일까, 숙희 씨는 일평생을 푹 자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선잠을 잤다. 밤이면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고 내내 뒤척였다. 낮잠 역시 잠깐 눈을 붙인다고 해도 문자 그대로 눈만 감고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에 나는 아기 때부터 알아서 잘 잤다. 엄마가 집안일을 하다 조용해서 돌아보면 혼자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효녀가 따로 없다) 밤에 잘 자는 건 기본이고 대중교통에서도 쪽잠을 푹 잤다. 엄마는 그런 나를 신기해했다.


숙희 씨의 ‘잠’과 관련해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던 일화가 있다. 결혼하고 시집살이를 시작한 엄마는 꽤나 긴장 상태에 있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할머니 눈에 엄마가 영 피곤해 보였는지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 지났을까. 조용하기에 방문을 열어보니 웬걸, 이불을 펴고 제대로 자기는커녕 방문 뒤에서 웅숭그리고 쪽잠을 자고 있는 며느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누워서도 편히 못 자는 사람이 그리 앉아서 잠을 자기는 했을까. 할머니의 보료를 당당히 깔고 마음 편히 자는 둘째 며느리와 비교가 되다 보니 더욱 짠하고 안쓰러운 첫째 며느리였다.


지금은 나도 엄마처럼 첫째 며느리지만 시댁에 가면 아주 잘...... 잔다. 원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는 시부모님이신지라 조금이라도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어서 들어가 자라고 하신다. 어디서든 잘 자는 며느리가 감사한 배려까지 받았으니 못 잘 이유가 없었다. 신혼 초에 시댁에서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왔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 왈,


“넌 거기서 잠이 오니?”


눈치잠이 일상이었던 엄마 눈에 딸내미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어른들이 자란다고 정말 자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면을 사랑하는 딸이 어디 가겠나요. 어이없어하는 엄마 앞에서 난 곰탱이처럼 웃었다.


숙희 씨의 수면의 질은 투병하면서 더욱 떨어졌다. 엄마가 밤새 앓는 소리를 내며 자기 시작한 건 기관지 내시경 이후쯤이었다. 안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 얇고 예민했던 기관지가 기구의 침범으로 과민해진 듯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게도 했고. 엄마는 기관지 내시경이 정말 최악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통증을 참느라 자면서 끙끙대던 소리가 습관처럼 자리하기 시작했다.


“으... 으윽... 어으윽...”


잠깐 조용해질 때도 있었지만 밤새 신음 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통증이 없을 때조차도 끙끙 앓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이런 컨디션에 당연히 잠을 깊이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본인의 소리에 이따금 깨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무의식이 내뱉던 소리는 이윽고 숙희 씨의 숙면 바로미터가 되었다. 굿나잇 인사를 하고 안방문을 닫고 나오면 한참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전원이 꺼지고 잠시 무음의 시간이 흐르면 엄마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때가 엄마가 잠든 타이밍이었다. ‘엄마가 왜 이리 괴롭게 잘까’ 속상해서 울 던 나날들이 지나고, ‘엄마가 잘 잠들었구나’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참 아이러니했다.


가족이 암에 걸리면 ‘왜 암에 걸렸지?’란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건 누구보다도 아팠던 숙희 씨가 제일 열심히 생각했을 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역시 ‘잠’이지 않을까 싶다. 까다로운 성격을 주셨으면 잠이라도 잘 자게 두시지. 언제나 그렇듯 하늘은 참 야속하다. 엄마는 늘 잘 자는 딸을 보며 부러워했었다. 다음 생에는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숙희 씨의 긴 영면이 새로운 생을 위한 단잠의 시간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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