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
완연한 가을이다. 단 하루만에 후덥지근한 습기가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으로 손바닥 뒤집듯 변덕스럽게 바뀌던 날, 가족과 함께 평창동 서울시립미술 아카이브로 향했다.
오늘 이 곳에서 열린 체험수업은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여러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아이들은 거기에 착안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이 달의 작가는 정정엽으로, 딸아이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팥 알갱이를 그리기 위해 하나 하나 자세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녀가 정성스레 그린 그림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배워가는 아이들 뿐 아니라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한 일상,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도 깃든 생명과 그를 위한 사려깊은 돌봄,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 수행과도 같은 매일의 무한반복이라는, 오늘 부모로 사는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 한 소박하고 보편적인 주제들을 떠올리게 했다.
딸아이 덕분에 나도 마음에 드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되어 좋았고, 수업이 끝난 뒤 즐거운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옆 건물에서 진행되는 전시에도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려하는 아이의 모습에 자주 함께 나들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음악, 미술, 춤과 같은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약속된 거짓말, 환상과 허구는 팍팍한 현실에서 맞닥뜨릴 때마다 나를 주저앉히는 차가운 진실보다, 언제나 꿈을 꾸도록 부추기고 삶을 지속하게 만드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소중함을 더욱 깨닫고 있다. 우리가 명백하다고 믿는 수많은 진실 또한 누군가에 의한 주장일 뿐 그에 반하는 진실이 늘 존재하는걸 보면, 건강을 위해서는 환상과 허구에 온전히 빠져들어보는 것도 유익할 지 모른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면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여기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는 해봐야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보도록 해. 너희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해. 늦게 시작할수록 찾기가 더 힘들것이다.“
“진실은 발을 차갑게 하는 작은 이불같은 것입니다. 잡아당겨도, 늘어뜨려도 이불은 부족합니다. 무슨 수를 써봐도 이불은 우리를 덮어주지 못합니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뿐입니다.“
라고 그 때 그 시절 낭만 한도초과였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그랬던가? 살자!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날 함께 다시 보고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