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 수업 시수와 그나마 남아있던 의욕마저 산산히 부숴버리는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은 열의나 애정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소진되어 있어, 늘 지치고 짜증스러운 모습이었다. 걸핏하면 숙제를 잔뜩 내 주었고, 그 숙제를 집이 아니라 수업시간에 하도록 했다. 간혹 그럴 때 선생님 뭐하나 살펴보면 교탁 옆에서 끄떡 끄떡 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후의 여유로운 낮잠 같은 것이 아니라 피곤에 쩔어 꿀 잠을 자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게다가 나는 중학교 입학 전에 이미 3학년 과정까지 마치는 엄청난 선행학습을 받고 들어간 터라 모르는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이 한심할 정도로 지루했다.
그렇다고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문제집에서 시험 문제를 슬쩍 베끼는 경우가 많아, 참고서보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던 나는 거기 적응하지 못해 번번히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갈까 말까 했고, 심지어 반에서 15등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전교 15등이라고 해도 꼴등 취급할 부모님에게 반에서 15등이라는 것은 사형 집행 명령서까지 받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긴급조치가 내려졌다.
피아노 금지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부모님은 공부 방해 요인으로 책들을 추가 지정했다. 국민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랑 거리였던 독서가 하루 아침에 공부를 방해하는 몹쓸 행동으로 규정되어 버렸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야 할 결정적 시기에 그만 도덕적 혼란과 딜레마를 겪은 셈이다.
긴급조치에 따라 참고서를 제외한 책들이 모두 봉인되었다. 한때는 “세상에, 우리 애가 이런 책을 다 읽어요.”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대상이 되었던 나의 수많은 책들이 상자와 노끈으로 결박되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탈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끔찍하다 못해 신기했다.
피아노는 아예 여동생 방으로 들어가 버려 밤에 몰래 약음기 걸어놓고 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레코드 판 듣는 것은 허용되었다.
대신 레코드 판은 당근 역할을 새로 맡게 되었다. 시험 쳐서 성적이 올라갈 때 마다 레코드 박스 세트를 하나씩 사주기로 한 것이다. 이게 그나마 나의 숨통을 열어놓은 숨구멍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긴급 조치는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학교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 도서관이 지금 같은 개가식이 아니라 듀이10진법에 따라 분류된 도서카드를 찾아 청구번호를 적어서 내면 사서가 책을 찾아 주는 폐가식 도서관이었다는 것이다. 책 한 권 빌리는 게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그 역시 해결책을 찾았다. 학교 도서부원을 자원한 것이다. 사서선생님 혼자 3천 명이 넘는 학생들을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도서부원이 많이 도와주어야 했는데, 이는 즉 서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들을 뽑았다는 뜻이다. 나는 바로 도서부원에 뽑혔고 덕분에 보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꺼내어 볼 수 있었다.
긴급조치는 그렇게 돌파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남자로 가득한 사회에서 생활해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로선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남녀공학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남자반 여자반이 나뉘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자층, 여자층까지 나뉘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는 무시무시한 학생부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간 교류는 학생회 임원이나 교지 편집반 따위를 하지 않는 한,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결국 나는 시커먼 남학생들만 –그 당시 교복 색깔 때문에 정말 시커맸다- 70명이 넘게 득실거리는 교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나는 국민학교 때도 여자 아이들과 더 친하게 지냈고, 남자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클래식 음악, 시, 소설을 좋아하고, 조용필의 촛불, 고추잠자리, 마이클 잭슨의 쓰릴러, 빌리 진 같은 노래를 들으면 무슨 끔찍한 소음이라도 들은 양 몸서리를 쳤으니 남학생들과 어울릴 래야 어울릴 수 없었다. 지금도 나는 남자들만 있는 모임에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 반 70명 남자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노래’도 모르고, 이상한 책들이나 읽고, 만화도 안 봐, 오락실도 안 가, 공부마저 반에서 10등 내외로 별 볼일 없었으니 이지메는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점심은 으레 혼자 먹었다. 같이 먹자는 친구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도시락 까먹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밥을 먹고 교정 구석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사소한 재미 거리를 찾는 고약한 녀석들이 기어코 내가 숨어있는 구석까지 찾아와 놀리고 괴롭혔다. 하지만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미가 없었는지 저 새끼는 으레 그런 놈 하며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1학년 2학기 첫 시험에서 무려 전교 3등을 했다. 무슨 수로 그렇게 점프했는지 지금도 영문을 모르겠다. 어쨌든 반에서도 10등 밖을 맴돌던 내가 단숨에 전교 3등까지 치고 올라가자 다른 학생들, 담임과 여타 선생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뒤집어졌다. 중학교에서는 석차가 바로 신분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방해받지 않고 충분히 학교를 즐길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
‘두이노의 연가’를 읽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푹 빠진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말테의 수기’를 덜렁덜렁 흔들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음악실과 계단 사이의 창고로 갔다. 낡은 책상을 보관해 두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아직 쓸만한 책상과 의자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이것들을 활용하여 가장자리를 낡은 책상 의자로 두르고 가운데에 의자 하나를 놓으면 마치 성곽 속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실제로 그것은 나의 성곽이었다.
그러나 10분만에 나의 고독한 독서가 깨어지고 말았다.
“야, 권오석!”
굵은 바리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난 한 달간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는데 누구지? 혹시 새로 전학 온 일짱이라도 되나? 나는 조심스럽게 침입자를 확인했다.
성곽 너머로 싱글벙글 웃는 침입자의 허연 얼굴이 보였다.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꽂아 이름표를 훑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이름표에 ‘권정우’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읽고 있던 ‘말테의 수기’를 떨어뜨렸다.
“정우? 어, 너 정말 권정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올망졸망하고 귀여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표가 없었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몸집이 아주 커졌다. 키가 훌쩍 자라 어른 키와 별로 다르지 않았고, 따로 운동을 하는지 요소요소 근육들이 단단하게 붙어있었다. 팔뚝이 웬만한 학생 종아리 같았고, 다리는 무슨 기둥 같았으며, 허리는 용수철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탄력이 가득했다. 어느 모로 보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딱 학교 운동부처럼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튀었다. 운동선수를 연상케 하는 몸통 위에 앳되고 곱상하고 연약해 보이는 얼굴이 올라앉아 있었는데, 깨끗하고 윤기가 감도는 피부는 마치 백자 정병 같았다. 그 위에 약간 장난기가 도는 눈동자가 쐐기처럼 박힌 짙은 눈썹 아래에서 반짝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굼실굼실한 곱슬 머리였다. 윤기가 돌아 반짝이는 머리는 웨이브가 살짝 들어가서 아주 직선은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만 곡선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마를 휘감고 귀를 덮으며 물결치며 흘러내렸다. 이게 말이 되나? 남학생이라면 모두 까까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어야 하는 중학교에서 이런 머리를 하고 있다니?
궁금증은 뒤로 하고 일단 인사부터 했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이름표 없었으면 못 알아보겠어.”
“피장파장. 나도 이름표 보고 불러 본 거거든. 남들 다 뛰어 놀 때 혼자 찌그러져서 릴케 읽고 있는 녀석이 너 밖에 더 있어? 그래서 혹시 하고 이름표를 훔쳐봤더니 권오석인 거지. 하하.”
정우가 통쾌하게 웃었다.
“네가 나 그렇게 이상한 놈으로 생각하는 줄 몰랐네. 야, 그런데 웬일이야?”
“눈은 어따 두고 그러셔? 자, 교복을 봐라. 이거 서영 중학교 교복. 안 보여?”
“너 예술 중학교 다니는 거 아니었어? 미우 누나 다니던 그 학교?”
“이번 주부터는 서영 중학교 학생이야. 전학 왔어.”
“아니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술중학교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피아노 금지령 때문에 슬픔 속에 잠긴 나에게 피아노가 아예 교과목인 학교가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그런데 그런 학교를 때려 치우다니?
“뭐, 그냥. 학교 멀어서 다니기도 귀찮았고, 또 뭐 배울 것도 별로 없고. 그렇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랬지 뭐."
정우가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아, 그리고 뭣 보다도.”
자기 머리카락을 향한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머리를 만지작 거리던 정우가 눈을 찡긋했다.
“이 머리. 그 놈의 학교가 머리 깎으라고 자꾸 갈구는 거야. 학생은 학생답게 단정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아니 왜 군인처럼 머리를 깎아? 난 싫거든.”
“어차피 다들 깎아.”
“하지만 난 싫어.”
“너 그런 거까지 신경 써? 머리에 신경 안 쓰면 오히려 피아노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아?”
이런 말도 안 되는 모범생 논리라니? 하지만 정우는 내가 뭐라고 말하든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냥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난 음악가야. 학생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고, 음악가. 무대에서 연주해야 해. 여기서 뿐 아니라 온 세계에서.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양아치 같은 애들이 머리를 빡빡 밀어. 독일 사람들은 나치 돌격대 생각난다며 소름 끼쳐 하고. 빡빡머리? 아예 교복 입고 공연하라고 하지?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연주할 땐 소리 뿐 아니라 객석에 보이는 모습도 중요해. 연주하는 곡목에 따라 얼굴 표정, 복장 이런 거 다 신경 써야 해. 안 그러면 그냥 녹음기를 틀지, 왜 비싼 돈 내고 콘서트 홀에 가며, 눈 감고 소리만 듣지 왜 별로 움직이지도 않는 연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래서 퍼포먼스라고 하는 거라고.”
정우는 그냥 겉멋 든 날라리들처럼 외모에 신경 쓰느라 머리카락에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위해 다양하게 연출해야 할 자신의 모습이 빡빡머리라는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적어도 본인 말로는 그랬다.
흔히 사람들은 디누의 천재성을 뛰어난 연주 혹은 작곡 능력에서 찾았지만, 나는 음악보다도 바로 이런 순간에 천재성을 느꼈다. 정우는 또래는 물론 어른들 보다도 훨씬 넓게 보고 멀리 보고 깊게 생각했다. 연주를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선생들이 이런 학생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학교에다 그렇게 얘기 했어?”
“당연하지. 난 말을 속에 품고 다니지 않아. 당장 학생주임한테 난 아까 말한 그런 이유 때문에 머리를 깎을 수 없다, 허락해 달라 그랬지. 그랬더니 당장 음악부장을 부르대? 그리고 그 음악부장이라는 선생이 뭐라 그랬는 줄 알아? 건방 떨지 말래. 건방! 어린 놈이 무대는 무슨 무대냐고. 배운 거 연습이나 하지 무슨 퍼포먼스냐 그러면서. 그러더니 이 학교 학생들은 다 너 정도는 칠 수 있는 애들이니까 혼자 잘난 척하지 말래.”
“그래서 그냥 있었어? 절대 그냥 안 있었을 것 같은데?”
“당연한 말씀. 건방 떨지 말라니? 누구한테 그딴 소리를 하는데? 다들 나 정도는 되는 애들이라고? 아니 어떻게 나를 원숭이 겨우 면한 녀석들하고 같이 비교를 하는데?”
난 정우의 그 터무니없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고 거만한 말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루쩨른 콩쿠르에서 3등에 입상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봤기 때문이다.
국민 학교때 어른들 나오는 국내 콩쿠르에 덤비더니 중학생 된 다음에는 아예 국제 콩쿠르에 덤볐구나 싶었다. 이 대회는 35세 미만의 젊은 음악가들이 기량을 겨루는 그런 국제 대회다. 13세 이상 35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있었는데, 실제로 하한선은 의미가 없었다. 13세가 넘었다고 그 대회에 덜컥 나서는 청소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다. 더구나 3위에 입상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게. 그 선생님 이상하네. 넌 말하자면 세계대회에서 동메달 받은 거잖아? 그런데 건방 떨지 말라니?”
“메달 같은 건 받지 않았어. 그냥 상패만 받았지. 그리고 내가 세계대회에서 몇 등 했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선생님이랑은 왜 싸웠어?”
“루체른 3등 정도가 뭐 대단한 건 아니야. 그래도 그 정도 수준의 아이들이 예술중학교에 득실거린다는 건 말도 안 돼. 난 루체른에서 많이 배웠어. 1, 2등 한 사람들 뿐 아니라 결선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예술 중학교 선생만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기량으로나 열정으로나. 그런데 저 원숭이 새끼들을 그 사람들에게 비교해? 너무하잖아? 그래서 딱 꼴아 보며 말했지. ‘이 학교에 저 정도 칠 수 있는 애들이 널렸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애들은 커녕 선생님들 중에서도 없을 걸요?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머리를 깎겠습니다. 스포츠 형이 아니라 아주 스님처럼 싹 밀어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이야. 하하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정우는 겸손하고 말수가 많지 않은 아이였다. 솔직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저런 거만한 대사라니. 그리고 그걸 무용담이라고 펼치는 오만방자한 모습이라니?
“아 이랬더니 음악부장이 얼굴이 파래지면서 나를 노려보는 거야. 난 ‘음 이제 한 대 얻어맞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쫄지 않은 척하며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지. 사실은 좀 무섭기도 했어.”
정우는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 아니면 알아도 고려하지 않는지, 계속 무용담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팰 것 같은 모습으로 음악부장이 ‘그 말, 당장 증명해라. 이 자리에서.’ 이러는거야. 그런다고 내가 물러설 것 같아? 그래서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지정하는 곡을 연주해 드릴게요. 아무 곡이나 정해 주세요. 그럼 선생님은 제 연주를 듣고 솔직하게 판단해 주세요. 저 정도 학생이 이 학교에 정말 수두룩하게 있는지’ 이렇게 말했지.”
“아니, 선생님하고 피아노로 맞장을 뜬 거야?”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들어 달라는 거지 뭐. 하여튼 그랬더니 음악부장이 의기양양하게 ‘쇼팽 전주곡 작품 28, 1번부터 24번까지 쉬지 말고 한 번에 다 연주하도록.’ 이러는 거야.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돼. 설마 중학교 1학년이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싶었겠지. 하지만 난 문제 없었거든. 그래서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았어. 어떤 선생님이 ‘악보 갖다 줄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프렐류드 스물 네 곡을 이어서 연주해버렸지. 마치 한 곡처럼 말이야. 마지막의 세 번 D때리는 부분, 땅, 땅, 땅, 이거 당 타이선 처럼 주먹으로 갈겼다. 하하. 어쨌던 그렇게 마무리 하고 나서 음악부장한테 말했지. ‘자, 이제 평가해 주시죠?’ 이렇게. 대답은 안하고 나를 막 노려 보대? 한참 그러더니 교무주임한테 가서 ‘이 녀석 전출 절차 알아보고 학부모 소환하세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이 학교로 왔어.”
“여기서는 머리 그렇게 하고 다녀도 된데?”
“특별 허가 받았지. 나 외국 나가 있는 동안은 출석으로 인정해 준다고도 했고.”
“와. 정말, 와.”
와, 와, 이 외마디 감탄사 말고는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정우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는 것도 놀라웠고, 학교에 그렇게 당당하게 대들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정우가 다시 곁에 나타난 것은 무조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