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편소설 디누 1부 16화
사춘기 디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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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를 다시 만나면서 나의 중학교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만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같이 읽었다. 정우에게는 당시 청소년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선망했던 최고의 귀중품, 워크맨이 있었다.
나는 건전지만큼은 내 돈 주고 산다는 얄팍한 조건으로 그 워크맨을 공유했다. 정우 가방에는 언제나 카세트 테이프가 한 가득이었고, 일주일 단위로 그 한 가득이 교체되었다.
그런데 정우는 유난히도 모차르트 오페라를 많이 들었다. 들려주는 놈 마음이니 뭐라할 수는 없었지만 ‘피가로의 결혼’, ‘코지판투테’, ‘돈지오반니’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듣다 보니 나중에는 이태리어로 된 가사를 다 외울 정도였다. 다음에는 교향곡이나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를 거의 외울 지경으로 들었다.
마침내 “모차르트만 듣네?” 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모차르트 공부 중이야. 내년에 쮜리히 콩쿠르에 나갈 거거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우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쮜리히 콩쿠르는1라운드, 3라운드가 모두 모차르트야. 1라운드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소나타 중 선택인데, 참가자들도 심사위원들도 대체로 모차르트를 선호해. 3라운드는 아예 모차르트 협주곡 중 하나를 연주해야 한다고 못박아 놓았고, 결선에서는 슈만,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쇼팽 협주곡 중 하나를 연주해.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결선까지 못 간다고. 그런데 모차르트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성악곡들을 철저히 이해해야 해. 내 생각에 모차르트는 최초의 악상을 피아노가 아니라 사람 노래 소리로 떠올렸을 거야. 베토벤이나 쇼팽은 처음부터 피아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오페라가 제일 중요해. 모차르트는 늘 오페라를 만들 때만 스스로 작곡하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곡을 쓸 때는 훨씬 덜 진지했으니까.”
“그렇게 까지 준비해야 해? 모차르트는 쉽잖아? 나도 어렵지 않게 치는 걸?”
“하, 어렵지 않게 친다고? 네가?”
갑자기 정우가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 물론.”
예상도 하지 못했던 그의 격렬한 반응에 당황한, 즉 쫄아 버린 나는 고개를 숙이며 나의 망언을 얼버무려야 했다.
“미스 터치도 나고 그러긴 해. 어떤 부분은 손가락도 막 틀리고. 하지만 베토벤이나 쇼팽보다 쉬운 건 사실이잖아?”
“크큭. 모차르트가 쇼팽보다 쉽다. 쇼팽 본인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걸? 하긴 아마추어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긴 하겠다.”
예상보다 빨리 그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모멸감을 느끼면서 골이 났다.
“그럼 아마추어한테 뭐가 어려운지 가르쳐줘. 난 모르겠거든.”
“야, 그러지 말고 음악실에 가자.”
“지금? 음악 시간 아닌데?”
“뭐 어때? 우리 학교잖아? 그러니까 우리 음악실이잖아? 우리가 왜 못써? 가자.”
정우가 성큼 일어서더니 나를 잡아 끌었다. 가자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 음악실에는 비록 낡기는 했지만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음악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자, 한 번 쳐 봐.”
정우가 건반을 가리켰다.
“뭐?”
“쳐 보라고. 모차르트.”
“아니, 어떻게. 네 앞에서 쪽 팔리게.”
“괜찮아. 네가 아마추어고 내가 프로인 거 피차 알고 있잖아? 뭐 어때? 해 봐.”
그 단호한 손짓과 눈빛에 나는 살짝 두려움까지 느꼈다. 피아노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마치 총구가 다섯 개 달린 개틀링 기관총처럼 보였다.
하는 수 없이 테러리스트 앞의 인질 마냥 꾸물꾸물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텅
정우가 피아노 뚜껑을 열자 여러 현들이 공명하면서 묘한 음향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그 공명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모차르트의 K330번 C장조 소나타의 1악장을 연주했다. 모차르트 소나타 중 제일 쉽다고 생각한 곡이며, 내가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소나타였다. 몇 군데 틀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연주를 마칠 수는 있었다.
그러자 정우가 박수를 세 번 쳤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딱 세 번 쳤다.
짝, 짝, 짝.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나는 싸움에 패하여 적장 손에 운명을 맡긴 무사 같은 얼굴을 하고 눈치를 살폈다.
“자, 그럼.”
정우가 성큼성큼 피아노 앞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같은 곡 해 볼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가시 방석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거의 점프하다시피 그 불편한 피아노 앞에서 몸을 빼돌렸다.
“자, 잘 들어. 네가 방금 쳤던, K330번을 내가 치면 어떻게 되는지.”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은 정우가 천천히 건반 위에 손을 올리더니 아까 내가 쳤던 바로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아름다웠다. 오른손이 내는 소리는 구슬이 굴러 가는 듯했고, 왼손이 내는 소리는 마치 큰 사찰 입구에 세워놓은 당간 지주처럼 육중하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중력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 같았다.
공기처럼 가볍게 도약하는 오른손이 내는 소리는 자유의 속삭임이었다. 시간을 행복한 도약으로 채우라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 유혹은 너무 치명적이었지만 때때로 들려오는 왼손의 장중한 충고가 균형을 잡아주었다. 날아감과 주저앉음 사이에서 이렇게 서 있고, 앉아 있음이 즐겁게 느껴졌다.
정우가 아니 모차르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 세상이 천국이다!
나는 내가 이 곡을 칠 수 있다고 말 한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머리를 벽에 들이 박고 싶었다.
이때 갑자기 불쾌한 불협화음, 혹은 화성 밖 음정이 하나 들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나의 시간을 채워주던 행복감이 순식간에 바늘구멍 난 풍선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곡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후 들리는 소리들이 한동안 뚱땅띵땅 거리는 금속성 소음으로만 들렸다.
‘그만, 그만, 더 듣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그 상태로 1악장이 끝났다. 나는 박수도 치지 않고 그냥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자 어땠어?”
정우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전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하여간 넌 솔직하다니까. 그래서 난 네 솔직한 귀가 꼭 필요한 거고. 솔직히 별로지?”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어느 시점 까지는 정말 좋았어. 내가 이 곡을 칠 수 있다고 말한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였나 생각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듣기 싫어졌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딱 한 음 틀렸을 뿐인데, 그나마 그 다음부터는 하나도 틀린 부분이 없었는데. 미안해. 이렇게 말해서. 하지만 그 한 음 틀린 다음부터는 이거 언제 끝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
갑자기 정우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거야. 권오석, 너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훌륭한 귀를 가진 녀석이야. 너, 절대로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사실 아까 한 음 틀린 것도, 그리고 그 다음부터 네가 듣기 싫어진 것도, 다 내가 일부러 한 거거든.”
“일부러 그랬다고?”
“모차르트가 쉽다고 하길래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모차르트 음악은 정말 큰 행복감을 줘. 게다가 그 느낌은 전염되거든. 청중이 행복하고, 연주자도 행복하고 심지어 피아노까지 행복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딱 한 음, 딱 한 음이라고. 딱 한 음 틀린 것 때문에 천국이 주저앉아버렸다 이거야. 미스 터치 뿐 아니라 강약이 조금 어색해도, 템포가 조금 어색해도, 뉘앙스가 조금만 어긋나도 모차르트 음악은 그대로 수직 낙하야. 그냥 뚱땅 띵땅 거리는 악기소리, 그것도 국민 학생도 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소리로 몰락한다고. 그래서 대가들은 모차르트를 두려워하고, 어린이들은 모차르트를 우습게 안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나는 모차르트를 두려워하는 어린이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일년 내내 매달렸어.”
“그렇다면 넌 성공한 거야. 네가 일부러 틀렸다고 한 부분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하하하. 일부러 틀렸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정말로 그 말을 믿냐?”
“그럼, 일부러 틀린 게 아니었어?”
나는 미스터치가 났던 부분의 악보와 정우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악보는 정말 간단했다. 바이엘 연습곡만 배워도 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음표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이런 걸 정우가 틀렸다고?
“글쎄.”
정우가 피아노 뚜껑을 닫으며 애매하게 마무리했다.
“나도 모차르트 공부 시작하기 전에는 설마 그럴까 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계속 틀려. 한 번 틀리면 그 다음부터 완전히 엉켜버려 작품 전체 말아먹고. 연습을 백 번 해도 한 번 틀렸던 곳은 계속 틀리고, 아무리 연습해도 도대체 연주가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대가들 음반을 들어보면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이 환상적이고 아름답단 말이지. 완전 늪이야. 공부가 해도 해도 끝이 없어.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오페라야.”
“오페라? 왜?”
“말했잖아. 모차르트는 첫 악상이 피아노가 아니라 성악으로 나오는 사람이라고.”
“아니, 내 말은 왜 하필 오페라냐는 거야. 미사곡도 있고 모테트도 있는데?”
“그건 집에 가서 얘기하자.”
“집이라니?”
“우리 집 가자고. 오늘 학교 끝나면 같이 가자.”
“아니, 그게…”
“왜? 4학년 때도 우리 맨날 그랬잖아? 지금이라고 안 될 게 뭐 있어. 너 피아노도 금지당하고, 책도 못 읽게 되었다면서? 우리 집에선 다 되잖아? 그 때는 레코드 판만 있었지만, 지금은 비디오도 있어. 가자. 가서 오페라도 보고, 발레도 보고 그러자.”
이런 감언이설에 어찌 귀가 솔깃해지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위용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우의 모습 위에 계속 오버랩 되었다.
이때 정우는 마치 내 마음 속의 영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양, 사춘기 소년의 자존심을 꿰뚫어버리는 치명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너, 설마 아직도 귀가시간 정해져 있는 거야? 중학생인데?”
“그런 건 아니지만.”
“좋아, 그럼, 이따 종례 끝나면 너희 반으로 갈게 같이 가자.”
정우가 이마에 흘러내린 고수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덧니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으, 응.”
“하하. 솔직히 너 많이 봐준 거다. 모범생 권오석 생각해서. 나 지금 기분 같아서는 오후 수업 그냥 째고 바로 가고 싶었거든. 물론 넌 절대 안 된다고 펄펄 뛰었겠지.”
허어, 이걸 배려해 줘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생각해 주는 것 같기도 했고, 약 올리거나 조롱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중학생 씩이나 되어 집에 늦게 들어가면 엄마한테 혼난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얼마 안 있으면 인민군도 무서워하는 세상의 중심 중2 아닌가?
“종례 끝나면 너희 반으로 갈게.”
이렇게 정우와 약속을 하고 음악실을 나서려는데 언제나 너무 짧기만 한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구슬프게 울렸다. 정우와 피아노 앞에서 놀다 보니 화장실도 가지 못했는데 이미 5교시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방광은 임계선을 한참 전에 넘어서 있었다.
수업시간에 늦었지만 화장실까지 들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교 화장실은 건물 밖 후미진 곳에 있는 문자 그대로 ‘공중 변소’였다. 그러니 변소에 들렀다 교실로 들어서니 이미 5교시가 시작한지 6분이 지나고 말았다. 살금살금 뒷문으로 숨어들어갔지만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이마를 찌푸리고 교실에 들어오는 국어선생님의 찌그러진 눈이 작렬했다.
엎드려뻗쳐 15분에 덤으로 몽둥이 찜질까지 받았다. 그렇게 5교시에 고생을 하고 나니 6교시에는 잠이 쏟아졌다. 덕분에 끄덕 끄덕 졸다 평소에 나를 무척 아껴주던 지리 선생님의 눈에 실망과 배신감의 기운이 감돌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업시간을 억지로 마치고 나니 총알 종례로 유명한 담임이 들어와서 “자, 마치자.” 이 한 마디만으로 종례를 끝내 버렸다.
바로 정우네 반으로 갔다. 그런데 1학년 14반부터 18반까지는 별관 1층, 1반부터 13반은 본관 4층에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걸어가서 다시 계단을 한바탕 올라간 다음에야 정우네 반인 2반 앞에 갈 수 있었다. 2반 담임은 살인적으로 종례가 길기로 유명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우가 청소 당번까지 걸렸다. 결국 나는 30분 넘게 더 기다려서야 교실 밖으로 나오는 정우와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