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겨 붙은 피자 같은 마음

<아빠>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아빠) 그려 조심히 가앙~ 서울... 끊으면.. 해주고...

(나) 응 아빠. 서울 도착해서 전화할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문밖을 나서는 순간 조금만 참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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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번에 올 때.. 꼭.. 밥 먹지 마아

(나) 밥 먹지 말라고? 응 가서 같이 먹어

(아빠) 오케이!!!


늘 내가 사 가지고 간 점심을 같이 먹는데 갑자기 왜 밥 타령인가 했더니, 이게 웬걸. 아빠가 이마트에서 대형 피자를 미리 사 두신 것이었다. 옷장 밑에 꼭꼭 감춰서.


아빠가 밥 먹고 오지 말라는 말이, 밥을 사 오지 말라는 말임을 그땐 몰랐다.


어느 때처럼 나는 밥을 사 가지고 갔다. 근데 집에 아빠가 없었다. 친구분들이랑 추어탕 집에 있다는 말에 1차 짜증이 났다. 그러나 꾹 참고 말했다.


-알았어. 친구분들이랑 먹고 천천히 와.


혼자서 사온 밥을 먹고 있는데, 10분쯤 지났을까. 온전치 않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아빠는 땀이 뒤범벅이 된 채로 현관문에 서 있었다. 그런 아빠를 보자 화가 났다.


(나) 아니 내가 천천히 오라니까 왜 빨리 와!!! 또 빨리 걸어왔지?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빠) 아 덥다.. 옷.. 이거..

(나 : 외투를 벗겨드리며) 빨리 걸어 다니니까 덥지!! 천천히 걸으라고!!!


아빠는 웃는다. 그리고 옷 행거 아래 숨겨둔 대형 피자 박스를 가리키며 빼라고 한다. 이걸 왜 숨겨놓은 거지? 의심할 사이도 없이 아빠는 '마치 엄청난 보물을 내게 보여주는 듯' 흡족한 얼굴로 피자를 같이 먹자고 했다. 방금 밥을 먹은 내게 피자를 먹으라는 것이다. 배불러서 먹지 않겠다고 하니, 당신이 배가 고프시단다.


추어탕집에서 친구들과 기어코 밥을 안 먹고 오신 아빠.

... 짜증이 났다.


(나) 아빠 나 이런 피자 안 좋아해. 용돈 주면 아빠 필요한 거 사라고 주는 건데 왜 나랑 먹을 밥을 사!! 그리고 친구분들이랑 먹고 오라니까 왜 안 먹고 와. 사람들이 내가 빨리 오라고 뭐라 한 줄 알 꺼 아냐!!!

(아빠) 에이.. 아냐... 이거 먹어..

(나) 배불러 안 먹어.

(아빠) 에이.. 먹어.. 응?

(나) 싫다니까???


한껏 짜증을 부렸지만 결국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한 조각씩 먹었다.


(아빠) 아이~ 맛있다.

(나) 아빠 앞으론 이런 거 사놓지 마 응?

(아빠 : 배시시 웃으며) 알았어!


삐뚤삐뚤 걷는 아빠가 들고 온 피자는 모양이 다 구겨져 있다. 얼키설키 엮인 모습이 내 마음 같다.


(나) 아빠 잘 먹었어!! 내 생각해서 사다 줘서 고마워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

마음이 아리다.


고마움을 짜증으로 표현하는 부족한 마음,

건강한 게 벼슬인 세상 못된 딸.



IMG_3753.JPG 엉겨붙은 피자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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