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이상 버티는 간병인을 구하지 못하다.

<장애인> 뇌경색에 걸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

by 정겨움

1년이 넘는 병원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간병인'.


나... 정말 할 말 많다.

타인에게 내 가족을 맡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나 표현을 못하고 몸을 못 가누는 아빠를 구박이라도 하면? 절대 내가 ‘갑’ 일 수 없는 처지였기에, 간병인 분들께 최대한 친절하게 잘해 드렸다. 그러나 그럼 뭐하나, 우리 아빠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시는데!

-아버님을 감당하지 못하겠어요.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분으로 구해주세요.

간병인만 10번 넘게 바뀌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샤워를 하고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TV도 보고 누워서 잠도 많이 자는데 우리 강 사장님은 그런 게 없다. 자기 전까지 쉬지 않고 너무 열심히 (의사들이 저지할 정도로) 운동을 하시니 간병인들은 역시 쉬지 못하고 옆에서 계속 지켜보는 것이 피곤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더러운 성질머리였다. 아빠를 부축하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했거나, 허락 없이 아빠 옷을 정리하거나 (아빠가 옷 속에 몰래 용돈을 숨겨 놓아서 예민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여자 화장실을 착각해서 들어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아빠는 폭발했다. 간병인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건 기본이요. 단어도 제대로 발음 못하던 시기에도 욕을, 욕을, 쌍욕을 걸쭉하게 뽑아냈다.

놀라웠다..

내 이름도 발음 못하고 단어도 틀리는 분이...

욕은 정말 누가 들어도 “욕이구나” 알 만큼 분명하고 또박또박하게 발음하는 것이...

그렇게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하니 간병인들이 3일 이상을 버티질 못했다.

아빠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설명하고, 타일러도 그때뿐이었다. 화가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겠지..

그렇게 간병인 분들께 바뀜을 당하다가 한 조선족 아저씨를 만났다. 처음에 뵈었을 때, 부리부리한 눈빛과 인상이 살짝 무서웠다. 말씀이 많지 않으셨지만 간병일을 오래 하셔서 아빠를 일으키거나 부축할 때 요령이 있었다.

주말에는 아저씨를 함께 모시고 나가서 아빠와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아저씨는 소주를 좋아하셨는데, 딱 두 잔을 드셨다. 그리고 내가 아빠를 돌봐 드리는 틈에 사우나를 다녀오시거나, 낮잠을 주무시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삼 주일이 지났다. 아저씨는 아빠가 화를 내면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다. 소리 지르고 욕하는 아빠를 홀로 두고 구석에 가 계시곤 했는데, 내가 원하던 그런 분이었다!!!!! 우리 아빠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아저씨가 음악을 자주 듣는 걸 알고 뽕짝 노래도 다운로드하여서 갔다 드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연말에는 카드도 보냈다. 울 아빠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나 보면서 참는다고 말씀해 주셨던 아저씨.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그래도 겨움이 같은 딸 없다. 내가 간병 생활하면서 겨움이 같은 딸 처음 본다. 잘하고 있다."라고 항상 격려해 주셨다.

결국 아빠가 크게 한 건 하셔서 아저씨마저 그만두시게 되었지만, 후에도 생각이 나서 전화한다며 한참 연락을 주셨다.

돌이켜보면 아저씨가 안 계셨다면, 가장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거웠던 그 시기에 아빠를 제대로 못 모셨을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던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이제는 연락할 수 있는 방법마저 사라졌지만, 어디에 계시든 간에 아저씨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 글이 닿고 닿아서 아저씨 좋아하시는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생각해 보면
단 하나도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게 없다.

코끼리운동 열심히 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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