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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Nov 08. 2024

갈등회피, 대화부족, 공감상실

회피는 쉽고 대화는 어렵다 |마을공동체

+사과 謝過 :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빎.

+자중(自重) ❶자기 몸을 소중히 여김. ❷품위를 지켜 몸가짐을 진중鎭重히 함.

+동성애(同性愛) →동성애 同性戀愛 동성끼리 하는 변태적 연애, 동성애

+정체성 → 정체(正體) ❶본디의 참모습. 본체. ¶정체불명. ❷본마음

+변태(변태) ❶모습이 변하는 일, 또는 그 변한 모습. ❷식물의 줄기잎 뿌리 등이 보통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변하는 일.  동물이 알에서 부화하여 성체(成體)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일. 탈바꿈. 변태 성욕의 준말

+변태성욕(變態性慾) 본능의 이상이나 정신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변질된 성욕 [동성애나 마조히즘 따위.] [성적 도착 (性的 倒錯) 준말. 변태


 *출처 : 아마도 스무 살 더 먹은 책장에 꽂힌 국어사전



근처에서 교육감 간담회를 한다기에 마실 나가듯 갔다가, 유튜브 짤로 국회 청문회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듣고 온 날이었다. '사과하세요, 자중하세요. 등등' 마을배움터 지원금 조례안을 폐지한 국힘이 100%인 도의회가 마지막 발언으로 폐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때 나는 더 이상의 시간 낭비를 그만해야겠다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3년 전 같은 도 의회에서 발의해서 시작된 조례안은 다시 같은 곳에서 그 공동체의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폐지한단다. 나는 사안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그곳에 갔다가 험한 꼴만 보고 왔다.


마을교육공동체 내게는 너무나 필요해 보여서 어떻게 진행되나 호기심에 간 거였는데......


폐지를 찬성한다는 사람은 익명으로 발언을 시작했고 그 속에는 실명만 가득했으며, 자신의 반대파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가 있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동성애 옹호가 죄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악의적라는 무리들을 목격한 날, 울고 싶은데 목에 사레가 들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잠 못 들었던가?


그분들의 머릿속에 우리 아이들은 일차원적인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강사 한 명, 혹은 선생님 한 명이 아이들의 생각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다니, 그토록 단순함이 놀랍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똑똑하고  많은 정보를 우리보다 몇백 배 더 다양한 채널로 접하고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를까.


사과하세요! 자중하세요! 하던 분들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서 오래된 사전을 펼치고 정의로 글을 시작해 보았다. 오랜만에 펼친 사전에 좀인지 작은 벌레 인지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었더랬다.


와, 사전도 편향적인걸? 하며 동성애에서 나온 '변태'라는 단어를 다시 찾고, 거기서 이어진 '변태성욕'이라는 단어까지 펼쳐 본 후, 책장에 있던 사전이 심히 늙었음을 알았다.


네이버와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편향성은 없었다, 다행히도.


+ 네이버 : 동성애同性愛를 동성 간의 사랑. 또는 동성에 대한 사랑.

+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 동성-애(同性愛)

  「참고 어휘」 양성애(兩性愛), 이성애(異性愛)

  「명사」 동성 간의 사랑. 또는 동성에 대한 사랑.   ≒동성연애.


내 늙은 사전과 같은 시간에 얼어버린 세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현상인가.




그날밤 난 또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아 자다 벌떡 깨서는 개발괴발 글을 적어댔다. 갑자기 층간소음 이슈와 학교폭력과 그 일련의 사태가 끼치는 심각성과 유사성이 내 머리를 휘젓는 것 같았다.


생각이 다르면 마음이 서로 닫히고 상대방의 다름은 듣고 싶지 않다. 회피하면 그만.


끽하면 학폭신고해도 돼요? 하는 아이들과 시끄러운 위층 소음에 경비실로 전화를 돌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력 사태까지 가는 현상들.


대화는 없고 회피나 폭력이 쉽다.


층간소음 칼싸움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줄었다는 뉴스를 접하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인데.

 

서로 다르면 유죄. 빈부격차만큼이나 사상, 생각양극화는 극심해졌다.


우리가 갈등과 충돌을 지혜롭게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AI로봇보다 나은 점은 무엇일까?


리서치도 검색도 잘하고 신속한 데다가 프롬프터가 잘못을 지적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면 차분히 수용하고 끝도 없이 일차 이차 삼차 대안을 제시하기까지 하는데... 


나와 다른 의견을 듣기도 싫고 언성을 높이면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검은 머리 짐승의 자세가 아닐까. 공감, 배려, 규칙 준수는 자리할 곳이 있을까.


교육의 주체는 학교, 학생, 그리고 학부모였던가,

학부모가 아닌 어른들은 스스로 교육의 주체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세금을 쥐고 흔들지만 백년지대계를 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가치관에는 무관심하구나... 난 그저 마을에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픈 마음인걸.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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