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관계 스트레스와 엄마의 트라우마 재발 방지법
아는 사람 어디 없소.
또 시작인가.
짬뽕, 엽떡, 마라탕, 라면을 연달아 먹은 때만 해도 눈치를 못 챘다.
시험 준비 일찍 하겠다며 부산떨던 네가 언제였나.
근래들어 폰과 기타에 긴 시간을 쓰기 시작하더라.
언제나 그렇듯 네 시그널은 불투명하고 간접적이다.
까악까악 까마귀처럼 외치고 두 눈을 막고 양 발을 땅에 힘껏 팔짝 팔짝 뛰고 싶다. 부질없다. 이런 발버둥따위 통하지도 않았다. 성당을 찾아 묵상을 한답시고 3분이면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슴 미어지는 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이번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절대 안된다. 나는 다시 걱정과 염려에 휩싸인다.
이렇게 못난 엄마의 트라우마가 재발되려고 한다.
어찌하여 나는 더 예민하게 너를 관찰하는 엄마가 되지 못 하는가.
또다시 '내 탓이오'하며 가슴을 두드리고 절규하는 엄마로 돌아간다.
이 글의 끝을 나는 알고 있다.
다 괜찮아질거다. 너는 곧 훌훌 털 것이며, 그런 너를 영원히 지지하는 엄마가, 네 가족이 곁에 있을 것이니 힘내거라. 참으로 상투적이라 더 덧붙일 멘트조차 없이 진부하다.
이별노래가 자신을 찬 연인을 원망하다가 결국 그가 더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는 구조와 다를 게 없다.
엄마로서 나는 여기서 성장이 멈춘 것인가.
그 많은 일을 겪고도 내 뇌는 왜 매번 해결책이 '땃'하고 내 방문을 knock knock 노크하지 않는단 말인가. 늙어서일까, 바빠서일까 아니면
이 또한 내가 나를 괴롭히는 일부일까.
내 나름의 방책, 메타인지를 색상만 바꿔 써 보며
다시 보아도 냉철해지기는 커녕 감정의 아픔과 그 깊이가 더 해 진다.
누가 나 좀 살려주세요
해결책이 필요하니 아니면 그냥 들어주길 바라니?
위클래스 선생님과 예약을 잡자.
또래들 눈치가 보이면 하굣길에 몰래 도서실에 삼십 분이라도 있다가 나와서 위클래스로 향하자고.
샘께 일 다 헤치워야 하는 부회장 따위 못 해먹겠다고 연락을 해라. 그 회장인데 말썽꾸러기라는 아이는 차라리 사퇴를 하라지.
아니다. 널 마녀사냥하는 영악한 나쁜 아이와 맞짱을 뜨자.
무슨 스파이 작전처럼 플랜 A, B, C를 나열하고 네가 처한 상황을 수학 방정식처럼 분석한다.
너는 그래서 어떻게 대응하니? '무시해'
아, 그렇구나. 그런데 들어보니 걔의 증오 감정이 네게 전염된 것 같다. 너는 Born-Peace Lover이고 걔는 Born-Hater구만.
MBTI가 뽀로로인 네가 그 애의 붉은 증오에 물 들은 것 같다.
맞짱을 뜨겠다 하면 그건 걔가 바라던 바가 되겠네.
결국 무시.
그러나 네 마음 속 들끓는 감정이 훤히 비칠 텐데, 그건 무시가 아니고 수동적인 공격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영악한 그 아이는 그것을 감지하고 사냥을 끝내지 않는 거다.
네 마음 속 분노를 줄이려면 어떻게 할까?
'분출해야지'
맞다. 맞네.
여기까지가 너와 나의 대화였다.
참으로 부질없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냥 널 안아주고 많이 힘들었지? 네가 세상에서 제일로 소중하단다. 네 감정과 네 마음을 최우선으로 두자. 늘 널 응원한단다.
하는 말이 왜 목덜미를 넘지 못하는 걸까? 잘난 심리 드라마에선 잘도 외워서 더 진짜처럼 나오는 대사들인데. 정답은 알면서 정작 네 앞에 앉으면 난 범죄심리학자라도 된 듯 네 편을 들면서 나의 똑똑함을 과시하려고 용을 쓰고 앉았다.
잘났어 정말.
또래 사이에 보이는 네 모습,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위클래스를 들락거려야 하는 아이로 다른 애들에게 비치고 싶지 않은 네 자아상을 존중한다.
우리가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는 신환 예약 우선이라 재원 환자는 평균 세 시간 대기다.
Max 20분 상담을 위해서 대기실에서 세 시간 진을 치다보면 그야말로 진이 다 빠져버린다.
노련한 정신과 의사의 노림수일까? 아니 마음에 병이 난 사람이 왜이리 늘어나는가.
대기실 풍경은 참으로 이국적이다. 남녀노소가 한 곳에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린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정신건강학과 의원에서 일어날 일이다.
어제 나는 너를 대신해 그 단골 병원에 들러 약 처방을 받아 왔다. 대략 세 번 째로 약만 처방받아 가는 것에 흐뭇해했었다. 아빌리파이 처방량이 절반 줄어 더더욱 기뻐하며 네 아빠와 공유했더랬다.
그럼 뭐하누......
네 마음이 다시 관계 스트레스로 널뛰는 것을 더 일찍 감지하지 못하였구나. 자책, 자기 원망 그리고 가슴 한 켠이 무너지는 듯 아프다.
아니 이러면 아니 된다.
네 신체화마저 진행되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네 마음은 어때? 하니 네가 던진 한 마디 : 한 번 버텨봐야지
그게 돼? : 아니 죽도록 힘들지
맞아. 너는 네 한계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지.
우리는 과거에서 배웠다. 과거가 우리를 구한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나 계엄사태뿐만 아니라, 우리집 너와 내게도 적용가능한 명언이다.
노벨상은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군.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구원하리라. A-men! 암요! 옳소, 동의, 제청.
난 네게 영원히 네 관계 문제에 대한 해결사는 될 수 없다.
대신에 말이다.
밀어내도 밀어내도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흔들바위 정도는 될거다.
흔들림은 디폴트지.
흔들리며 피는 꽃 만큼 아슬아슬해 보여도 바위다.
장밋빛 미래 따위 꿈꾼 적 없어.
그냥 너와 함께 하는 오늘과 내일 아침이 평온함 속에서
더 나은 나,너 우리가 함께 하길 바랄 뿐이다.
네게 성적순으로 행복해지자 바란 적 없다.
네가 걷는 여정이 있는 그대로 기쁘길 바랄 뿐이다.
네 속도대로 필요한 만큼 쉬었다 또 일어나 걷다가 뛰다가.
네가 터널이라 생각한 그곳이
네 지혜의 샘이 될 것이야.
내 이 매우 날 것 그대로의 이 글이 우리의 다음 여정을 빛나게 할 원료가 되길 바란다.
You're gonna figure it out.
I know you will make it.
It's all about time and energy.
Don't you worry babe, I am here right by your side.
Love you sweetie, a million times, as always.
라고 쓰고 멜로디를 붙여서 네가 잠든 곁에서 밤새 불러 주고 싶지만 참을게.
내 백허그를 거부한 네게
나 대신 밤톨이를 네 침대로 밀어넣었다.
함께 포근한 밤, 아름다운 꿈 꾸길 바래.
사랑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