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 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환경 파괴적인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돈 저항(Money Rebellion)'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현행 경제 시스템은 GDP 성장률처럼 경제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들을 키우기 위해 당장 눈 앞의 이득을 얻으려 석유를 태우고, 숲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생존은 위협받고 기후와 생태는 무너질 것입니다. 은행, 주식시장은 자연을 파괴하고 저소득 국가의 땅을 착취하는 데 자금을 대고 있습니다. 고객들로 하여금 빚을 지고, 이자를 붙여 돈을 갚게 하면서 지구의 한계를 넘는 성장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멸종저항은 이 빚을 거부하고 금융 시스템이 망가뜨린 곳을 치유하고 고치는 데 기부할 것이라고 합니다. 금융을 통해 시민이 간접적으로 환경 파괴에 동참하게 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에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며 환경 친화적인 산업에 투자하는 '녹색금융' 개념도 등장했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멸종저항은 2018년 10월 결성된 영국의 기후변화 대응 조직입니다. 런던 의회광장, 마블아치, 워털루브릿지, 옥스퍼드 서커스 등에서 점거 시위를 펼쳤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에티엔 스콧이 멸종 저항 시위에 참여해 체포되었는가 하면 영국의 유명 배우 엠마 톰슨이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4월 21일에는 청소년기후운동의 불을 지핀 그레타 툰베리가 멸종 저항과 함께 했습니다. 점거 시위가 지속되면서 체포자 수가 1000명을 넘었고, 이중 50명 이상이 입건되었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시위 참가자의 수는 1982년 반핵시위에서 750명 가량이 체포된 이래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런던 '시티 오브 런던'의 '멸종저항' 시위대(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1982년 반핵시위 이후 체포자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멸종 혹은 절멸 위기를 다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많이 잊혔지만, 에드워드 톰슨의 절멸주의(exterminism)로 대표되는 절멸에 대한 위기 의식은 1980년대 초반 반핵운동, 핵무기 반대운동을 이끄는 힘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핵전쟁의 위협을 경고하는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의 시간을 산정하는데 기후변화가 포함되었지만, 멸종과 절멸이 사회운동의 언어 혹은 대중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멸종 저항의 정치적 효과는 여기에 있다. 멸종 저항의 비상사태 선포는 우리가 멸종, 절멸을 걱정해야할 만큼 긴박한 위험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멸종 저항 시위 참가자들이 던진 질문, 즉 멸종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멸종저항의 저항방식은 무척이나 격렬합니다. 도시마다 수백명이 참여한 반란 시위대가 자기 몸을 차량에 쇠사슬로 묶거나 대로 한복판에 드러눕는 등 격렬한 점거시위에 나서면서 수십, 수백명이 체포되었습니다. 국제 시민불복종 운동을 표방한 멸종저항은 ‘각국 정부가 기후·생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후변화 대응 행동에 즉각 나서게 한다’는 목표를 위해 “감옥과 체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행동지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런던과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 프라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도로와 교량을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점거 시위와 거리행진으로 교통체증이 빚어졌고, 수백명의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물감을 몸에 묻히고 길바닥에 드러눕는 식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항공 여행의 영향을 지적하며 공항 폐쇄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항공기 지붕 위로 올라가 드러눕거나 출발과 도착 관문을 막아서며 눕거나 앉아서 통행을 저지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한 한 시위자는 ‘함께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서 내리고 싶지 않다.’며 비행기 이륙을 막기도 했습니다.
공항 폐쇄시위에서 루퍼트 리드 멸종 저항 대변인은 "공항을 비폭력적으로 폐쇄함으로써 홍콩 민주화 시위대의 방식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는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 나라와 같은 나라들이 의존하게 된 교통 시스템의 완전한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행기 지붕 위에 올라가 드러누운 멸종저항 시위자(출처 : skynews)
비행기에 탑승해 이륙을 저지하려 한 멸종저항 시위자(출처 : skynews)
영국의 환경운동가 로저 할람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편지, 이메일보내기, 단순 집회 방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감옥에 잡혀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400여명, 체포를 무릅쓰는 2~3천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멸종저항은 10개 행동강령에서 “전세계 누구나 ‘멸종반란’ 깃발을 들고 행동에 나서는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 시스템은 기후·생태계를 파괴하는 불량한 독성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면 전체 인구의 3.5%를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런던 중심가를 점거한 멸종저항 시위대(Climate & Capitalism 웹사이트)
가끔 해외 사례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는 참 양반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2020년 11월 19일 오전 8시 30분 국회 정문 앞에 노란 우비를 입은 청년 6명이 나타났습니다. 자전거 자물쇠로 국회 철문에 목을 묶고 “우리는 살고 싶다”라고 외쳤고 ‘우리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2025 탄소중립’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다른 청년들이 그 옆에 섰습니다. 같은 날 열린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공청회'를 앞두고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항의 시위였습니다.
20분 뒤 경찰은 절단기를 이용해 자물쇠를 끊었고 목을 잠근 6명과 피켓을 든 청년들까지 ‘멸종 반란 한국’ 소속 11명을 전부 업무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습니다. 우리나라 기후 운동 사상 첫 연행 사례입니다.
국회의사당 정문에 목을 맨 멸종반란 한국 시위자(출처 : 오마이뉴스)
멸종반란 한국 회원들이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출처 : 오마이뉴스)
영국의 멸종저항 시위대는 자신들이 비폭력 시민 불복종을 실천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대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체포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종보단 연행’을 택한 청년들은 살기 위해 목을 묶었습니다. 이 청년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연행을 당하는 와중에도 그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계 청년들은 지금, 평화롭지만 아주 단호하게 전쟁을 치러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시위자가 거리에서 연행되고 있다.(출처 PA Wire PA Images)
체포된 시위자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출처 : skynews)
<출처 및 참고>
1.김영두, "기후변화 대응 나서라" 유럽 달군 '멸종저항' 점거 시위(연합뉴스,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