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을수록 선명해지는 자리
오래 닫아 둔 책을 펼치자
종이결 사이로 작은 가을이 부서졌다.
한 장, 또 한 장 넘길 때마다 숨겨 둔 바람이 스멀스멀 따라왔다.
너와 걷던 골목의 냄새가 희미한 빛처럼 페이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색을 잃은 꽃잎은
입술 대신 말려 버린 인사 같았다.
손끝에 가루가 묻어나는 동안
나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너를 불렀다.
접힌 계절 사이
아직 네가 눌려 있는 걸 알면서도,
다시 그 자리에 꽃을 끼워 두었다.
오늘도
하루를 접어 책갈피에 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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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이부르는안부 #덮을수록또렷해지는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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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문장이 잎을 틔울 때〉 — 브런치에서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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