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가을맛
아침공기가 선선해졌다. 뜨거웠던 여름날이 하루아침에 이별을 고하자 따뜻한 국이나 호박죽, 팥죽 같은 음식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서귀포에 다녀오시면 파치를 나눠주시는 앞집 이웃께서 이번엔 커다란 늙은 호박을 건네신다.
“호박죽 해 먹어 봐, 엄청 달고 맛있어!”.
전날 호박죽을 만들어 놓아야 다음 날 아침 깊어진 맛을 느낄 수 있어 저녁부터 분주하다.
노란 속을 보자 한참 이유식을 만들던 때가 생각났다. 첫째의 먹성은 나를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게끔 만들었고 호박죽을 처음 먹어본 아이의 놀란 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그때 조금 느껴본 것 같다. 이맛 저 맛 열심히 먹여본 덕인지 그 아이는 어느덧 편식 안 하고 건강한 맛을 즐기는 미식가로 자랐다.
불려 두었던 찹쌀을 갈고, 늙은 호박을 잘라 솥에 찌고, 중불에서 오랫동안 저어가며 정성까지 들어간 호박죽은 샛노란 색만큼이나 진했다.
겉옷 하나 걸치고 마당에 앉아 따끈한 호박죽 한입,
찐 밤 한입, 번갈아 먹으니 꾸덕한 달콤함이 속까지
퍼진다. 가을아 반가워!
[ Recipe ]
1. 찹쌀 한 컵을 반나절 불려놓는다. 씹히는 식감을 위해 찹쌀가루보다는 찹쌀을 갈아서 넣는다.
2. 호박을 깨끗이 씻어 반으로 갈라 씨를 빼고 껍질을 벗긴다.
3. 적당한 크기로 썰고 물을 넣어 압력솥으로 쪄낸다.
4. 푹 익은 호박을 으깨고 갈아놓은 찹쌀을 물과 함께 넣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뚜껑을 닫고 중불로 한번 더 익혀준다.
5. 걸쭉한 상태가 되면 소금으로 간을 해준다.
6. 깎아놓은 밤을 고명으로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