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동냥하다 김장하기
나의 김치선생님은 밀물언니다. 재작년 함께 김장을 하고 작년에는 건너뛰었더니 시어머니김치 아껴먹고 마트김치, 이웃김치 동냥하다 결국 김장이 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김치를 좋아하고 손 많이 가는 음식 좋아하고 자연의 색을 갖고 있는 식재료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세상 행복해하는 점이 닮았다.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언니 어머니의 무농약 절임배추를 기다리며 재료를 다듬는 칼질 소리가 도마를 기분 좋게 두드린다. 우리가 김장을 하기로 한 전날 다시마, 디포리, 건새우, 사과, 양파, 마늘 등등 귀한 재료로 육수를 내려놓은 언니 작업실의 흔적에서 고마운 마음과 함께 벌써 완성된 김치의 맛이 그려진다.
김장철이 되면 새우젓과 고춧가루, 액젓 같은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재료들은 지역특산물로 먼저 주문을 해놓는다. 겨울의 찬공기를 머금은 배추는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 촉촉하고 아삭하고 달달한 절임배추로 재탄생해 배를 타고 제주도 딸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혹시 터질까 박스를 튼튼하게 두른 파란 테이프와 딸의 이름을 크게 써놓은 글씨체를 보고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감사했다.
귀한 재료들을 한데 모아 다듬고 썰고 다지며 또 건강이야기, 달리는 이야기, 아이들이 크는 이야기를 나눴다. 참 우리는 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구나, 우리의 몸, 생각, 아이들, 가족들과의 시간.. 하나도 쉽게 생각해지지 않는, 그래서 지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다시 몸을 세워 그곳을 향해 가고 싶어 하니 그것을 행복이라 생각했다.
진한 육수에 고춧가루, 새우젓, 마늘 등 양념을 섞고 얇게 썬 무채와 다진 청각을 넣어 시원한 맛을 살려준다. 잘 버무린 양념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빨갛고 알싸한 양념을 한 겹 한 겹 머금은 노란 속살의 배추는 마지막 겉잎으로 단단히 감싸 수십 가지 재료들이 배추에 맛이 들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시간’이 더해지면 익으면 익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김치가 완성된다. 맨 아래 듬성듬성 썬 무도 두어 개 넣고 그 위로 배추를 꾹꾹 눌러 담아 숙성이 잘 되도록 비닐의 입구를 꼼꼼하게 묶었다.
2차전 백김치를 하기 전 점심밥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언니가 압력솥으로 끓인 갈비탕은 노곤한 몸을 싹 풀어주었다. 방금 담근 김치도 손으로 쭉쭉 찢어가며 먹으니 이 정도 새참이면 김장 열 번도 더 하겠네?! 하며 국물까지 싹 비웠다.
백김치를 위해 남겨놓은 배추에 하얀 양념을 묻히고 채 썬 마늘과 쪽파를 올려 육수를 부어주었다. 크게 썰어 넣은 사과와 양파, 생강 두 조각은 국물의 맛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얼마나 맛있게 익을까? 김치라면 종류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첫째, 백김치 좋아하는 막내 얼굴 생각하니 뿌듯해진 마음으로 김치통 여섯 개를 차에 실었다. 반년치 보약을 언니 덕분에 반나절에 끝냈다.
4년 전 제주 바다에서 우연히 만나 건강한 먹거리 나눠먹으며 가까워진 우리의 그 여름을 이 김치를 먹으며 기다려야지.
월동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