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무로 만드는 밥도둑
우리 수영장 친구들과는 겨울을 맞는 행사가 있다. 바로 월동무로 섞박지 담그는 일. 같이 수영하고 달리기 하는 것도 모자라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같이 김치도 담그는 사이가 됐다. 웃고 떠들면서도 할 일 나눠 척척 호흡이 잘 맞는 우리는 이제 뭘 해도 신난다.
무값이 내리자 회장님 댁 마당으로 모여 앞치마를 두르고 웃을 준비를, 아니 섞박지 담글 준비를 한다. 얼마 전 김장을 한 내가 고춧가루와 까나리액젓, 새우젓을 공수해 오고 무와 배추, 겉절이 할 봄동, 수육용 앞다리살, 구수한 된장국에 넣을 남해시금치까지 재료가 완벽하게 준비됐다.
깨끗이 씻은 무를 큼직하고 네모지게 썰어 김장비닐에 넣고 고춧가루, 찹쌀풀, 까나리액젓, 천일염, 다진 마늘 등 황금비율양념과 함께 섞어준다. 무에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하루동안 상온에 두면서 중간중간 뒤집어 주면 끝! 이렇게 간단한데 이런 맛이 난다고?
24시간 숙성 후 김치냉장고에 넣기 전 한 입 먹어보면 깜짝 놀랄 맛이 입안을 톡 쏜다. 쪽파까지 위쪽에 얹으면 섞박지 먹을 때 파 골라먹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재료 다듬기 전 회장님의 솥에서 맛있게 삶아지고 있던 수육이 치-익 소리를 내며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낸다. 흥분한 우리는 봄동겉절이와 무생채, 새우젓, 알배추까지 제대로 한 상 차리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살살 녹는 수육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는 왕언니의 닭갈비를 2차로 굽고 볶음밥까지 쉴 새 없이 먹으니 수영하면 살이 안 빠진다는 진리를 몸소 지키고 있었다. 알싸한 마늘과 매콤한 고춧가루, 짭짤한 새우젓, 달달한 겨울무가 어우러져 맛있는 섞박지가 되듯 우리의 하루하루도 이 맛 저 맛 섞여야 재밌기 마련이다.
각자 준비해 온 작은 선물로 경품추첨을 하면서 또 시트콤에 나올 법한 에피소드 하나 추가했다! 실컷 웃을 수 있어 감사하고 빨갛게 물든 섞박지 한 봉지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따뜻한 겨울날씨만큼 마음도 훈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