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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Oct 06. 2022

오늘 같은 내일을 살고 싶은, 조혜민

학나경 인터뷰 #12

가능한 한 평범하게 사는 것, 조혜민이 하루하루를 사는 방식이다. 어떻게든 재미있게 살고싶은 필자에게 이번 인터뷰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지루한 걸 못 견디는 성격이지만, 잔잔한 시간을 행복으로 채우는 조혜민의 삶이 한편으론 무척 부러웠다.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은 조혜민은 불안과 걱정에 매몰되지 않는 보기보다 단단한 사람이었다.

로운.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면?

혜민. 눈에 띄는 게 싫고,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 고등학생 때 수능 끝나고 학교 가는 기간이었는데, 일종의 허탈감을 느끼면서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그게 문득 행복해보였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래도 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은 일이 있으면 추락하기 쉽고, 너무 바닥으로 떨어지면 올라오기 힘들다. 적당한 선에서 매일을 보통의 하루처럼 지내고 싶다.

사실 평범하지 않은 삶이라고 하면 좋은 쪽이든 안좋은 쪽이든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쪽으로 오르내리려면 특출나야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싶은 생각도 크지 않다. 남은 건 안 좋은 일로 오르내리는건데 그건 더 싫다. 지금 사는 게 딱 보통의 상태인 것 같다. 가끔 행복도 느끼고, 걱정에 매몰되지 않고. 엄마가 예전부터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라고 했는데, 지금 행복한 것 같다.


로운. 학나경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렇고, 본인을 드러내는 데에 별다른 주저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선뜻 꺼내지 않는 성격이라해서 의외였다.

혜민. 난 소심한 관종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어떤 식으로든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는 이야기들은 꺼내지 않으려 한다. 또 친구들, 가족들이랑 있을 때도 힘든 얘기를 꺼내지 않고 대체로 들으려한다. 내 얘기를 하거나 내 생각을 좀 드러냈을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싫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게 두렵다. 내가 드러날수록 날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나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편이라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는 내가 나올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를 남이 봤을 때 어떻게 느낄지는 나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떤 식으로든 느끼게 됐을 때, 나도 나를 그렇게 느끼게 될 것만 같다.


로운.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남에게 짐을 주는 것 같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깊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부담스러워하는 편인지.

혜민.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내 일처럼 몰입하고 들으니까. 남의 걱정이지만 내 걱정이 된 것 같고 후유증이 크다. 그래서 약속도 자주 잡지 않으려 한다. 최근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유독 자주 있었어서 그런지 더 힘들게 느껴진다.

로운. 본인의 깊은 이야기를 혼자 안는 것이 버겁진 않은지.

혜민. 그래서 일기를 쓴다. 매일 쓴다. 가끔은 미친 사람이 쓴 것처럼 다 뱉어놓는다. 슬픈 것과 힘든 것들을 일기장에 써두면 그 후로는 까먹는다. 그래서 일기에 썼던 것들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것 같다. 내 일기장은 스타벅스 일기장인데, 그게 나를 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들여다 보진 않는다. 예전에 이사 준비하다가 일기장을 바닥에 떨어졌길래 우연히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바로 덮었다. 공격적으로 변한 내 모습을 다시 보기도 싫고, 남들도 볼까봐 싫다.

로운. 그럼에도 긍정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다면?

혜민. 각자의 인생이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 나까지 피곤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힘든 일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게 더 싫다.

인터뷰에 모두 담지 못했지만, 조혜민은 타인과의 교류하는 감정들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타인도 그가 전달하는 감정에 몰입할 수 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조혜민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조혜민의 신중함 속에는 본인도 타인도 힘들지 않게 하는 나름의 배려가 담겨있었다.

로운. 걱정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의외라고 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단순하게 살기 때문에 걱정도 쉽게 잊고, 걱정에 매몰되지 않는 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다.

혜민. 그런 표현이라면 맞는 것 같다, 걱정이 심각해질수록 걱정을 낳는다. 또 사람이 안좋은 기억들은 뇌에서 빨리 지워버린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힘든 게 생기면 그냥 빨리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많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걱정에 쏟을 에너지나 시간도 없다. 삶을 잠식시킬 정도의 걱정은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하지 않나. 난 진짜 단순한 사람인데다 세상에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아서, 하나에 깊게 집중을 잘 못한다. 나는 고민을 많이 안하는 편이다.

로운. 미래의 무언가를 위한다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인가.

혜민. 완전 현재 집중형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는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주변에 부담도 주고싶어하지 않고, 죽기전에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뭔가 오랫동안 준비한 것에서 얻는 성취감이 주는 만족이 크지 않다. 오히려 모든 곳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려 하는 편인데, 무엇보다 성취감 자체를 즐기질 않는 것 같다.


로운. 평범하고 잔잔한 삶을 추구하고, 걱정이 본인을 매몰시키지도 않는 편인데, 울음이 터져나오는 순간은 어떤 경우인가.

혜민.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종종 힘든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힘들어진다. 아까 말했듯 나는 진짜 몰입을 잘해서, 그게 버거워지면 울음이 나온다.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쓰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런 말을 못하는 나도 밉다. 곰돌이 푸에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슬픔을 나누는 입장에서는 반이 되지만, 그 슬픔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1.5배, 2배가 되는 거다. 이미 나의 슬픔만으로도 벅찬데 남의 것까지 듣기는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서 곰돌이 푸를 별로 안좋아한다..


로운. 따뜻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좋다고 했는데, 어떤 포인트가 좋은 것인지.

혜민. 다들 힘들고 지쳐있지 않나. 같이 있을 때 힘이 되는 사람이 있고, 기가 빨리는 사람이 있는데, 따뜻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나와 같이 있던 시간이 좋았다는 뜻인 것 같다. 함께 공유한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나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따뜻하다는 단어를 좋아한다. 봄을 연상시키는데, 나와의 시간이 봄 같다는 뜻 같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따뜻함은 엄마가 안아줄 때 그런 포근함인데,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좋다.

분출하지 않는 모든 것은 삭고 곪는다. 감정을 가급적 나누지 않는 조혜민이지만, 감정이 곪아 썩지 않게끔 나름의 방법으로 감정을 분출하고 있었다.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삶을 택했기 때문에, 내면의 감정들이 그를 매몰시키기 전에 자신을 비워내고 있다.

로운. 한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한다. 한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혜민. 한강은 위로를 주는 공간이다.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데, 나무를 보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 정석처럼 생긴 나무다. 어릴 때 그림으로 그리는 나무들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안 불면 멈춰있고, 나무를 보다보면 존재 자체가 힐링으로 느껴진다. 그 나무처럼 살고 싶다. 집에 있으면 뭐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막 드는데, 한강에 가면 아무 생각이 없어도 된다. 그 나무까지 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다.

로운. 한강은 본인의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을 보내는 장소인 걸까.

혜민. 그렇진 않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머리를 비우러 갔다오면 충전이 된다. 특히 무언가 해야하는 걸 앞두고 한강을 다녀왔을 땐 얼마 안남은 시간에서 오는 압박감도 있어서 집중이 잘 되지만, 혼자 시간을 보냈다는 것 자체도 힘이 된다.

집에 있는 것도 좋아하는데, 집에 있는 건 포근한 느낌이다. 내 시간을 공유할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최종 도착지니까 거리에서 주는 안정감이 제일 크다. 한강은 포근함보다는 편안함.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로운. 요새 낙이 있다면,

혜민. 한강 가는 것을 빼면 이모티콘을 그리는 것. 이모티콘은 벌써 18번째 승인을 못 받았는데, 언젠가는 성공할 거다. 이모티콘은 말하는 감자에서 모티브 받았다. 대학생, 직장인같은 시리즈가 있다. 대학생감자는 색이 덜 찌들었고 교수님한테 대드는 애들이다. 직장인 감자는 대학생 감자에 비해서 찌들어있다. 월급날에 기뻐하고 부장님한테 속으론 화내지만 겉으론 화를 참는다. 이렇게 감자를 백 개 넘게 그렸는데, 다 승인이 안돼서 최근에 이모티콘 강의까지 끊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만 끝나면 올인할 것이다. 직장인 감자 중에 ‘스마트폰하는 감자’가 내 최애다.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원래 감자도 싫어했는데, 그림을 그리다보니 요샌 감자가 좋아졌다. 엄마가 감자채 해주면 먹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감자 이모티콘 그리는 게 나의 요새 제일 큰 행복이다.


로운. 공식 질문이다. 학나경을 제외하고 자기소개를 한다면.

혜민.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조혜민. 아니면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조혜민.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바닷속 모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변화가 많은 삶은 지루하지 않지만 걱정할 것도 많다. 잔잔한 삶은 지루할 수 있지만 안정적이다. 도파민보다 세로토닌이 더 많을 조혜민의 하루는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일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고민이 있고, 그리고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강이 있는 하루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꽤 괜찮은 하루이지 않을까. 이모티콘이 통과되어 조혜민의 하루에 약간의 행복이 더해진다면 좋겠다.

작성자 손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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