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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Jun 04. 2021

버리긴 아깝고 / 박철

안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림. 조앤


웃음이 핑, 돈다.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눈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으므로 통하는 것이 생겼다는.
글로 다시 만났다는.

시인의 순전한 마음이 어떤가.
아름답다. 애틋하다.
그 시집을 선물처럼 받아 든 <식당 여주인>이 나이고 싶다.
순전한 한 권의 <시집>을 처음 열어본 1호 독자이고 싶다.
궁리 끝에 <아귀찜>으로 감사를 표하는 마음은 어떤가.
살갑다. 푸짐하다.

그런데 왜 아귀찜일까.
원래 아귀찜 식당이었던가.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을 잔뜩 넣으면 가장 넉넉하게 만들 수 있으니 그런가.

시가 아귀가 사는 바다처럼 깊고 넓다는 것인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깊은 해저에 묻혀있는 보물선과 같다는 것인가.
아귀처럼 시집 전체를 뭉텅 다 먹고 소화시켰다는 것인가.
시인은 시로 말하는 입이 큰 사람이라는 것인가.

나에게 오지 않은 행운에 애먼 눈을 흘기며
비 오는 날이면 아귀찜 생각만 간절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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