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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Haon Apr 16. 2023

난 결심했다. 그를 완전히 떠나기로

9. 잠깐, 마지막까지 이러기야?

(8편에 이어서)


팀장에게 퇴사의사를 전달했다. 그다음은 부장, 관장. 관리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퇴사라 번복할 의사를 나에게 여러 번 확인했다. 그러나 나의 확고한 의지에 퇴사는 결정되었다.


사실 확고한 의지와는 다르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부장과 관장의 퇴사번복 회유에 홀라당 넘어갈 뻔한 적도 있다.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들을 하던지.


첫 정이 무섭다고 했던가. 나의 첫 회사였고, 첫 동료들과 하루도 웃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즐겁게 일했던 곳이었다.


입사 초, 아무것도 몰라 하얀 백지장 같던 나를 팀장님과 대리님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조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었다. 조직에서의 내 몫을 잘하게 될 때부터는 출근하는 것이 설렐 때도 있었다. 팀장이 2번 바뀌고, 대리는 4번인가 바뀌는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난 내 자리를 지켜왔었다.


이렇게도 애틋한 곳이었지만, 이젠 나를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다시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했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도 친구도  사람도 없는 외딴곳에 가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퇴사  강릉으로   살기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굳이 강릉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다녔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정체되어 있는 지금이 싫어 떠나지만 그래도 혼자면 외로울 텐데, 장소까지 낯설긴 싫었다.


그렇게 퇴사가 공식발표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다른 직원들과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나누며 마지막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그와도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헤어진 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업무 이야기를 나눴었으나, 사적으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퇴사에 대해서도 얘길 해본 적이 없었다.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퇴사한다면 이 구구절절했던 연애사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고백부터 쿨한 마지막 인사까지. 크으 나 좀 멋있는 거 같은데?


마지막 출근 하루 전 날, 그에게 고백했을 때처럼 불쑥 찾아가야겠다.


그는 항상 50분 정도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사무실은 한산했다. 그의 커피를 자주 챙겨주던 예전처럼 그를 위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그의 자리로 가서 보조의자에 앉아버렸다. 그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많이 놀라진 않은 듯 보였다. 난 ‘출근 마지막 날엔 정신이 없을 것 같아, 오늘 미리 인사 왔어요’라고 했다. 그는 와줘서 고맙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울었다. 엉엉은 아니고, 주르륵 정도. 울지 말지. 난 이제 당신 때문에 안 우는데. 나에게 감정이 동요되는 그를 난 더 울리고 싶은 괜한 마음으로 ‘진작에 이렇게 와서 말 걸어줬으면 당신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막상 하려니 너무 어려워서 못했어요. 미안해요’라고 하니 그는 ‘아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라고 하며 미안해했다. 진정이 좀 됐는지 그가 ‘강릉 간다며, 들었어요. 강릉 가기 전에 밖에서 밥 한번 먹어요’라고 했다.


응? 이건 예상 밖 전갠데..?


난 그에게 ‘왜?’라고 물었다. 우리의 마지막은 여기였으면 좋겠는데..

그는 ‘팀장이니까, 퇴사하는 직원 밥 사주려고’. 엥? 내 팀장도 아니면서 뭔 소리지.

난 의아함을 감추지 않고 ‘시간 낼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밥 사준다는 말에 대꾸하는 말로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묻진 않겠지. 하지만 난 그가 여전히, 아니 그전보다 훨씬 더 정시 퇴근 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달력을 한참 보더니 ‘다음 주 화요일 시간 낼 수 있어요, 그날 봐요’ 라고 했다.

.. 과연.. 일단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언제든 깨질수 있는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쿨한 마지막 인사는 이상한 밥약속이 생기는 것으로 끝났다.


이 얘기를 들은  운동PT쌤은 그 사람이 나에게 다시 만나자고 할 거라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다른 얘기, 세상 온갖 쓸데없는 얘기는    있어도 그건 아닐 거라고. 왜냐면,  사람은 그런  얘기할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런 상상도   사람이에요. 감히. 정말 감히.


PT쌤은 나의 단호한 반응에 갸우뚱하면서 그렇담 자신이 예상한 전개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 정답입니다.

제가 만났던 그는 설명이   되는 사람이랍니다.

마음의 병이 있거든요.


결국  대화는 누구 말이 맞느냐에 따라 ‘만원 내기로 끝이 났다. 쌤께 운동지도를 받는 동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했던  같은데.. 같은 남자라  이해하실  알았더니 전혀 이해를 못하셨구나.

어쨋든 , 만원 뺏길 준비하시길.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퇴사하는 직원들을 배웅하는 문화가 있다. 회사 문 앞까지 같이 가서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주곤 한다. 전에 한 번은 퇴사하는 직원이 우리가 이렇게 인사를 해주는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오, 나도 나중에 저래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되서 윗분들께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하니, 직원들이 배웅을 해주러 나왔다. 퇴근 직전의 시간이라 많은 직원들이 함께 해주었다. 약간 부담이 되었지만, 즐기기로 했다.  회사가 나에게 해주는 마지막 선물이겠거니.


많은 직원들이 회사 문 앞에 서서 배웅해 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동안 감사했음을 전하는 내 밝은 목소리와 웃음소리, 직원들의 잘 가라는, 행복하라는 축복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끝으로 나는 그곳을 잘 떠났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정신이 없어 그땐 미처 보지 못한 얼굴들도 많았다. 그 영상에 그도 있었다. 제일 뒷쪽이라 얼굴이 나오진 않았지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 마저도 없었다면 약간 서운할 뻔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퇴사하고, 일주일정도 한 달 살기를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그와 만나기로 했던 날, 그다음 날이 떠나는 날이었다. 난 그때까지도 그의 약속을 의심했다. 약속을 못 지킬 거라고.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그를 나쁘게 생각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위안했다. 난 그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PT쌤은 이런 나에게 ‘만약 그 사람이 약속을 안 지킨다면 그건 쓰레기짓이라고.’ 했다.


아뇨 , 만약 그가 그런다면 그건..

그냥 그의 본성일 거예요. 어쩔  없는.

나는 이해가 될 거예요. 화는 나겠지만.


그와 만나기로 한 당일이 되었다. 그와 만나면 우린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궁금했다. 그동안 밀린 얘기일까. 아니면 내 앞길을 축복해 주는 말들일까.

궁금하던 찰나에 그에게 카톡이 왔다.


갑자기 떨어진 업무가 많아, 정시 퇴근이 어렵다고.

강릉에서 돌아오면 그때 밥을 먹자고.


음,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이 뭐더라?

아니다. 욕도 아깝다.


이렇게 그는 나를 완벽히 잃었고,

난 그를 떠날 완전한 준비를 마쳤다.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가 준 편지(?),, 네,, 진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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