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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Aug 26. 2024

본능에 따라

백만 년 바위 악어 농장

2017년 태국은 계속된 홍수로 남부 나콘시탐마랏 주 수십 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물이 조금씩 빠지자 사설 동물원에서 탈출한 악어들이 주택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조대원들이 풀밭에 악어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악어를 생포했다. 길이 4미터의 커다란 악어이지만 동물원에 있던 악어여서인지 생각보다 저항 없이 포획했다. 그러나 난폭한 공격 성향을 가진 악어들은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악어잡기에 나선 태국은 악어 경보를 발령했고 사냥꾼들은 엽총을 들었지만 아직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 악어들이 있다고 했다. 


동물 중 유일하게 사람을 먹이로 본다는 악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등꼴이 오싹했다. 악어농장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 악어들이 있었다. 아주 작은 새끼 악어부터 길이가 삼 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악어들까지.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았다. 태국 사람들은 악어 고기를 즐겨 먹는다. 돼지고기값이 폭등할 때는 대체 고기로 악어고기를 선택한다고 했다. 태국 시장을 걷다 보면 곳곳에 악어고기를 판매하는 상점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 악어고기는 닭고기 같은 것이 아닐까. 


악어농장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백만 년 바위 악어 농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잘 가꾸어진 정원을 만나 볼 수 있다. 수억만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희귀한 모양의 화석 바위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식물들이 신기했다. 가이드는 식물 이름과 나무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지만 내리쬐는 햇살에 그늘만 찾기 바빴다.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이드도 끝낸 설명을 중단하고 타잔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거대한 나무 밑에서 더위를 식혔다. 



타고난 본성은 변화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기력한 호랑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말도 아닌 것 같다. 생각에 잠긴 듯 한 곳 만을 바라보고 있는 호랑이는 모든 것은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동물원에 가면 제일 먼저 호랑이, 사자를 찾는 아이들마저 오랫동안 호랑이를 바라보지 못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왠지 불편하다.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나다. 새로운 음식에 쉽게 손 이 가지 못하고 생소한 장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태어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어쩌면 행복일지도 모른다.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먹고살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일터에 나가 일을 해야 하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깔깔 웃기도 해야 하고,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해야 할 때도 있다. 그곳에도 분명 행복이 있다고 외치는 몇몇의 책들의 말에 이리저리 숨은 행복 찾기에 희망을 품어 본다.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철장 속에 갇힌 무기력한 호랑이에게도 숨은 행복이 어딘가에는 있는 걸까. 아니면 곧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는 걸까. 

태국 여행을 오면 꼭 해야 하는 아이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기린 먹이 주기였다. 패키지여행이라 동물 먹이 주기 체험은 눈치껏 해야 했다. 가이드 뒤를 따라 걷다 기회를 잡아야 했다. 10분간 휴식을 외치는 가이드 말에 우리 가족은 기린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악어쇼가 열리는 뒤편에 기린이 있었다. 악어쇼를 보는 내내 갸우뚱하는 기린의 머리를 보았기에. 우리는 있는 힘껏 뛰어갔다. 


기린에게 줄 바나나 한송이를 샀다. 기린과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었다. 바나나는 순식간에 기린 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10분의 시간도 점점 사라졌다. 한번 더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을 고이 접어 두고 다시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패키지여행에서 자유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는 없었다. 숨이 턱밑까지 올라오고 있을 때쯤 가이드가 뛰지 말라고 소리쳤다. 바쁠 거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천천히 와도 된다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는 숨을 몰아 쉬었다. 몸이 좋지 않은 일행이 있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했다. 음식에 탈이난건지, 바쁜 일정 탓에 피로가 쌓여서 인지 구토를 한다는 거였다. 우리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생기 있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미안하다고 하는 말에 우리는 괜찮다고 말했다. 버스는 달렸고, 우리는 침묵했다. 쉬고 싶은 사람과 쉬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다. 


악어농장을 떠나 파인애플 농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나의 물음표가 다가왔다.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멋져 보이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동물들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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