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 33개월
어릴 적 나는 잠드는 것은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잠의 절대적 양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잠에 드는 것이 힘들었다. 슈퍼 N이어선지 잠들기 전 천장만 봐도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천장은 그 모습처럼 내겐 도화지였다. 나와는 다르게 머리만 대면 자는 동생을 보고 조금만 더 같이 수다 떨지.. 하며 서운했던 수많은 밤이 기억난다. 이런 나를 닮아선지 우주도 잠에 들기까지 꽤나 오래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그래도 10시 반이면 잠에 들곤 하지만 더 어릴 때는 새벽 1시까지 안 잔 적도 많았다. 아이가 잠든 후의 자유시간에 목마른 나는 야행성 우주와의 공존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다.
28개월이 넘어서였나 우주가 자다 깨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가끔은 나와 남편을 때리기까지 했다. 당시 본격적인 훈육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공격성에 한한 선을 그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나답지 않게 소리를 지르며 대항(?)하곤 했다. “우주 너 엄마, 아빠 때리는 것 아니야!!”하며. 우주가 다시 잠들면 핸드폰으로 반복되는 검색이 시작됐다. 두 돌 전후로 주변 사람을 때리는 아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때는 전혀 몰랐다, 우주가 야경증이 있다는 것을.
야경증은 뇌 기능이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가 겪는 수면 장애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거나 육체적으로 너무 피로할 때, 잠을 자다가 깨서 악을 지르며 오열을 하기도 하고 우주처럼 주변 사람들을 때리기도 한다. 이때는 대화를 시도해도 소통이 안 되고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진정이 안된다. 짧게는 20분 안에 끝나기도 하는데 길면 한 시간 이상 지속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는 이런 행동에 대한 기억을 못 한다. 심하지 않다면 치료가 따로 필요하진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고 한다. 야경증을 몰랐던 처음에는 1시간이 공포 그 자체였다.(물론 알고 나서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살면서 이렇게 공포를 느낀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달까. 우주가 운 적은 있지만 이리 악을 지르며 심하게 운 적은 없었고, 더욱이 통제불능인 상황이 온 적도 별로 없어서다. 앞서 언급했듯 처음에는 아이가 우리를 때리는 행위가 가장 충격적이라 아이의 폭력성에 대해 공부하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타인을 때리는 행위는 안된다고 단호하고 간결하게 말해줘야 한다는 글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상황 자체가 내게 대혼돈이고 너무나도 무섭지만, 아이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나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경증이라는 것을 안 것은 증상이 전보다 잦게 일어났을 때었다. 아이가 머리가 울리게 소리 지르며 때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다가 특정 시간이 경과되면 일어나 그런다는 것에 의문이 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야경증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가까워졌다.(육아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폭풍 검색은 내 마음을 저 아래 지하로 떨어뜨렸다. 야경증이 시작된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거나 잠을 깨게 할 행동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저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가 곁에 있다고 안심하라고 알리는 것, 손을 잡아주고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았다. 불을 켜기도 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혼내기까지 하다니. 무지했던 나는 야경증에 안 좋은 행동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니 전보다 더 잦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울며 깨면 벌떡 일어난다. ‘또 시작되는구나.’, 첫 시작은 늘 그렇듯 공포다. 그 후에는 ‘이렇게 울면 층간소음 어쩌지.’, ‘아동학대라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걱정도 섞인다. 통제 불능 상태로 들어가며 ”아빠 저리 가!”, “엄마 안아줘!”, ”물 줘! “, ”책 가져와! “ 우주는 울며 지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목에 피 날 것처럼 소리 지르는 우주가 너무 안쓰럽다. 저 작은 아이가 얼마나 목이 아플지, 자기도 모르게 얼마나 무서울지. 그리고 가장 크게 밀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 모습에 대한 자책과 분노다.
우주는 우리가 자신의 지시대로 하면 잠시 괜찮아지곤 했다. 그리고 다행히 우주가 울며 말해도 나는 대부분 해석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당황하면 어쩔 줄 모르는 성격의 남편이 악 지르는 우주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는 거다. 아빠가 알아듣지 못하면 우주는 자신의 화가 목소리와 비례한다는 듯 더 우렁차게 울었다. 그런 와중에 우주 말을 이해한 내가 남편에게 알려주려고 하면 우주는 ’나 아직 더 크게 울 수 있어.‘라는 듯이 나에게 외쳤다.
“엄마 하지맛!!!!!!!”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우주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 가고 맥락이 없어도 포기 않고 옆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최선이었다.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우주는 끝없이 울 것이다. 그냥 이 전쟁 같은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야경증이 심하게 온 날이면 남편과 나는 숨죽여 울었다. 가장 끝에 찾아온 무기력함이 온 집을 채웠다. 야경증을 없애는 방법을 몇 번 검색했는지 알 수 없다. 남편과 서로 찾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생활 규칙을 정하고, 지켜나가면서 그 생지옥 같았던 시간이 그래도 지나갔다. 정말 다행히도 우주는 전처럼 자주 깨지 않는다. 야경증 증상을 보여도 우는 소리가 전처럼 심하지 않고, 길어도 20분 정도 유지된다. 물론 이 야경증이라는 놈이 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우주가 극강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체력을 바닥까지 쓴 날이면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른다. 그리고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작은 아이가 야경증으로 밤을 힘겹게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부모도 꺼진 불만큼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야경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작은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위해 나름 우주가 야경증이 생긴 날의 특징과 야경증을 줄인 방법을 정리해 봤다. 비슷함이 주는 안도감이라도 받으시기를, 꼭 야경증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기도해 본다.
야경증이 걸린 날의 특징
- 우주에게 크고 작은 환경 변화 있었다.
여행을 간 첫날, 어린이집 적응 기간 등에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 아이가 재밌어하니 쉼 없이 놀게 했다.
특히 차를 오래 타고 약속에 가 논 날은 더 심했다.
만난 사람들은 우주가 지친 기색이 없으니
더 놀기를 원했지만, 사실 그 순간 우주는
이미 체력적으로 방전이었다.
- 정서적 유대가 다른 날에 비해 적었다.
엄마, 아빠가 유난히 힘든 날은
우주와의 놀이에 집중 못하거나 미뤘다.
야경증을 줄인 우주 엄빠의 노력
- 아이가 왜 스트레스받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우주는 작은 변화도 크게 반응하는 성향이라
변화를 미리 눈치채고 설명해 줬다.
괜찮을 거라는 안심시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우주는 어린이집에서의 시간이 길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면 왜 그런지 물어보고
담임쌤에게 꼭 조언을 구했다.
- 주말 약속 시, 우주의 상태를 긴밀하게 체크한다.
사실 우주는 스트레스 보다도 체력적 이유에서
야경증으로 고생한 기억이 많았다.
남들은 몰라도 엄마, 아빠에게는(엄마에게는..?)
우주의 컨디션이 보인다.
약속 상대가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우주를 지키기 위해 몸상태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귀가했다.
- 사랑받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자기 전.
잠이 들기 전 우주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우주가 오늘 멋지게 해낸 일을 말해줬다.
우주가 좋아하는 자장가를 조용하게 틀어줬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 우리도 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을 노력한다니 신뢰가 가지 않을 수 있으나
엄빠의 개인적 행복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숨 쉴 공간이 있어야 사랑을 줄 수 있다.
최대한 의무나 역할을 내려놓고
남편도 나도 더 악착 같이
온전한 나 자신만의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