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타임 9
지민과 영채, 도윤은 놀란 새끼 고양이들처럼 서로 붙어서 이 수상하고 말 많은 사람을 관찰했다.
“자기들, 보기 답답한데 헬멧이랑 방충 옷 좀 벗어, 걱정하지 마. 학교 안은 내가 기가 막히게 방충막을 해놨으니까. 이보나시티 돔보다 여기가 더 강력할걸? 아유, 요새 내가 더운 걸 참을 수가 없어. 남이 덥게 입고 있는 것만 봐도 화딱지가 난다니까. 거기 아가씨는 손에 뭘 들고 있는 거야? 줘봐. “
영채는 쭈뼛거리며 종이를 내밀었다.
“ 아니, 이건 또 어디서 찾았대? 아, 그때 생각난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밤새워 연구하던 젊은 시절, 지금보다 관절도 튼튼하고 머리숱도 많았지. 뭣보다 내 생식능력도 그땐 왕성해서-”
“ 당신이 모기-나노봇을 만들었군요.” 지민이 말을 끊었다.
“ 내가 만들었다기보단 환경오염이랑 이상기후로 모기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 버리니까 내 연구를 살짝 접목해 본 거지.”
“ 무슨 연구요? “
“ 나노봇 연구지. 모기에 나노봇을 결합해 사람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봐.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게다가 모기는 크기도 작은 데다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니까 쓸모가 많을 거 아니야.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 기술을 사게 될 기업이나 정부의 몫이고. 기획 자체는 괜찮지, 안 그래?”
“혹시 이 물질이?” 지민은 파이프의 물질을 가리키며 물었다.
“ 맞아. 이걸 여기저기 발라놓으면 모기가 와서 이 젤리를 먹어. 먹는 사이에 나노봇이 모기의 신경 체계와 결합한단 말이야. 복잡한 건 어차피 설명해도 모를 테니까…”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세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고요!” 영채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귀 아파. 나도 시계폰 정도는 있어. 이 모기 나노봇들이 처음에는 설계대로 내 명령을 잘 따랐거든. 그런데 나노봇의 네트워크가 최상위 인공지능 데이터에 조금씩 접속하더니 데이터 활용은 물론 일사불란하게 단체행동까지 하더라? 권한을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더라고. 아직 완전히 동기화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더벅머리가 말했다.
“그러면 돔 밖으로 인간을 유인해서 죽게 만든 것도 다 모기의 의도라고요? 배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민이 말했다.
“ 글쎄, 배후가 있을까? 모기나노봇들이 나노봇과 결합을 해도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하더라고. 아니 훨씬 더 많은 피를 필요로 하게 된 것 같아. 사람들이 방충처리된 실내에서만 생활하니까 걔들이 열받..”
“ 나노봇이 구동되기 위해 인간의 피가 더 많이 필요했던 거군요.”지민이 말했다.
“ 그렇지. 내가 설계할 때는 인간을 유인해서 죽이라는 명령 따윈 없었어.” 더벅머리가 대답했다.
“ 그 모기들이 유인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아니 근데 몇 번이나 봤다고 자꾸 반말을, 어, 어떻게 하는 건데?” 영채가 말했다.
“ 라키야.” 도윤이 말했다. “룸메이트가 쓴 쪽지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래. 라키의 신보 무언가가 사람의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 나노파티클이라는 거지.” 더벅머리 여자는 찐득찐득한 갈색 얼룩이 묻은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파티클? 그게 뭔데?” 영채가 물었다.
“ 나노 입자 형태로 음파를 통해 확산하기도 하지, 세뇌하거나 행동 제어가 충분히 가능, 아니 혹시 네 룸메이트라는 애 진진모 회원인가? 진진모 회원 중에서도 글쓰기 100개, 댓글 500개, 출석 1,000번은 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본데. 참고로 내 닉네임은 나노 도사인데 진진모 랭킹-” 더벅머리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 나노봇들은 지금 돌아다니면서 자기들의 힘을 시험해 보고 있는 걸까? 그러면 최상위 A.I와 완전히 동기화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지민이 말을 잘랐다.
“인간을 마음대로 주무르겠지. 돔이나 방충옷 따위에 숨지 못하게.” 더벅머리는 대답했다.
셋은 멍해져서 서로를 잠시 바라봤다.
”그러면 모기 나노봇의 완전 자각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도윤이 물었다.
“넉넉히 잡으면 하루 남았나. 아니다. 한 12시간 정도, 더 빠를 수도 있고. 왜? 세상을 구하게? 그냥 하던 대로 누워서 블링크 피드나 돌려봐.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냥 모기의 완전한 노예가 되기 전에 맛있는 거나 먹는 거 정도?”
지민과 친구들은 거의 동시에 과학실 밖으로 나가 현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라면 먹고 갈래? 너희들 비커에 끓인 라면이 맛있단다? 너희 집엔 이런 거 없지?”
더벅머리는 현관까지 쫓아와서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