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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an 24. 2024

정호승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 시선집

내가 안읽은 정호승님의 시선집이있다니!!

놀라면서 반가워 얼른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시선집은 이미 다른 시선집에 실렸던 시들도 중간중간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좋다. 좋은친구를 여러번 만나는 것 처럼.


여전히 정호승선생님의 시는, 남성적이고, 여성스러우며, 단호하고 부드럽다. 또한 때로는 오싹하다

그래서 난 이분의 시를 사랑한다


마음에 드는 시 몇편을 타닥거리는 자판으로 옮겨본다.



# 첫키스에 대하여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다바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않으려다 보지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 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난 오솔길

역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으 눈물이었다



# 반지의 의미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만남에대하여 감사하자는것이다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나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울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꽃이 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영원하자는 것이다


# 무릎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떄가 일어설 때이다

무릎을 꿇고 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떄이다

낙타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꿇고 

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



# 애인이여


잠들지 말고 기차를 타라

기차가 달려가 멈춘 그 강가

갈대숲에 버려진 은장도를 주워

정처없는 내 가슴에 내리 꽂아다오

피에 젖어 바나가 흐느낄때까지

흐느끼다 수평선이 사라질 때까지

은장도를 꽂은 내 싸늘한

사체 한토막 바닷가에 던져다오

파도에 어리는 희디흰 달빛으로

달빛을 물고 나는 기러기떼로

나 죽어 살리니 애인이여

밤이오면 잠들지 말고 기차를 타라



# 쓸쓸한 편지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떄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얼굴

이제는 비가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인머물 곳도 필요하다


# 친구에게


젖은 우산을 접듯

그렇게 나를 접지 말아줘

비오는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그대로 접으면

젖은 우산이 밤새워 불을 지피느라

그 얼마나 춥고외롭겠니

젖은 우산을 활 짝 펴

마당 한가운데 펼쳐놓듯

친구여

나를 활짝 펴

그대안에 갖다 놓아줘

풀향기를 맡으며

햇살에 온몸을 말릴 때까지 

그대안에 그렇게



# 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있는가

봄이오면 봄비가 고여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고여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ㅣ며

더이상 당신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것은 독을 버리는일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 꽃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자리에 꽃으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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