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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28. 2020

사랑은 85도씨 소금 커피처럼..

솔직함과 사랑과의 관계

내가 사는 미국 엘에이는 먹거리 문화로 유명하다.


인종 전시장이라는 별칭답게 먹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음식들을 현지보다 더 쉽고 맛있게 경험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도 이 곳에 와서는 오히려 한국에서 못 먹어보는 한국 맛이라며 한식을 주로 찾는다. 각 국 이민자들의 전통 레시피와 미국의 질 좋은 식재료가 만나서 일으킨 시너지 효과인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 아카데미에서 트로피 4개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을 끝내고 간 곳은 샐럽들이 가득한 호텔 파티장이 아니라 ‘소반’이라는 엘에이 한인 타운의 한식집이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맛집들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힘든 이 곳에 그야말로 대기 손님들로 장사진을 치렀던 가게가 있는데 바로 대만 태생의 ‘85도씨’라는 베이커리 집이다.

지금에야 조금 한가해졌지만 몇 년 전 85도씨 베이커리가 새로 생겼을 때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깟 빵 쪼가리 디저트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두세 시간 줄을 서고.. 난리였던 기억이 있다.

85도씨 베이커리에서 파는 인기 있는 메뉴 중에 하나가 한국에서도 소금 커피로 유명한 씨 솔트 아이스커피(Sea Salt Iced Coffee)이다.

이름 그대로 아이스커피와 소금과의 조합이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커피와 소금이지만 그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울림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물론 무조건 커피에 소금을 섞은 것은 아니고 라테와 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에 소금의 짠맛을  더한 것이다.

사실 나는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고 별로 즐기는 타입도 아니지만 씨 솔트 아이스커피는 가끔씩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갑자기 커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커피 하면 일단 떠오르는 생각은 커피 향이다. 그윽한 커피 향기와 곁들인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반면 소금은 커피와 같은 흐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짠내 물씬 풍기는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서로 아무 관계가 없을 듯한 두 요소가 함께 섞이면 전에 없던 훨씬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것이다.

씨 솔트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랑은 말하자면 커피와 같은 느낌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윽하고 달콤하면서도 감성적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사랑은 커피처럼 여러 가지 맛을 낸다. 향기롭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고 빈 속에 마시면 속이 쓰리기도 하다. 뜨거울 때도 있지만 뇌를 얼릴 만큼 차갑기도 하고, 머그잔처럼 투박하고 거칠 때도 있지만 우유 섞인 라테처럼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울 때도 있다. 모두가 커피 맛이다. 한결 같이 커피스럽고 한결같이 사랑스럽다.

우리는 늘 커피 같은 사랑을 원한다. 그것이 라테이든 블랙이든 하다못해 믹스커피든 간에.. 어쨌거나 우리는 커피 같은 사랑을 원한다. 우리는 사랑 속에 이물질이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혹시나 사랑의 맛이 망쳐질까..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커피에 소금이라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맛이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사랑이 커피와 같다면 거기에 첨가된 소금은 뭘까? 우리의 사랑에 소금이 첨가되면 어떠한 맛으로 변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재혼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말이다.
재혼 가정은 이를테면   깨어졌던 유리그릇이다. 접착제로 다시 붙여 그런대로 그릇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깨진 자국을 안고 있는 유리그릇이다. 더구나 원래의 조각이 아닌 다른 조각들의 조합이기에 충격에 취약하다.

사랑이라는 접착제가 강하게 서로를 붙들어 주지 못하면 사소한 충격에라도 금세 금이 가고 다시 깨질  있기에 나는 평소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한다.

소금 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첨가할 소금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솔직함.. 조금은 까칠한...

결혼 초기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차마 입을 떼기 힘들어하며 고민하고 있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시켜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든 것이다.
아내의 고민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재혼 당시 나에게는 17살짜리 아들과 13 딸이 있었고 아내에게는 9 아들이 있었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고 있었다. 적어도 아내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던 겉모습과는 달리 아내의 속마음은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어느 순간 우울증 증세로 까지 발전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한 마음이 이해되었다. 신발이었다. 아이들 신발..

결혼  학생 신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는 생활 형편이 뻔하였다. 한정된 예산으로 학업을 마치려면  아껴 써야 했기에 평소 최소한의 지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신발을 새로 사는 경우는 신발이 작아져  이상 신을  없다거나 낡아져  신게 되는  가지 경우 외에는 없었다.

반면에 직장 생활을 하며 혼자 아이를 돌보던 아내는 나와는 사정이 달랐다.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시즌마다 비싼 농구화를 사주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와 결혼   눈치가 보여 막내의 농구화를 시즌마다 사주지 못하게  것이다. 처음에는 막내의 신발을 사면서 공평하게  아이와 둘째의 신발도 함께 구입하였는데 매번 그렇게 하지니 지출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막내 신발만 줄곧 사주자니 아이들과 나에게 눈치 보이고..

사람들에게 ‘역시 새엄마라서.. ‘ 이런  들을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으로 스트레스를 쌓아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깟 신발 문제로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못되게 느껴져 우울증까지 오게  것이었다.

울먹이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내를 안아주며 나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여보 막내 신발 시즌마다 사줘도 돼요. 그때마다  애들 신발 함께  사주어도 돼요. 새엄마 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친엄마가 되지는 않아요.”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내에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새엄마 같다는 소리 들을까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오히려 새엄마로서 당당했으면 . 농구 좋아하는 아이한테 시즌 별로 농구화 사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어? 단지 당신 마음속에 혹시 차별처럼 보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뿐인 것이지.”

당신은  몰라서 그래요. 이런 것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데.. 특히나 재혼한 우리 가정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알아요?” 아내가 반문했다.

무슨 콩쥐 팥쥐에 나오는 계모처럼 못되게 굴라는 소리가 아니야. 당신이 새엄마처럼 보일까  노심초사하는  당신은 영원히 계모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재혼가정의 새엄마인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에요. 애써 감추려 하지 말아요.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우리 가정의 유일한 엄마라는 사실도 잊지 마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나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솔직한 당신의 마음이야. 당신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처럼 대하면  마음은 반드시 전달되게 돼있어요. 그러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당신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아요. 아이들 혼낼  있으면 혼도 내고 소리 지를  있으면 소리도 지르고.. 칭찬해줄  있으면 칭찬도 해주고.. 그게 엄마의 역할이에요. 정말 마음속에  아이들은  아이들이다는 마음이 있다면  마음으로 솔직하게 뭐든지 해도  해요. 사실은 그게 진정한 사랑이에요.”

아내는 여전히 해결  되는 마음으로 시무룩해 있었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쉽나? ..”

 
재혼 초기에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우리 가정은 재혼 가정으로서 꽤나 건강하다. 나는 때때로 부엌에서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장난치는 것을  때가 있다. 그리고 막내가 나를 아빠라 부르고 스킨십  때면 속으로 감개무량하다. 그저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사랑하면 향기로움만을 생각한다. 커피는 커피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맘을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키면 사랑일  없다고 생각한다. 일견 맞는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같다. 비록 쓰라리더라도 솔직함이.. 비록 까칠하더라도 진솔한 속마음이 사랑을 더욱 풍요롭게, 고급스럽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85도씨의 소금 커피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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