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위한 열매들
과일이 좋다.
유년에는 과일을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사과, 배, 감 등 다소 고전적인 과일들이 집에 있었는데 꽤나 심드렁했다.
자취 초창기에는 과일이 비싸서 못 사먹었다. 마들렌이나 휘낭시에가 한 조각에 3천원인 것은 납득하지만 오이나 가지가 한 개에 1500원인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와 유사하게, 사과 한 알에 2천원인 것도 비싸게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망고를 샀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망고
시작은 마감할인 과일이었다.
생망고, 망고가 먹고 싶었다. 뜨거운 나라로 가서 작은 칼로 껍질을 벗겨 슥슥 썰어 먹던 그 망고. 21살에 인도에 가서 먹었던, 23살에는 말레이시아에 가서 먹었던 바로 그 망고. 맨손에 뚝뚝 흐르던 달큰한 망고 과즙.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다고 웃던 우리들.
따지자면 커피 한 잔 값이지만 과일 한 알에 4-5천원인 건 과소비를 하는 것 같아서 마감할인 망고를 샀다.
해외에서 먹었던 그 맛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맛있었다. 당장 동남아로 향할 수 없다면 마트로 가보자. 작은 사치가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나는 과일에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
정갈하게 손질한 과일은
심신의 안정을 준다
과일을 사고, 직접 손질을 한다.
참 신기하다. 열매는 나무가 준 선물같다.
이렇게 옹골찬 열매가 맺히고, 크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작은 기적들이 있었을까.
나무가 사랑했을, 빗물이 기꺼이 스며들었을
그 열매가 햇빛의 따사로움을 한껏 머금고
내게로 왔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감사히 누린다.
유리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며칠 간 살살 꺼내 먹으면
그 또한 좋다.
존중 받고 사랑 받는 기분이 든다.
담아둔 과일을 꺼내 먹으며
심신을 채운다.
과일을 사먹다보니 내 과일 취향도 찾았다.
물렁한 게 좋다.
물렁하고 달콤해서 과즙이 부드럽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열대 과일 그리고 논산의 자랑 딸기
한라봉이 제철이래서, 어제는 한라봉을 샀다.
달큰하고 향긋하고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아빠가 생각났다.
기술의 발달로 사시사철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지만 제철과일을 챙겨먹으면 삶을 더 아끼는 기분이 든다.
딸기와 함께 봄을 맞이하고
시원하게 수박을 썰어 먹으며 여름을 보내다가
가을에는 온갖 과일과, 복숭아를 먹으며 신선이 된 기분에 취하고
겨울에는 따끈한 방바닥에서 귤을 까먹으며 두런두런 밤을 보내는
그런 삶이라면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뭐 먹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