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태어난 곳으로(1)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언제나 스쳐 가는 찰나의 생각이 사건을 불렀다. 우연이 각종 펀딩이며 캠페인을 진행한다던 교내 프로젝트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찰나에 스치던 생각 덕분이었다.
우연은 언제나 사건을 불러와, 꼭 네가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함께 교회에 다니던 친구의 음성이 지나갔다. 생각처럼 찰나에 스친 음성이었다. 우연은 더 이상 별 볼 일이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에 나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둘 다 다 쓰러져가는 교회를 양수에 둥둥 떠다닐 때부터 다녔으나, 학교도 달랐고, 다니던 학원도 전부 달랐으므로 소꿉친구치고는 접점이 종교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교 무렵, 우연은 대대로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서 교회를 박차고 나와 무교를 선포했다. 감히 삼 남매 중 막내가 무교를 선포하니 가족 모두가 몸에 사탄이 들어갔다며 치를 떨었다.
그 즈음 우연은 혜정과 멀어졌다.
어디야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우리 성탄절에 보라색 나뭇가지 쌓아두고 그 앞에서 기도했잖아. 생각 안 나?
다음 주에는 나올 거야?
잠든 거야?
제발 나와, 뭐가 됐든 나와서 얼굴 한 번만 봐.
너 두렵지 않아?
중학교 시절의 혜정은 우연에게 지나친 연락을 해왔다. 모두 우연의 방황―그러나 이 방황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시간에 집안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다―이 시작된 탓이었다. 혜정은 할 일을 다 해가면서 우연의 마음을 돌리려 들었다. 제발 교회에 나와. 너 그렇게 반항적인 사람 아니었잖아. 너를 존중하지만 우리 나중에 같이 천국에 가자. 나, 친구를 잃을까봐 두려워. 너와의 관계가 끊어지더라도 너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만들어야겠어.
어느 순간 우연은 혜정을 차단했다. 집안 사람들의 사탄설과 다를 바가 없는 혜정의 지나친 말들이 우연의 머리를 울렸다.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림음은 황천강을 건너는 망자의 질퍽이는 소리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우연은 혜정의 소식을 아직 교회에 다니는 가족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혜정은, 아주 잘 살고 있었다. 혜정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회장을 하더니 지역 그림 대회에서 입상했다고 했다. 혜정은, 학교에서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서 동아리 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혜정은, 처음 영어학원을 다니자마자 첫날 본 백 오십 개짜리 단어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우연이 다니던 영어학원이었다. 혜정은 영어학원에 처음 발을 들이자마자 벙찐 표정으로 우연을 바라봤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멍하니 우연을 바라보던 혜정이 건넨 첫 마디였다. 우연은 어쩔 줄 몰랐다. 혜정이 우연히 고른 영어학원이 세상에 우연 자기 자신이 다니는 영어학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연은 경악했다. 덕분인지 그날 수업은 뭘 배웠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내면에서는 도망치라는 비명이 바닷가의 파도처럼 몰려왔다. 마침 그날이 학원 결제일이었던 우연은 하루치의 학원비만 다시 결제한 뒤 학원을 옮겨버렸다.
혜정과의 인사는 없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혜정이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랄 때면 나오는 특유의 멍한 눈빛은 어릴 때와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우연은 당황했다. 스펙이라도 어떻게 쌓아보려고 들어간 교내 프로젝트 동아리에서 혜정을 만날 줄은 몰랐다. 특히나 혜정이 같은 학교에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연이 생각하기에 혜정은, 늘 우연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으므로.
“그……그러게.”
우연은 한숨을 쉬었다. 혜정은 한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돌아서서 사람들 틈으로 섞여들었다. 우연은 파도에 쓸려가는 혜정이 몇 갈래의 모래로 쪼개지는지 바라봤다.
동아리 첫 오티는 고등학생 때의 영어학원 수업과 같았다. 우연은 동아리 회장이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꼭 물속에서 뻐끔대는 붕어 같았다. 그러고 보니 회장도 붕어, 부회장도 붕어, 그 옆에 있는 홍보부장도 붕어……. 눈은 다들 거멓고, 안광이 없고, 빛도 흡수하는 검은 눈을 가졌다. 순간 우연은 숨이 찼다.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은 바다일지도 모른다. 우연만 빼놓고 다들 바닷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은 내가 바닷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부른 것이 틀림없다. 우연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혜정. 혜정이를 찾아야 한다. 너도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왜냐하면 바다가 익숙할 테니까. 그 처음에서 숨을 쉴 줄 알았던 거지. 너는 박차고 나오지 않았으니까, 너는 아직 멀쩡하니까, 너는 방황하지 않았으니까, 너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너는…….
“저기, 괜찮아요?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더니 왜…….”
우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우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제야 퍼뜩 숨을 몰아쉰 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렸다. 우연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아직 나는 바다에 빠질 준비가 안 됐구나.
고개를 다시 돌렸다. 우연은 혜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혜정은 바다를 잃은 적이 없었고, 애초에 바다를 자기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다들, 다들 그랬을 테니까. 적어도 우연의 시선에는 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혜정은 한숨을 쉬는 우연을 목격했다. 그래서 자리를 떴다. 괜히 화가 났다. 혜정은 방황하고 있었다. 그들이 붙인 이름에 따르면 그랬다. 혜정은 무교였다. 어느 순간 종교를 박차고 나와 우연히 먼저 간 친구의 길을 따랐다. 우연, 그놈과는 지긋지긋하게 연락도 안 됐는데 사람들은 친구 아니랄까봐 그대로 쫒아 간다고 뒷말을 해댔다. 그럴 때면 혜정은 처음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 아직 터지기 직전의 세계. 방출되기 직전의 세계. 눈이 뜨이기 전부터 말씀과 찬송을 들으며 자랐던 세상을, 모든 것이었던 일말의 신념을 혜정은 생각했다.
여섯 살도 안 되었을 무렵, 보라색으로 물든 플라스틱 나뭇가지를 들고 아브라함처럼 제물을 바쳐 기도드려야 한다고 했을 때, 우연은 혜정 곁에 꼭 붙어 앉아있었다. 열세 살 때는 눈을 감고 술래가 되어 친구들을 잡으러 다닐 때, 다 도망치고 홀로 남은 혜정을 우연이 혼자 데리러 놀이터까지 왔었다. 중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할 때도 유일하게 일요일마다 제 편에 있던 우연은 상냥했다. 모든 날이 차가웠던 그 시절에 일요일만 봄날이었다. 혜정은 그 애의 생각이 좋았다. 그 애의 생각이 너무 좋아서, 중학생 시절 성경을 한 번 독파할 정도로 독실해졌다.
끝나고 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 골려준다고 다 도망가버리잖아. 그래서 나만 그냥 있었어.
사춘기가 막 온 차가웠던 중학생 시절에도, 아직 방황하기 전의 우연은 그야말로 모범생 같았다.
세상에 진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분의 이름을 헛되이 하면 안 돼. 물로 벌하지 않으시겠다 약속하셨지만……, 언젠가 세상이 요동치며 물이 넘쳐흐를 때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겠지.
혜정은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부회장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동아리 회장을 바라봤다. 분명 몇 분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꼭 처음 보는 얼굴 같았다. 혜정은 다시 동아리 회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갈수록 동아리 회장의 얼굴이 시커면 심해의 물고기 같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두 눈 없이 입만 뻐끔대는 이상한 물고기. 이상한 물고기는 자꾸만 무슨 말을 하려 들었다. 혜정은 그 순간 물에 빠진 익사자가 됐다. 익사자가 돼서 물에 빠져도 구원을 찾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런데 있잖아……, 어떤 진리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걸까, 진리를 몰랐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은 선택의 권리도 없이 죽는 걸까. 어쩌면 양수에서부터 세례를 받았던 우리는 폭력에 휘둘렸던 게 아닐까. 우리는 선택도 없이……, 아니다. 미안. 다음주에 보자.
우연은 그렇게 떠나갔다. 우연은 다음 주에 나오지 않았다. 우연은, 꼭 혜정에게 건넨 말이 흐르는 말이었던 것처럼 그대로 흘러가 버렸다. 세상이 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물로 다시 벌하지 않겠다던 무지개가 영영 뜨지 않을 것 같았다.
혜정은 생각했다. 살기 위해 처음을 떠올리면 일요일에 나가 놀던 교회와 말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가슴 속에 못을 박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혜정은 모태신앙이라는 네 글자만으로도 독실해질 줄 알았다. 평생을 옳다고 믿고 살아왔던 신념이 실상 사람 하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던 계명을 어겼다. 거품이 났다. 추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정신을 좇는 게 아니라 거품 속에서 태어난 여신 하나를 좇는 느낌이었다. 죄를 지었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짓는 죄였다.
그 애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꼭 영어학원에서 맞닥뜨렸던 날처럼. 한없이 모범생처럼 살던 우연을 따라가고 싶어서 일주일간 죽어라 외운 백 오십 개의 단어는 딴 생각을 하면서도 줄줄 나왔다. 그랬더니 만점을 받았다. 물론 우연이 떠나간 뒤로는 모범생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졌다. 혜정은 처음 한 번 일 등했다고 저를 모범생이라 불러대는 사람들이 싫었다. 꼭 거품 속에 사는 느낌이었다. 물에 닿으면 반대편 물에 흡수될 것 같은 거품. 바람만 불어도 다 터져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거품.
혜정은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학원은 잘 나가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혜정더러 그 돈이 무슨 돈인데 기껏 보낸 학원도 제대로 나가지 않느냐고 구박을 해댔다. 혜정은 귀를 막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을 도망쳤다. 교회도, 신앙도, 믿음도, 학업도 전부 도망친 것이 혜정이었다. 혜정은 나약했다. 너무나도 나약해서 언제나 우연을 보면 똑바로 살아가는 저 애가 부러웠다.
언젠가는 그 애를 만나야 했다. 혜정은 그 애한테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러면 어떤 진리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걸까. 어떤 진리가 이 지옥같은 죄책감에서 날 빼낸다는 걸까. 어떤 진리가 나를 나의 바다에 거품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