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1월12일
마음이 무겁다. 노장의 선배님은 삭발을 한 사진을 올려 단식농성을 한다고 알려왔다. 전태일열사 47주년 되는 오늘 전국노동자대회에 두 팀의 네 명의 노동자들은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성큼 올라가버렸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의 간부이자 민주노조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노동조합은 헌법적 권리이지만 선언적인 권리에 불과하다. 현실의 노동조합은 저항하면 탄압받는다. 권리의 주체가 되려고 하면 짓밟힌다.
전태일열사가 그랬듯이 법전에 잠자는 권리를 깨워 흔드는 순간 국가는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는다. 그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이요. 총자본을 향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노동자들의 단결은 요원해 보인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임순분부녀회장님 마늘밭으로 향했다. 임회장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내 마음이 그리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일을 거들어야 할 거 같았다.
임회장님은 괭이로 골을 팠다. 나는 손가락 길이보다 조금 더 긴 간격으로 패인 골속에 마늘씨를 박아넣었다. 한 골에 씨를 다 뿌려두면 다음 골을 괭이로 파면서 자연스럽게 앞 골에 흙을 덮는다. 아주 아주 길다란 밭이었고, 길다란 골이었다. 한 골 하는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딸과 사위가 왔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중학생 손주와 초등학생 손자 그리고 네 살박이 얼라손주들이 밭으로 왔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주말이면 할머니 밭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일을 잘 해낸다. 중고등학생인 아이는 농사일 거들면서 용돈벌이도 하는 셈이다. 한번도 불평불만 늘어놓는 일 없이 묵묵히 밭일을 해낸다.
임회장님이 한창 사드 때문에 바쁠 때는 주말만 되면 아들과 딸네가 들어와서 엄마대신 농사일을 했다. 농촌에서 가족을 비롯해서 소규모의 공동체가 무너져버리면 생존이 가능하기나 할까? 농촌사회에서 공동체는 생존을 위한 연대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배우고,노동을 하므로써 원숭이에서 인간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노동은 여럿이 함께 할 때만이 생산력을 키워낼 수 있다. 농촌사회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공동체의 단위가 가족을 기본으로 할 것이 아니라 마을의 부락을 기본단위로 계획하고 사회를 재구성해보는 것을 상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 ‘땅과 자유’를 보면 스페인내전을 겪던 시골의 작은마을 혁명군이 정부군을 물리치고 나서 농장의 공동화작업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유주의이념이 판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체제에서 농촌공동체는 붕괴의 위기 속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이것마저도 붕괴되면 인간의 생존은 더욱 위협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견뎌내고 버텨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치열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소성리의 저녁은 빨리 찾아온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말이 딱 어울릴 소성리의 밤이 찾아오면 아랫마을에 사는 경임엄니와 상돌엄니가 윗마을의 마을회관으로 올라오신다. 은방울자매로 노래자랑에 일등했던 옥술엄니를 며칠 동안 뵙지 못했다. 빼빼마른 몸에 초췌한 얼굴이지만, 신명이 많아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출 때면 어느누구보다 신나고 적극적이었던 분이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셔서 얼굴에 생기가 없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지난 여름부터 잔기침이 계속 끊이지 않았다. 감기약만 드셨다고 한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니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고 병원을 가도 잦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히 여긴 의사가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수심이 깊어지면 기력도 쇠해지는가, 옥술엄니는 그러고 나서부터 밤에 나오시지 않는다. 늘 세 분이 나란히 어둠을 헤치고 윗마을까지 걸어오셨다가 내려가셨는데, 오늘은 두 분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난로불 앞에 앉아계신다. 옆집 동무가 아프다고 하니 두 엄니의 얼굴도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소성리에도 주로 주목받는 엄니들 몇 분이 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듯 엄니 한분 한분의 사연을 알게 되고, 특기나 개성을 경험하게 되면 참 기막히게 멋진 분들이 많다.
은방울자매의 활약이 한동안 우리에게 큰 자랑거리였다. 민들레합창단이 설 수 있었던 초석을 다진 분들이기도 하다. 옥술엄니와 경임엄니, 상돌엄니처럼 모두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가능할 수 없었던 거지. 특히나 가락에 신명나 하던 옥술엄니가 아무탈 없이 다시 소성리 난로가로 올라오실 수 있기만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