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1월24일
아침에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운전이 가장 걱정이었다. 오늘은 금요일 소성리마을 지킴이 당번서는 날이다. 아침 일찍 올라가야 한다. 누워서 뒹글거리며 눈 핑계 대고 가지말까 하는 소심한 고민을 잠시했다.
소성리로 가는 길에, 늘 내가 다니는 월곡지 방향으로 들어서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황홀해졌다. 눈발이 서린 산꼭대기위로 단풍물이 지지 않아 오묘한 색채를 띤 달마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설경이 펼쳐진 달마산에 빠져들었다.
겨울답다. 첫눈이구나. 그제서야 첫눈을 맞이했음을 깨달았다.
아담하고 소박한 소성리의 설경은 절경이었다. 아름다운 소야의 들판에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한눈에 다 담고 싶을 만큼 이쁜 풍경이었다. 겨울을 만끽하게 만들어준 설경이 좋다.
사드공사차량을 막을 때 연행되어 수감 중인 둥글이교주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날이다. 김천법원으로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성리의 사드 때문에 싸우다 구속위기에 처한 둥글이교주님이 걱정도 되고, 응원도 하기 위해서 금연엄니와 임회장님, 김성혜교무님을 모시고 김천법원으로 향했다. 법원 안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둥글이교주 얼굴은 못 봤다. 변호사만 나와서 상황을 설명해준다. 비관적이지 않았다. 물론 결과는 나와야 하겠지만,
김천경찰서 유치장을 찾아갔다. 둥글이교주가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누구랑 통화중인가 했더니 유치인과 면회인의 대화를 전화기로 하는 거였다. 유치장 면회는 예전에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했었는데 어찌 이렇게 머릿속에 지우개로 닦아낸 듯이 기억이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유치장안의 둥글이교주를 보자 금연엄니는 눈물을 터뜨렸다. 우리 때문에 괜히 엄한 사람이 붙잡혀갔다며, 미안하고 안쓰러움이 북받쳤나보다. 오늘저녁에 나올거란 한 가닥 희망이 있어서 그나마 사람들은 웃으면서 여유있게 면회를 할 수가 있었다.
경찰폭력에 갈비뼈가 두 대가 나간 찬동형님 병원도 들렀다. 찬동형님이 입원한 병원은 대형병원이었다. 6인실인데 환자는 세사람밖에 없어서 병실은 헐렁했다. 삐쩍 곯아빠진 찬동형님은 쓸쓸히 누워있었다. 우리를 보자 울컥한 듯 눈물이 맺혔다. 또 서럽고 울화통이 터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여기서 말리고, 저기서 말려도 기어이 경찰들 틈사이로 기어들어가다가 폭력적으로 끌려나오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에는 찬동형님도 너무 흥분해 있어서 자신의 갈비뼈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있었을거다. 덩치는 작고, 힘도 없어보이는 이가 깡다구는 보통을 넘는다. 아무리 말려도 경찰들에게 끝까지 붙어서 싸운다. 사실 찬동형님 뜯어말리는 게 더 힘이 쓰일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저 경찰들이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감금시키고 고착시켰으니까 분노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해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을거라 상상했는데 다행히 움직인다. 가슴팍을 고정시키고 감싸는 아대를 한 모양이다. 병원은 답답하지만 뼈가 붙을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고 치료받을려면 잘 참고 견뎌내야한다. 벌써부터 소성리가고 싶다고 투정이다. 임회장님은 우리말 안 듣고 지 맘대로 다쳤으니 소성리 올 생각하지 말고, 여기 꼼짝 말고 치료받으라고 야단을 치셨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갈비뼈골절로 다친 사람이 여럿이다. 모두 치료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병원에 꼼짝 말고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지금은 괜찮다고 나중에 먼 훗날도 괜찮은 게 아닐테니까. 지금 소홀했다간 후회할 일이 되고 말테다.
사드반대 투쟁이 소성리주민들만의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지만, 소성리로 연대 와서 다치고 연행되고 수감되어있는 소중한 연대자들을 보니 마음이 착찹하다. 내가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닌데, 미안하고 안쓰럽고, 우리대신 다친 거 같아서 면목이 없다. 우리대신 갇힌 거 같아서 볼 낯이 없다.
그래도 다행히 저녁시간에 둥글이교주가 풀려나왔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둥글이교주의 얼굴보고서야 소성리엄니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실컷 싸우고 나서 다치고 연행되고 구속된다는 소식은 걱정보따리가 되어서 소성리엄니들의 마음을 짓눌렀나보다. 다행이다. 풀려나서 그 짐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다행이다. 우리 대신해서 누구도 희생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