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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0. 2021

[ 1 ] 코로나 시대에 건강을 지키는 법

독감 예방백신 접종예약

내가 지난 일년동안 겪었던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낼 수 있을까? 

악몽같던 사건이 시작되기 전 

그 전부터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해보겠다.



2020년 10월 가을.




나는 그림을 그린다.

돈이 많이 드는 그림작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2020년 4월 취직했다.

회사는 일주일에 3일, 일이 많으면 4일 나갔다.

근무시간은 여느 평범한 회사와 비슷했다.

 

내가 하던 일은 누구든 미술실기를 해봤다면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노동강도는 처음엔 괜찮았으나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몸과 눈이 고단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미술작품의 원작자로부터 일감을 하청받고

일정한 생산방식과 수량에 맞춰서

여러사람이 같이 작업을 했다.

쉽게 말하자면 한 점의 이미지를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처럼

정해진 장 수만큼만 생산하는 것이다.


직원은 대충 12명 정도에서 빠졌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작업의 특성상 전체인원이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종이판 제작 담당이고

다른 팀은 종이판에 그림을 그려넣는 일을 맡는다.


종이판은 종이반죽 상태에서 완성단계까지

전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제작과정은 복잡하지 않은데 시간이 걸린다.

종이판 하나를 다 완성하고나면

목, 어깨, 허리가 무척 아파서

중간중간 순서를 정하고 돌아가며 쉬었다.


종이판 작업의 시작은

종이판의 요철부터 만든다.

요철을 만들기 위한 종이는 따로 만들어야한다.


먼저 냉장고에 보관된 종이반죽을 조금 꺼내서

넓은 다라이 물에 골고루 푼다.

종이반죽들을 물 속에서 뭉침없이 흐트려놓는다.

그다음 창문크기의 뜰채에 일정한 두께로 뜬다.

몇번 반복하다보면 무척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만들 수 없다.


뜰채에서 물이 다 빠지면 분리시킨다.

분리된 얇은 반죽이 다 마르면

종이가 된다.

이걸 칼국수처럼 길고 가늘게 자른다.


칼국수가 된 종이들을 가지고 

요철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 물 분무기로 흠뻑 적셔가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뾰족한 막대로 

틀(몰드)에 쑤셔넣는다.

틀에 들어간 종이가

너무 뚱뚱해도 안되고 텅 비어있어도 안된다.


종이판의 요철이 다 만들어졌으면

바로 그 위에 요철과 한 몸이 될 넓은 판을 만든다.

칼국수 종이는 치우고

냉장고에서 꺼낸 종이반죽을 사용한다.


일정한 판의 두께로 요철 위를 전부 덮는다.

판의 높이나 폭은 둘다 대략 170cm 다.

다 덮은 후 종이판의 수분을

마른 수건으로 일일히 빼는 작업을 한다.

종이판 위를 이불처럼 덮고

수건에 수분이 흡수되도록 두손으로 두드린다.

심하게 축축한 곳이 있으면 반복한다.

손바닥으로 만져서 물기가 촉촉하기만 하면

하루정도 자연건조 시킨다.


하루가 지나면 이제 물기는 거의 없고 눅눅하다.

표면만 살짝 마르면

열풍기 8개를 총동원해서

본격적으로 뜨거운 공기로 말린다.

몇 도였더라. 

아무튼 작업중에 화상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뜨겁다. 

여러 위치와 방향에서 전략적으로 뜨거운 바람을 쏘이면

구석구석 모든 수분이 증발했다.


종이판 건조가 끝나면

틀(몰드)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한다.

종이반죽이 모자라는 부분이나

너무 튀어나온 곳을 다듬는다.



여기까지 종이반죽과 관련된 모든 일이 끝난다.

마지막에 젯소칠을 하면 종이판 완성이다.


이렇게 다 만들어진 종이판은

채색하는 사람들이 넘겨 받는다.

컬러는 원작자의 컨펌대로 채색에 들어간다.


먼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세로로 세우고 바닥에 벽돌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정해진 바탕색으로 한 겹 덮는다.

바탕색이 다 마르면

본격적으로 채색작업을 시작한다.


채색작업의 포인트는

물감과 붓질로 그림자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냥 그림자도 아니고 약간 흔들리는 그림자다.

모든 공정이 중요했지만 결정적으로 

원작자의 스타일과 서로의 그림체가

너무 다르지 않게 그리는 일이 중요했다.


매일 반복되는 채색작업이 지겨워질 무렵

나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종이판 제작에도 참여했었다.


중간에 직원 한 명은 출퇴근이 힘들고

코로나 감염의 위험도 있어서 얼마전 퇴사를 했다.

나도 쉬고 싶었지만 당장은 내 목표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내년 봄까지 일해서

미술작업 재료비를 넉넉하게 마련할 계획이었다.

 

10월이 되자 결정을 내렸다.

이 일을 하려면 자주 외출 해야하고

같이 사는 부모님 건강도 신경쓰여서

유료 독감백신을 예약했다.


이전까지 독감예방접종은 남의 이야기로 여겨왔다.

하지만 독감과 코로나가 겹쳐서 오면 위험하다며

사회가 접종을 강권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 서론이 너무 길었나?

이제 본격적으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순서대로 써봐야겠다.



백신 맞은 날


  

병원에 전화예약을 하던 날 전후로 

독감백신과 관련된 여러 뉴스들을 접했다.

상온노출된 독감백신 문제

그리고 접종 후 다리 힘이 풀린 

어느 어린 남자아이에 대한 뉴스.


 

그렇게 심란한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동네 병원은 유료접종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큰 흐름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행이 되는 듯 했다. 


살을 찢는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평생 안 맞으려고 했지만

부모님은 벌써 접종을 모두 마쳤다.  


병원에서 10월16일 금요일에 접종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회사에는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갔다. 

일찍 병원에 도착한 나는 

대기없이 바로 주사실로 안내받았다. 



 간호사의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 팔에 주삿바늘이 잽싸게 찌르고 빠졌다. 

질질 끌고 고민하던 일을 드디어 끝냈다. 

엄청 겁을 먹었다가 긴장이 풀려 

그만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문지르지 말고 가만히 대고 있어요~."


 

간호사가 축축하고 차가운 소독솜으로 

내 왼팔에 뚫린 빨간 점 구멍을 

가볍게 덮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뭔가를 꺼내더니 

하얗고 동그란 반창고를 

착 붙여줬다. 

 

접종 후 근처 까페에서 쉬고 있다가

오후에는 회사에 일하러 갈 예정이었다. 

접종 후 몸의 반응이 궁금했다.

 

"백신 맞은 날에는 몸살이 생길 수도 있죠?" 

 

간호사는 조그만 철제 쟁반을 들고 

주사실을 나서려다 잠시 생각하더니,

"사람마다 다 다른데 오늘은 가능한 한 

힘든 일은 안하는게 좋아요." 라고 말했다.

 


접종을 마치고 후련해진 기분에

내 주변의 가까운 이곳저곳의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 친구도 친구의 가족들도 

얼마전 다같이 독감예방접종을 마쳤는데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우리 엄마 아빠도 지금 건강히 잘 지내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굳이 걱정을 사서 하진 말자. 

 

이제 앞으로는 이대로 열심히 돈 벌어 모으고 

남는 시간에는 작업에만 집중하는거야. 

그러면 나머지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1년간의 계획을 그렇게 굳히기로 마음먹었다.


앗 혹시 아무나 맞을 수 있는 독감백신을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했나?

그런데 이때가 내 삶을 크게 흔들어놓은 

결정적인 순간이다보니.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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