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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Oct 28. 2024

숨은 신발 찾기

신발가게와 애증의 관계

  나는 운동화를 선호한다. 어느 회사 제품이라도 좋다. 굳이 유명 업체가 아니어도 좋다. 어디를 다니더라도 운동화만 한 신발은 없다. 슬리퍼는 간편하긴 하지만 돌이 많은 곳에서는 신을 수 없고, 구두는 예의를 차려야 하므로 편안한 자리에서는 신기에 불편하다. 그에 비해 운동화는 디자인에 따라 편하게 아무 곳에서나 신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운동화를 자주 신는다.     

  내가 꼬맹이였을 때, 아버지는 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논일하고 돌아오시면, 수돗가에서 고무신에 묻은 모든 하루의 흔적을 물로 씻어냈다. 질기디질긴 검정 고무신에 거센 물줄기를 뿌리면 지저분한 짚과 진흙이 물살과 함께 씻어 내려가곤 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무더운 여름 홍수에 새 나가는 논의 물줄기를 온 힘으로 틀어막고 오셨으리라. 물기를 빼려 댓돌 한쪽 구석에 신발을 세우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검정 고무신이 들 일하기에 딱 맞지. 흰색은 묻으면 물들어버리니까 별로 좋지 않아.”

아버진들 흰 고무신을 신고 싶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말 속에는 그렇지 않다고, 검정 고무신이 더 편하고 좋다고 아버지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며 내 감정을 접어 넣는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에 젊었던 할아버지는 늘 흰색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항상 땀 흘리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는 정반대였다. 집안 화초를 관리한다고 일일이 조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거나,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를 다듬곤 하셨다. 농사일이라고는 흙 한 번 손에 묻혀본 일 없던 기억 속 할아버지. 이따금 곱게 정장을 차려입고 마을회관으로 마실 가는 할아버지는 흰 고무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흰 고무신을 보면 딸만 둘인 아버지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지금 내 발 치수는 250밀리미터다. 어릴 적부터 키가 큰 편이어서 그런지 발도 크다. 학교 신체검사를 한다고 줄을 서면 끝에서 두 번째는 반드시 내 자리였다. 키 큰 것이 뭐 나쁘고 싫으냐 하겠지만 키가 아니라 발이 문제다. 발을 씻으려고 앉아 발을 보아도 내 발은 크고 징그러웠다. 다리가 긴 건 좋았지만, 여고생의 발 치고는 너무 크지 않은가. 지금은 영양상태가 좋아져 워낙 키 크고 발이 큰 사람들이 많고, 대형 사이즈도 많으며, 신발가게에는 큰 치수의 신발이 죽 늘어져 있다. 하지만 예전엔 별로 없었다.

  내겐 언니가 있다. 언니는 나보다 키가 작아서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런 언니가 부러웠다. 언니는 회사 다니면서 예쁜 굽과 다양한 디자인이 있는 신발을 신었다. 235의 언니 발은 정말 부러웠다. 제 마음대로 어느 때고 살 수 있는 신발이 늘어져 있었으니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으리라. 내 사춘기 시절 250의 여성용은 신발가게에서도 거의 취급하지 않는 거인의 치수였다. 그나마 있는 신발이라곤 운동화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교복에 어울리는 구두를 사주시겠다면서 신발가게에 데리고 갔다. 읍내에 나가려면 하루에 네 번 있는 마을버스를 때맞춰 기다려야 했다. 그 버스를 놓치면 삼십 분을 걸어 나가 큰길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걸어 나가야 하는 길은 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좁다란 길에 캄캄했다. 산속으로 가느니 조금 부지런한 게 낫지 않겠는가. 결국 마을버스를 타기로 했다.

  일찍부터 준비한 엄마와 집을 나섰다. 성격상 미리 준비하는지라 버스 시간보다 이르게 나와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구두를 살 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은 도통 흐르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동네로 들어오는 버스가 먼지 방귀를 뿜어대며 정류장에 멈추었다. 장에 맞춰 물건을 사려는 동네 어르신들이 버스 좌석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셨다. 엄마는 아직 날 어린애로 취급하는지 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구두를 산다는 흥에 겨워 나는 엄마를 억지로 자리에 앉게 했다. 버스가 읍내 터미널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려 장이 선 시장 골목골목을 산책하듯 기웃거렸다. 신발가게를 확인하는 엄마의 걸음걸이는 그날따라 사뭇 비장해 보였다. 딸의 발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번만큼은 마음에 드는 신발을 꼭 사고야 말리라는 다짐이었으리라. 그렇게 한참을 돌아 몇 번쯤 와 본 적 있는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백오십 있나요?”

  “잠시만요.”

  가게 주인아저씨는 구석구석에 있는 많은 신발 가운데 골라 서너 켤레를 들고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신발가게의 250은 네 켤레가 다였나 보다. 보나마나 내 마음에는 절대로 들 리 없었다. 내가 원하는 신발은 네 켤레 안에 없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신발을 보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며 짜증스러운 말투로

  “엄마, 그냥 가자. 운동화 사줘.”

라고 인상을 썼다. 내 사춘기의 반항은 그때가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날 구두 사기는 포기였다.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원하는 구두를 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다. 정말 원하지 않았더라도 구두를 사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결국 운동화 파는 곳으로 방향을 돌려 큼지막한 250 크기의 운동화를 사서 귀갓길에 올랐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늘 있는 일이라 포기하는 일은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았다. 지금도 콤플렉스 중 하나가 신발 사러 가는 일이다. 큰 치수가 많은 지금도 신발을 사러 갈 땐 어김없이 소리 없는 한숨을 쉬며 크기를 묻곤 한다.

  ‘이백오십 있나요?’

  나는 운동화를 좋아한다. 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유용하게 신을 수 있어서다. 가끔 덥기도 하고 무거울 때도 있지만, 크기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 좋다. 아니, 나는 운동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신발가게가 보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내 몸은 발을 멈추고 예쁜 구두를 바라보곤 한다. 내게 맞는 크기의 신발이 있는지 주인이 알아채지 않게 슬쩍 살펴본다. 사지는 않더라도 맞는 크기가 있으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도 아니면 가게 주인을 한 번쯤 째려보고 갈 길을 재촉한다. 그래서 나의 신발은 내게 있어 언제나 숨은그림찾기 같다.      

  숨은 신발 찾기처럼 나에게 맞는 신발은 늘 구석에 찌그러져 숨어 있다. 흙먼지를 씻어내고 한 귀퉁이에 세워둔 아버지의 검은 고무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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