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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Oct 29. 2024

사계(四季)

모든 날이 좋았다, 모든 계절이 아름다웠다

  모든 계절을 사랑한다. 딱히 하나의 계절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봄이 가장 좋다. 특별히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때로 내가 태어났으므로 좋은 계절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사는 이상, 네 개의 계절은 모두 그에 맞는 특색이 있다. 안토니오 비발디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바이올린 협주곡인 ‘사계(四季)’ 중 눈에 띄고 잘 알려진 곡이 ‘봄’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열두 악장의 모든 음악은 각각의 매력이 있다. 모든 계절에 맞는 분위기의 어울림 등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모든 계절을 겪어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1년은 적어도 겪어야 그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랬다. 어쩌면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지 어떻게 알겠는가. 언제부터인지 연애하고자 한다면 내 무의식 속에 1년 이상은 해보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그래서 1년 반의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하루를 경험해도 다 안다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떤 일을 마주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또 다른 상황을 대하는 반응은 달라질 수 있으니 한 계절은 지나야 할 것이다.

  사람의 일생에도 사계가 있다. 태어나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를 쑥쑥 크고 자라는 봄으로 칭한다. 성인이 되어 가장 활력을 가지고 생활하는 청년기를 여름이라고 말한다. 자식들을 떠나보내기 시작하고, 자손을 얻으면서 자기의 자리에서 우뚝 서기도 하는 자리를 가을에 비유하기도 한다. 노년기는 하얀 머리칼처럼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 겨울을 닮았다. 모든 계절이 그렇지만, 사람마다 좋은 시기가 있고, 싫고 힘든 시기가 있다. 어떤 시기가 싫었다지만 모든 시기가 좋기만 하거나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기억의 공간에 조금 더 많이 차지하는 마음의 상태가 좋고 싫고를 결정하는 것일 뿐.

  아이들을 키우는 계절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가장 많았던 때가 아니었을까. 1년 넘는 연애 생활을 하고 결혼했다. 결혼을 결정하는 중간에 첫째가 생겼다. 첫째를 겨우 온전히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도움이 끝난 때에 돌잔치를 했다. 그사이 둘째가 생겼다. 나의 몸 밖에는 큰 아이가, 몸속에는 작은 아이가 노크했다. 몸은 힘들고 피곤했지만 물론 좋았다. 둘째의 돌잔치 즈음 막내가 생겼다. 셋 다 아들이면 어쩌냐는 걱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있어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사랑의 결실이며 이 아이들과 한평생 가족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많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첫아기와 처음 마주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도움이 없다면 존재의 가치나 이유도 없었던 그 조그마한 아기의 초점은 나를 향해 있는 듯했다. 오로지 나만 보고 있었다. 목을 가누기는커녕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5킬로도 되지 않는 무게로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 녀석이 사람다워지도록 노력하는 일이 부모였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자다가도 큰 소리로 울었다. 아니, 소리를 질렀다는 표현이 더욱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버리고 어디라도 가버린 건 아닌가 하는 서러움을 짙게 내뱉는 아기를 더욱더 열심히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둘째가 나왔을 때는 두 아이가 모두 나에게 붙어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나의 체력이 가장 바닥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빠도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원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도 첫째가 아기를 보고 “형하고 놀자.”라며 무언가 의젓한 행동을 할 때는 부모로서의 낙이 생겼달까. 이래서 하나를 키우는 것보다 형제가 낫다고 하나보다, 라며 뿌듯해했다. 둘째는 눈치가 빨랐다. 형이 배우는 하나하나를 조금씩 캐치했다가 행동한다. 말하고, 공부하는 모든 것이 첫째보다 빠른 걸 보고 부모인 우리는 보고 배우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막내는 여자아이다. 딸이 태어났을 때 우리는 모두 진짜인가 확인했다. 아들만 셋인 집이 주위에 많았기 때문인데, 결국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빠만 둘 있는 집에서의 딸은 도무지 딸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분홍색 옷과 핀과 양말과 신발로 대여섯 살 때까지는 어떻게 입히고 장식했지만, 초등학교에 딱 들어가자마자 딸은 ‘핑크색은 싫어.’라고 선언했다. 무조건 검은색을 선호했다. 우리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봄이 지났다. 우리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어릴 때 힘들었지만 기억 속에는 또 좋은 일들이 떠오른다. 아이를 키울 때 몸이 닳고 헤졌지만, 그런 건 또 금방 잊는다. 어느 계절이든 불호(不好)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또한 지나가는 계절 중 하나일 뿐이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중요하다고 믿고 지내는 시간, 사계(四季)가 모두 중요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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