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었다. 여름으로 한 발짝 앞으로 가는 장맛비였다.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빗속으로 돌아가는 그를 상상하며 창밖의 비를 속절없이 바라보았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런 낌새도 없지만, 내가 무언가를 나서야 할 때. 꼭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운명 같은 순간이랄까. ‘우연은 없다.’고 믿는 나는 운명이 되는 때를 감각적으로 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옳든 그르든 해야 할 것만 같을 때다. 그럴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통 안에서 달팽이를 꺼냈다. 상추에 그를 얹고, 반대편 손에는 우산 하나를 들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나의 행적에 토를 달 사람이 없어야 했다. 어쩌면 몇 날 며칠 집 안에 사람이 없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 비가 내리기를 염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오는 비가 반가웠을 수 있다. 습기도 하나 없는 곳에 그를 놓아줄 수 없지 않은가. 갇힌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날 비가 내리는 건 다행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은 많은 의무가 따르는 일이었다. 아이 셋을 키워봤으니 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달팽이는 자가번식을 할 수 있음을 뒤늦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달팽이 하나로도 나에게는 커다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얼핏 들은 얘기로 달팽이는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지 않던가. 예전에 아이들이 달팽이를 키울 때 들었던 정보 중 하나와 다를 바 없었다. 키우다가 버리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요인이었다.
“아이 둘과 셋 무엇이 다르냐.”라고 누가 그랬다. 하나와 둘은 천지 차이지만, 둘과 셋은 별반 다르지 않다나. 지금의 경험을 생각하면 첫째만 키울 때보다 둘째까지 키울 때는 정말 힘들었다. 물론 하나만 키울 때는 화장실에 가서 문 열어놓고 볼일을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몇 분이고 찢어지게 울었으니까. 다행히 둘째가 생기니 첫째에게 아기를 보라고 하고 화장실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먹을 때와 잘 때가 문제였다. 첫째는 엄마를 찾고, 둘째는 젖을 먹여야 하니 양쪽에 하나씩 안고 잘 때가 많았다. 남편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함께 육아할 수 없다고 아쉬워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하니 어쩔 수 있나.
셋째가 생겨서 힘든 건 조금 사라졌다. 첫째와 둘째가 서로 의지를 하며 엄마의 그리움을 조금은 잊을 수 있으니 셋째와 엄마가 무얼 하든 관심사는 많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먹고 사는 일은 더 힘들어졌다. 경제력이 문제라는 얘기다. 외벌이인 우리 집의 경우 엥겔 지수는 50%는 무조건 넘는 듯했다. 엥겔 지수는 소비지출 가운데 식비의 비율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 2020년의 평균 엥겔 지수는 2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 수가 많으면 식비는 어마어마하게 지출된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닐까. 옷은 빌려서 입을 수나 있지, 먹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함은 과거의 내 상황과 이어졌다. 달팽이를 키우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가족의 일원이었지만, 늘 통 안에 갇혀 지낸다는 것 자체로도 나는 충분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도록 인간이 편하고 좋자고 키우는 건 내 머릿속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든 햇빛을 잘 피하거나 죽거나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일 아닐까.
비 오는 날 아파트 한구석에서 달팽이를 놓았다. 수풀이 무성한 그곳에서 상추만 먹고 살던 그때로 돌아가지 말라고 달이에게 고했다. 미안한 마음을 듬뿍 담았다. 내가 데려오진 않았으나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라도 마음껏 살다가 가라고. 나의 판단은 이제 무용지물이었다. 버린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욕먹을만하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달팽이의 껍데기에 닿았다. 순간의 자유일지라도 만끽하길 바라며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