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전날 먹고 남은 음식물과, 지나간 자리의 달팽이 진액들과, 달팽이의 배설물이 한데 뭉쳐질 것 같아 집 청소를 했다. 달팽이 달이는 혼자 독방 안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대처해나가고 있었다. 통을 치우고 수돗물에 솔을 꺼내 들어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달이는 상추 하나를 씻어놓은 위에 얹어두었다. 물가에 있으니 좋은 걸까. 상추에서 벗어나 목을 쑤욱 내밀면서 바닥의 물을 훑어내며 지나가려 했다. 내 손은 바빠지고, 달이가 있는 상추를 통째로 들어 통 안으로 이동시켰다. 달팽이를 키우고 있지만, 정작 흐물흐물한 생명체를 잘 만지지 못하는 나는 상추에서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통 속으로 자리한 달이와 상추를 뒤로하고, 거실 창에 가까운 곳 디지털 피아노 위에 통을 얹어 놓았다.
집이 깨끗해진 것을 확인하며 소파에 앉아 달이를 바라보았다. 달이는 유유히 통 안을 돌며 남아있는 물기를 완전히 빨아먹으려는 듯 지붕 꼭대기를 돌고 있었다. 아, 우리 집도 누가 저렇게 청소해주면 좋겠다. 매일 매일 청소해도 티 나지 않는 우리 집이다.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먼지는 왜 이리 많은지, 정리해도 또 그대로 펼쳐진 많은 물건에 치여 살고 있는 느낌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어서 소파에 쫙 붙어 한나절을 그대로 있던 적 있었다. 그때와 지금이 비슷하다. 멍하니 TV만 틀어놓고, 눈은 크게 떴다 감기를 반복하면서 끔벅이는 시선은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은 채 들려오는 오디오 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치 커다란 달팽이가 우리 집 소파에 붙어 먹이를 찾아 먹지도 않은 채 그냥 숨어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느리기는 또 어찌나 느린지 채널을 돌릴까 싶어 리모컨을 찾아도 귀찮음에 매료되어 눈만 빙글빙글 돌려보고는 손이 나서기를 포기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뭐 그리 중요한가. 내용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느리게 흘러가는 지금이 좋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었는가. 달이를 바라보려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이 텅 비었다. 기세 좋던 달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안의 달팽이는 사라졌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얼굴을 오른쪽 왼쪽을 살피며 찾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물청소하고 달팽이를 같이 하수구에 흘려보낸 걸 기억 못하고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어디가 아프지 않고서야 그런 걸 잊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피아노 위 통에서 나와 점프라도 했단 말인가. 뚜껑은 누가 열어주었을까. 내가 분명히 꼭 닫았는데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아노 앞에 다가섰다. 주변을 샅샅이 보았다.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떨어지진 않았으리라. 나의 시간만 가지 않은 것인지, 달이의 시간이 가속된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다. 빠르다.
달이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더군다나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했다. 손에 놓고 애지중지할 정도는 안 되더라도 얼마나 열심히 돌보고 있었던가. 집안에서 빨리 찾지 않으면 물가에 가지 않는 이상 죽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건조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너 또한 그렇게 두진 않으리라 다짐하며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파 아래를 살펴보고,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봐 테라스의 화분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에이,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나오겠지.
찾았다. 테라스 창밖에서 보이는 달이의 모습이 보였다. 짙은 갈색의 껍데기가 창에 매달린 보랏빛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거실로 들어와 피아노와 커튼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안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밖에서는 보이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커튼을 젖혀 들어 올렸다. 그곳에 달이가 있었다. 먼지가 많은 구석진 곳을 황량한 사막처럼 달리고 있었다. 달이는 일 미터가 넘는 높이의 피아노를 내려와 이미 한 구석을 차지하였다. 빠르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느리다, 느리다 생각하고 말해왔던 달팽이의 생각지 못한 속도감에 압도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을 누비며 살게 둘 수는 없을 터, 얼른 딱 붙은 달이의 등껍질을 잡고 세게 들어 올려 통 안으로 넣었다.
누가 언제까지 느리다고만 할 것인가. 꾸준한 속도로 한 방향으로 나간다면 분명 빨랐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나오는 거북이도 달팽이보다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갈 것이다. 빠른 건 상대적이다. 나 역시 빠릿빠릿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집중하면 분명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