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수필 교실을 다닐 때였다.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를 처음 배우는 시기였다. 다양한 작품들 가운데 손광성 수필가의 <달팽이>가 눈에 띄었다. ‘오체투지의 말 없는 순례’를 하는 ‘달팽이’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끈질긴 묘사에 반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수필을 써야지 하면서 글을 읽고 배웠다. 나의 마음을 듬뿍 담고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에는 수필집을 보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구매하거나 얻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야 수필집 안의 내용들을 보고 싶었다. 이미 수필집 《달팽이》는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고, 내가 구하고자 할 때는 절판되었다. 여기저기 뒤적이다 겨우 중고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내 손에 수필집 《달팽이》를 넣을 수 있었다.
수필집 《달팽이》에는 다양한 수필들이 있다. 언젠가 감자 이야기를 할 때 인용했던 <감자 타령>이나, 음식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상추쌈>, <수박 예찬>이라는 수필 등이 담겼다. 달팽이의 매력에 처음 반해서 사게 된 책이었지만, 결국은 수필가님의 글에 반하게 된 책이지 않을까.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른 곳에도 눈이 살펴졌다. 어떤 글이든 담담하면서도 세밀한 어조로 쓴 단단한 글체가 마음에 들었다.
책으로 보는 즐거움이 또 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봐도 다양한 글을 보게 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좋았던 건 수필가님의 그림이다.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어 글맛이 살아난다고나 할까.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하신 걸 보면 그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작가님의 스케치를 보면 ‘나도 한 번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의 책을 낼 때 글을 넣기도 하고, 그에 맞는 그림이나 나를 특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가하겠다고 다짐했다.
중고로 구매한 책 앞뒤 빈자리에 누군가의 글이 써 놓았다. 수필집에 대한 감상과 함께 자신의 꿈에 관한 일을 적었다. 흘려 쓰는 글씨체에는 자신이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을 느끼게 했다. 수필가님의 모습을 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게 되는 일까지 내 눈에 띄다니.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 중고 책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연모의 마음을 내비치게 된다.
다른 작품도 좋지만 그래도 최고는 역시 <달팽이>다. 달팽이를 보면 날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외형은 그렇지 않다. 달팽이는 사람들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고, 조그맣고 귀엽다. 나는 키가 크고, 귀엽지도 않다. 달팽이의 성질이나 하는 모습이 비슷한 것은 아닐까. 소극적이고 조용하다. 그에 비해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하면 참지 못한다. 천천히 나아간다. 무슨 일을 하든 끝까지 하는 편이다. 시력이 그리 좋지 않지만, 자세히 보려 눈을 가까이 둔다. 후회도 없다. 후회한들 금방 잊어버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달팽이 관련 책도 몇 권 구매했다. 달팽이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권오길 교수님의 생태학적인 달팽이 이야기를 보며 수필을 다듬었다. 달팽이의 기본 구조나 다양한 달팽이들의 삶에 관한 내용을 좀 더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어서일까. 달팽이가 더 좋아졌다.
나와 같은 사람을 보면 참을 수 없다. 너무 하는 게 같아서 답답하다고나 해야 할까.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똑같이 그러고 있으니, 날 닮은 아들과 딸의 고집스러운 내 행동에 가끔 불편하다. 누굴 닮아서 그렇게 하나 싶다가도 날 닮았으니 어쩔 수 있나 생각도 한다. 우리 집에 왔다가는 모든 가족, 동물과 식물들이 나의 성격을 닮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같이 살아보니 어쩔 수 있나. 날 닮았으니 또 후회하다가 잊고 또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리라.
가족이라는 타이틀에 묶여서 만난 지난 세월이 모두 하나의 운명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달팽이처럼 쭉 앞으로 직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