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는 마땅히 화장품이 필요했다.
아내에게는 화장을 할 수 있는 화장품이 없었다. 출산 전에는 그래도 꽤 다양한 화장품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화장을 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많았고 조금 무관심한 사이에 화장품들은 사라지거나 지나치게 오래되어 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화장품들도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지 오래. 화장을 하기 위해 앉아 있는 아내의 화장대에는 너무 초라한 몇 개의 화장품만이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는 아내의 화장을 위해 정말 오랜 시간을 밖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집 앞에서 독서에 몰두하게 만들었던 것도 반은 아내의 늦잠, 그리고 절반은 아내의 화장이었다. 그 시절 아내의 화장은 진하지 않았지만 정밀했고, 화장품들은 꼼꼼하게 자신의 위치를 잘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내의 화장은 주먹구구식이다. 원래 역할을 해야 하는 화장품이 없기 때문에 다른 화장품으로 대체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내의 화장한 모습은 예쁘지만 화장을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아내의 화장품으로 장난을 할 때마다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나마 몇 안 남은 화장품을 들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화가 치민다. 하지만 아내는 괜찮다는 말만 연발할 뿐, 신기하게도 나만큼 분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아내의 생일에는 화장품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화장품을 하던지, 머리를 새로 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는데 역시, 아내의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생일 한참 전부터 선택을 종용했는데 생일이 돌아와도 결정이 나지 않는다. 화장품 값과 머리 하는 값 사이의 저울질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마음은 둘 다 하라고 하고 싶은데, 아내는 자신을 위해 둘 다하기에는 지나치게 헌신적이었다. 아내의 결정 장애가 심해지면 둘 다 하라고 압력을 가할 양으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이 다른 고민이 끼어들었음은 몰랐다.
생리를 안 해. 두 줄인 것 같아. 두 줄이 아닌가?
두 번의 유산과 다시 기다림. 아이는 우리에게 쉽게 오지 않았다. 수년을 기다렸지만 유산은 생각보다 아내의 몸을 많이 상하게 했고, 마침내 우리는 아이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였고,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반대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상처 받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부부들의 일화가 그런 것처럼 아이를 포기한 순간 큰아이는 우리 곁에 왔다. 우리는 부모가 될 준비가 지나치게 되어 있었고, 아내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그러하듯 아이에 대한 사랑이 곧 육아의 경험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로와 불면의 밤과 근육통이 우리를 괴롭혔고, 큰 아이가 주말 아침 스스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들을 정도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간 사이, 우리 둘이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되는 시점에 정말 극적이게도 둘째가 왔다.
나는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아내는 첫아이에게 동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둘째가 우리에게 왔을 때 적어도 아내는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출산 과정은 많은 통증을 동반했지만, 육아는 비교적 순탄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경험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아이 둘을 똑같이 사랑했지만 확실히 육아에서의 시행착오는 적었다.
남자들은 아이들을 기르면 얼마나 딸아이가 예쁜지 아들이 얼마나 든든한지에 대해 서로 경쟁하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기 전에 잠을 깊이 잘 수 없으며, 하룻밤에도 몇 차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안고 재우다가 근육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어깨에 염증 때문에 한의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을 때 예쁘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흘리며 이것이 부모를 얼마나 곤란하게 만드는지, 아이들이 쉼 없이 돌아다니고 식탁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얼마나 많은 휴지와 물티슈를 사용하며 꼭 여벌 옷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도 말해주지 않는다. 특히 아빠들이 그렇다. 힘들고 불편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거나, 힘들고 불편한 것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아빠가 다 양육자는 아니므로.
부부는 아이들을 당연히 사랑한다. 하지만 둘만의 시간을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원한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는 시간을 말이다. 9살과 4살, 두 아이를 둔 부부는 이제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큰 아이가 자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릴 때마다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생일날, 흐릿하게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는 이런 기대를 모두 삼켜 버리고 말았다. 아내의 화장품과 미용실도 함께. 사십 년 인생에서 꼭 아이는 하나쯤 있으리라고 생각했었고 둘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셋은 내가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숫자였다. 그리고 나는 늘 넷이 완벽한 숫자라고 생각했었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저녁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아내의 말에 뜨끔하기는 했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걱정을 했고, 많은 갈등을 했다. 하지만 걱정을 하고 갈등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즉,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자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혼자 다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축복하고, 시한부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보자고 말이다. 어차피 아이를 어찌어찌할 배짱이 나는 없다. 그리고 이미 생겨버린 생명을 반기지 않아야 하는 종교적 윤리적 이유도 내게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여자아이라면 정말 예쁘겠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아내의 입덧과 아내의 진통과 아내의 모유수를 생각하며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아내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태어나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서 뽀뽀하라고 시켰다.
아내에게 생일 축하편지를 적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생일 축하편지 대신 생일 축하 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줄 생각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선득선득하게 만드는 셋째가 정말 우리에게 왔는지 100%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고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은 정말 희미하며 나이는 사십 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한 수많은 생각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아내와 함께라면 그리고 우리 두 아이와 함께라면 또 다른 가족을 맞이하는 일을 가능하면 기쁘게, 가능하면 덜 고통스럽게 겪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요새는 자꾸 사랑한다는 말을 잊는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보다 더 고맙고 더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 말을 하는 것을 자주 잊는다. 내일을 위해 결심을 하나 하기로 한다. 셋째가 우리에게 정말 왔건 오지 않았건 우리는 좀 더 사랑한다고.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그 말을 좀 더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셋째가 왔건 오지 않았건 올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적어볼 생각이 든 밤이다.
오늘 서귀포 날씨는 맑았다. 오후에는 비가 왔고 습했지만 우리는 피곤했고 아이들과 아내는 일찍 잠들었다.
대체로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