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될까 했지만 감사하게도 아기가 바로 찾아와 주었다. 내가 직접 지어먹은 한약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만 한약을 먹은 것은 아니다. 남편이 잠깐 몸이 안 좋아지자 한약을 내가 지어준다고 하고 그 약에 틈틈이 정자 운동성을 개선한다고 알려진 약재들을 몰래(??) 넣어 먹였다.
<주수별 증상 기록>
4주차 증상 : 배가 사르르 아프다. 내가 계획한 일인데, 감사해야지 왜 스트레스를 받을까?
계획임신이라고 해도 머리가 새하얘지고 마음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임신 4주차에는 배가 사르르 아프고 대변도 자주 보았다. 그때는 임신을 해서 배가 아픈 것인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민성 장 증후군의 증상도 겹쳐 있었던 것 같다. 대변보면 통증이 완화되고 사르르 아픈 것이 시험 볼 때 과민성으로 아프던 복통과 양상이 비슷했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겠지?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이 막중한 책임감이었다. 난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은데, 나한테는 희생정신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나한테 모성애가 있었나, 나도 엄마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세상이 갈수록 요지경인데 이 아이를 아름다운 세상에서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끊임없이 나오는 질문에 나 혼자 끙끙대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더 이상 머리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4주 차의 복통은 사라졌다. 정말 스트레스성 복통이었던 것 같다.
5주 차 증상 : 소화불량이 시작되었다. 내과 환자들의 짜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랫배가 사르르 아픈 복통은 사라지고 이제 위가 꽉 막힌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와우. 소화불량 환자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인상 찌푸린 그 얼굴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환자의 마음은 겪어봐야 더 잘 알게 된다더니 그분들의 (몸도 답답하고 마음은 더 답답한) 그 심정을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두 숟가락 입에 넣고 나면 속이 꽉 막혀서 들어가지 않는다. 아직 구토는 시작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6주 차 증상 : 소화불량이 여전하였지만 심한 날, 안 심한 날이 격일로 나타나 좀 살 것 같았다. 나만의 입덧 해소 방안을 찾고 있다.
임신 전에는 잘 체하지도 않고 장염도 잘 걸리지도 않고 내 소화기는 튼튼했는데 속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 입덧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고(VAS3에서 5 정도 왔다 갔다) 나만의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한의학에서는 입덧을 습열 혹은 비위허약으로 본다. 내 비위(그러니까 소화계)는 그다지 허약해 보이지 않는다. 비위허약자는 보통 마른 사람이 아침에도 헛구역질을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나는 튼실하고 아침 헛구역질은 별로 없었다. 나는 습열에 가깝다고 (내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6주 차 어느 하루, 습기 가득 찬 곳에 있다가 토한 적도 있고, 손발에서는 열이 나는 것 같은데 에어컨에 있으면 몸이 시원해지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까지는 먹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중완혈을 누르면 정말 아프고 꽉 뭉쳐 있어서 여기만 지압해 줘도 좀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속이 울렁울렁 거리는 느낌이 들 때는 매실을 먹으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7주 차 증상 : 6주 차에서 더 이상 심해지지는 않았다. 아기 심장 소리를 생각하며 버텨보기로 했다.
주 수가 넘어가며 증상이 심해진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다행히 나는 괜찮은 날, 괜찮지 않은 날이 섞여 있었다. 당기는 음식은 오로지 시큼한 냉면, 막국수, 비빔면, 가끔 라면 등이었다. 우리 아가에게 정말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싶은데 엄마는 식초 겨자만 찾고 있다.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고기랑 과일이랑 잔뜩 사 왔는데 고기는 정말 먹히지 않고 과일도 예전만큼 들어가지 않는다. 7주 차에는 산부인과에서 심장 소리를 들었다. 속이 좀 답답해도 우리 아가를 생각하며 참아보기로 했다.
8주 차 증상 : 가슴이 더 커져서 속옷을 사러 갔다.
몇 달 주기적으로 오시는 환자분이 있었다.
오랜만에 본 환자에게 나는 "살이 좀 빠지셨네요"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선생님은 살이 더 찌셨네요"였다. 웃어넘겼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임신해서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지금 찌는 살은 순전히 내 살이라는 것을 알기에 변명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관두었다. 아직 내 자궁은 배로 올라오지도 않고 저 아래 있을 텐데 이 뱃살은 무엇일까. 가슴도 더 커져서 속옷을 사러 갔다. 사이즈가 맞는 것이 없어서 브라탑만 사고 서둘러 나왔다. 속상하다.
<어이없기도 하고 웃겨서 써보는 남편의 증상>
4주 차 : 남편도 임신 소식에 기뻐하기는 하였지만 가슴을 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에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였다.
5주 차 : 잠을 잘 못 자더니 결국 잇몸이 아프다고 치과를 갔다. 아니, 잇몸 아픈 것은 보통 임산부들이나 아프지 않나? 자기도 잇몸이 너무나도 아프다고 자기한테 관심 가져달라고 난리다.
6주 차 : 잇몸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더니 신경 치료 등 치과 진료를 보고 몸이 다 나아서 이제는 땡기는 음식을 줄줄이 말한다. 내가 땡기는 음식이 없다니까 은근슬쩍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눈치를 보다가 시킨다. 또 한 번은 나에게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편스토랑에서 본 삼겹살 구이라며 삼겹살 바비큐를 해주었는데 내가 한 입도 못 먹자 본인이 전부 다 먹어버렸다.
7주 차 : 이번에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고 하자 자기는 짜글이가 먹고 싶다며 짜글이를 시켜 먹었다. 2인분에 고기 추가까지 시켰는데 나는 몇 입 먹고 못 먹었다. 남편은 그럼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먹는다며 매운 짜글이로 밥 3그릇을 뚝딱했다. 그러고는 속이 쓰리다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먹으니까 속이 쓰리지.... 하지만 다음날 굴하지 않고 속이 쓰릴 때는 먹어야 풀린 다며 보리굴비를 녹찻물에 말아 야무지게도 먹었다. 아 물론 보리굴비도 내가 원해서 간 곳이 아니라 본인이 땡긴다고 찾은 곳이다.
(이렇게 욕을 많이(?) 써 놓았지만 그래도 남편이 나와 친구들 먹으라고 삼계탕도 해주고 과일 화채도 해주었다. 욕 다해놓고 칭찬이라도.. 애써 뒷마무리를 하기 위해 사진이라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