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50. 동정을 유발시키려고 하는 것-동정이란 영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동정을 입증해야 하지만, 동정을 갖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왜냐하면 불행한 사람들은 어쨌든 동정을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동정에 대한 열망은 자기만족을 향한 열망이며, 더욱이 이웃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 동정심은 지극히 자기애에 빠져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19. p.78)
나는 가끔, TV나 뉴스에서 불우한 이웃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 때, 마음 한편에 뭉클한 감정이 이는 것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실제로 작은 정성을 보탤 때, 왠지 모를 뿌듯함과 만족감이 마음 한구석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타인을 돕는 행위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러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정말 순수한 연민과 공감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혹시, 타인의 불행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거나, 그들을 도움으로써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려는 숨겨진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니체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동정심이라는 감정의 이면에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동정심은 겉으로는 타인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내는 자신의 선함을 과시하고, 타인보다 나은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일 수 있다. 진정한 인간적인 연대는 이러한 자기만족을 위한 동정심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마치 차가운 겨울, 누군가에게 따뜻한 외투를 건네는 행위가 단순히 나의 따뜻함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추위를 진정으로 헤아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구절은 니체의 이러한 비판에 깊이를 더한다.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이나 일방적인 베풂은 진정한 의미의 ‘돕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넘어, 그 고통의 깊이를 함께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 진정으로 동참하려는 마음가짐이다.
니체와 신영복 선생의 주장은 언뜻 보기에 동정심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란 극단적인 입장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니체는 동정심이라는 감정이 가진 자기애적인 그림자를 경계하며, 피상적인 감정적 반응이 아닌,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신영복 선생 또한 일방적인 도움이나 연민이 아닌,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수평적인 연대를 통해 진정한 인간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