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내 잘못이 아니다 _8화
그들은 ‘여자는 결국 애 낳으러 집에 들어가면 끝!’이라고 당연한 듯이 말했다. 나의 전임자가 힘들게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임신하고 바로 퇴사했기 때문인 듯한 그 말은, 아직도 능력과 상관없는 성차별이 만연하는 현시대의 단면이겠으나, 남녀를 불문하고 받는 정신적 고통이야말로 집으로 들어가게 하는 첫 번째 이유다.
B 대리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일 년여 전부터, 이 회사에 몸 담고 있던 성실함의 대명사 같은 사람이다. 외모에 비해 많은 나이에 처음 놀라고 유부남이란 소리에 두 번 놀란다. 대구 사투리로 서울말을 하며, 배시시 웃는 동글 한 느낌이 참 순박한 인상이다. 이전 상사에게 디자인 능력에 대한 질타를 항상 들어왔는데, 내가 온 뒤로 칭찬을 너무 많이 받아서 좋다며, 일하기를 좋아하던 B 대리였다. 그렇다! 채찍은 필요 이상 휘두르지 않았다. 칭찬이면 충분했다.
회사는 늘어나는 일과 불어난 식구들로 인해 확장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회사라는 명분 하에 불철주야 끊임없는 일에 시달리면서도, 회사의 규모가 커지는 것에 대해 다들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이끄는 제작팀은 나를 포함해 총 6명이었고, 그중 B 대리는 제작팀의 유일한 남자 직원이었기 때문에 K 대표와 L 국장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40대 미혼인 나 또한 언제 결혼하고 관둘지 모를 일이니, 유일한 남자 직원인 B 대리가 마지막까지 남을 사람이고, 내가 이 회사를 떠날 즘엔 B대리가 ‘실장 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그를 특별 지도할 것을 은근히 지시했다. 나 또한 충성심과 친절함으로 똘똘 뭉친 B 대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관리가 들어갔다. B 대리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여 그를 괴롭히는 직원을 퇴사시켰다. 그의 업무량도 적당히 조절해 준다. 그리고 능력 향상을 위한 도전 과제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특별한 관리가 부담스러워였을까? 과중한 업무에도 언제나 웃던 B 대리가 무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길을 잃은 양처럼 헤매기 시작하더니, 결국 회사에 나타나지를 않는다. 회사만 오면 숨을 쉴 수가 없어, 회사 문 앞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가 수차례였다고 한다.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에서 혼자 들어와 본인의 업무를 처리하고, 동틀 때쯤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일이 한 달여간 지속 됐다. 모두가 우려하던 공황장애가 B 대리를 덮친 것이었다.
B 대리는 L 국장과 이 문제에 대해 자주 상담을 했다. L 국장도 그 병에 대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조언을 해줄 수 있었고, 직장 상사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그리고 B 대리에 대한 회사의 바람들을 의논하는 듯했다. ‘채찍’인 나는 B 대리를 더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친철한 ‘당근’인 L 국장이 상담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B 대리에게 한 달 휴가가 주어졌다. 휴가를 다녀온 B 대리는 약간 호전된 듯하더니, 1주일 후엔 심각하게 병세가 악화됐으며,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조처를 취하는 것뿐이었다. B 대리가 공황장애를 쉽게 극복할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예상이 빗나가자 그들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조바심을 설득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B 대리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B 대리의 거처를 두고 나에게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B 대리는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버려지기 직전이었다.
“너 이제 회사에 나와야 해!”
강다짐을 받아내려는 L 국장의 전화를 받고, 결국 B 대리는 퇴사를 결심했다고 했다. 회사에 돌아올 마음도, 의지도 없다고 했다. 결국 B 대리는 퇴사 처분을 받는다. B 대리의 빈자리는 곧 다른 직원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1년이 더 지나, 나도 회사에서 버려졌다. 이유인즉, 내가 B 대리를 공황장애에 빠트린 장본인이고, 다른 직원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어 모두들 ‘이 실장 때문에…’로 퇴사 유행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억지춘향으로 끼워 맞춘 이유였지만 ‘혹시나’ 하는 그 조그만 의심은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더랬다.
완벽히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B 대리와 오래간만에 통화할 기회가 생겼다.
나 : 이제 와서 물어보긴 좀 그렇지만…, 혹시 그때 내가 너를 많이 힘들게 했니?
B 대리 : L 국장이 그렇게 말해요? 저 실장님 때문에 회사 관둔 거 아닌데요? 오히려 L 국장 때문에 관둔 건데요? 아시다시피 제가 엄연한 ‘가장’이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나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매달이 마이너스인 생활이..., 일만 열심히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L 국장과 상담을 많이 했거든요. L 국장이 그런 저의 고민을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는 게 진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어느 날 그가 저에게 새로 바꾼 자기 외제차 자랑을 하는 거예요.
“B 대리도 이런 차 한번 타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처를 크게 받았어요. ‘그렇게 나의 고민을 듣고 깊은 상담을 했던 L 국장이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을 나에게 하다니!’ 그의 철부지 같은 자랑에 허무한 생각이 들면서, 나와했던 모든 얘기들에 그는 공감한 척 만 했다는 걸 알아 버렸죠. 그때부터 무기력에 빠졌어요. 그 후엔 L 국장만 보이면 숨을 못 쉬겠는 거예요.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실장님이 저 때문에 힘드셨다는 것도 알아요. 고마웠어요. 그때.
내가 B 대리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진실의 소리였다. 나의 20여 년간의 사회생활 중 한 번도 타인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의도치 않게 그리 된 적도 있고, 고의적인 적도 있다. 그러나 B 대리에게는 절대 그런 악의를 품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의심했던 것은, 타인에 의해 일종의 ‘그런 사람’으로 세뇌를 당해 버렸기 때문이리라. B 대리의 증언으로 이제 와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억울함도 없다.
단지, 나를 믿지 못하고 하찮은 의심으로 ‘내가 또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나?’라는 질문으로 나를 학대하던 그때의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이 조금 나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