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진 Oct 31. 2020

허무와 혐오 사이

4장 : 허영이 사라진 자리에 재능이 반짝인다 _ 3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다면나는 그것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인간 존재의 확장은 무엇에 관심을 가질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고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그 반짝이는 것을 찾았을 때의 끌림은 온전하지 못한 것 들에게는 매우 위험하다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나에게는 회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시각디자인과에 지원한 동기가 단지 성적이 조금 좋았고졸업 후에 직장을 찾기가 수월한 이유뿐이었으니 말이다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허무가 덮치면서나의 관심은 회화에 대한 철학과 사조그에 대한 이론의 갈망 그리고 그것을 내 손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사로 잡혔다

 고갱(Paul Gauguin)도 40대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나도 늦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마구 그려 댔다하지만 그것은 그림이 아니었다사진과 똑같이 그려내는 프린트 같은 작업이었다나만의 철학이 없는 그림은 나를 금세 지치게 만들었고 흥미도 사라졌다

화실에는 현재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작가 선생님들의 출입이 잦았다화실 원장님의 학교 동기이자 친구 분들인 것이다그중에는 꽤 유명한 분들도 있다그분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단면들을 보았다그리고 약간은 실망했다.

너무나도 세속에 물들어버린 화가의 삶은 참으로 사회생활과 다를 바가 없구나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화가는 이곳에 없다!’ 

 

내가 눈만 제대로 뜨고 있다면 관심거리에 대해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수시로 나타난다. 화실에는 언제나 다양한 기획의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었다회원들에게는 회화에 대한 견문을 넓혀 주고작가들에게는 본인의 작품이 가진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작가의 방이라는 프로그램이 그중 가장 인기가 있었다격주마다 현직 작가의 작업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 대범하고 획기적인 기획이었다작가의 작업을 엿본다는 것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회원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이벤트였던 것이다.

프로 작가가 본인의 작업 과정을 대중에게 노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원장님과 친분이 있는 작가 들만도 꾸려졌다그렇기에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은 명단에 없었다그리고 주로 그림의 주인이 될 사람의 사진을 앞에 놓고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진행됐으므로, 진정한 작가의 방이 될 수 없는 한계 또한 있었다.

나는 K 작가의 작업 과정을 눈 앞에서 보고 싶었다말을 주제로 언제나 파격적인 화법을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한눈에 반하게 하는 매력과 에너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나는 작가를 지목했고원장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K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나는 나의 초상화를 의뢰했고 그것은 현장에서 사진이 아닌 나를 모델 삼아 그려지기를 원했다프로그램 사상 최고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주변의 관심은 나조차 흥분과 기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적어도 이번 주만은 내가 그의 뮤즈였다의상 컬러와 작품의 분위기를 작가와 함께 조율하는 과정은 그 어떤 것들보다 나를 중요하게 만들었다내가 없으면 이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와의 초상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20명 남짓의 갤러리가 모인 가운데 나는 화가와 갤러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무대 중앙에 다리를 꼬고 앉아 포즈를 잡았다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고두 시간여 만에 나의 만족스러운 초상화가 완성이 되었다나의 허영은 지금까지 살면서 최고치의 만족감에 가득 차 올랐다. 2주 후, K 작가의 개인전이 인사동 M 갤러리에서 크게 열렸다빨간딱지가 붙은 나의 초상화는 전시장 한편에 조명을 받으며 걸리게 되었고전시도록에도 실렸다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치 공연이 끝나면 무대의 조명이 꺼진 듯곧 암흑으로 둘러 쌓였다.

 

반짝이는 것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중독과 비슷한 그것은 불만족으로 만들어진 충족되지 못하는 그것에 대한 욕망이다반짝이는 순간의 강력한 힘에 압도당한다는 것은그 순간 내가 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그 반짝임의 원천이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그리고 그 잠깐의 빛이 소멸하면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지기 때문이다난 단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산 소비자였을 뿐그 그림은 나의 그림이 아니었다.

이런 시도는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고나를 움직이는 것도 전혀 없는 허무만을 가져올 뿐이다그 허무는 생각보다 후유증이 컸다한동안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킬라와 카리브리스 사이(Between Scylla and Charybdis)에 끼어 있는지도 모른다한쪽에는 허무주의적이고 무의미한 삶이 있으며다른 한쪽은 의미심장하지만 혐오스러울 수 있는 삶이 있다.”

 

반짝이는 빛만 좇는 중독적 허무를 택할 것인가의미는 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혐오적인 삶을 택할 것인가선택은 필수다두 가지밖에 없다고에이…. 

다행히도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거에서 일종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제1 운동자는 자신이 지닌 완전성의 매력을 통해 다른 모든 존재들을 움직인다.”

 

내가 찾은 답은 이것이다.  자신이 그 반짝이는 빛이 되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을 들썩이게 하는 온전한 것 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그것에 내가 끌려 듯이 다른 온전치 못한 것들에게 내가 빛이 되면 될 것이다그렇다면 선택을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지만선택을 안 해도 되는 선택은 더욱 멋지지 않겠는가.





이전 24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