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적당선을 유지하십시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 말은 우종영 작가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나온 말이다. 어제 필사할 거리를 찾으면서 큰 깨달음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말이기도 한데,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나는 어떤 한 사람과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는 사이가 된 사람에게는 한없이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다. 정확히는 나의 이기심과 욕망 때문인데, 나는 그런 사람의 세계 자체를 가지고 싶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관계는 유리로 만들어진 꽃병과도 같기 때문에 나의 휘몰아치는 호기심으로 그것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 사랑하고 편하고 친한 사이일수록 말도 험하게 해서는 안 되고, 행동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누구나 아는 사실들이고 예의지만 나는 그게 어려운 것 같다. 궤변을 늘어놓자면 나의 이 신경 쇠약증 때문이리라. 아프니까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건 이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사회의 기계와도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나는 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건 저항해버리면 된다. 무저항은 죄는 아니지만, 저항하면 편하다. 오히려 저항이 죄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무저항은 모범이다.
어쨌든, 우종영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은 이 자연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나 자신한테도 타인이(그 사람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넘어와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있는 법이다. 시쳇말로 선 넘지 말라는 게 그 말이다.
아, 또 뭔가 깨달은 부분이 있다. 좀 더 궤변을 늘어놓자면, 또 한 가지 위에서 말한 나의 욕심의 원인은 모성애 때문이 아닐까. 이 모성애가 내가 그 사람의 전부이고 싶고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심리가 강렬하게 일어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되도록 유의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일수록. 이건 나쁜 게 아니라 너무 착해서 무지한 거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하고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상의 주장은 왕양명의 사상이었나. 우습지만 철학도 글을 쓸 때 참 많이 도움이 된다.
그렇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고 팔과 입술이 닿일 간격에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달라붙어 있으면 숨이 막힐 테니까. 너무 끌어안고 있는 건 애착인형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나는 사람과 만나고 있는 거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강인한 사람이더라도 유리 대하듯이 조심히 대해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정 없어 보일까봐 더 다가간 건데 역시 인간 관계란 너무 어려워서 회의감이 들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 참,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서로에 대해서 좀 더 간절하고 그리워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좀 더 애틋해서 설레는 일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거고 다시 한번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날 테지만 이것도 내 욕심이란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걸. 아침에 일어나면 온종일 네 생각 뿐. 이런 낭만적임은 두 번 다시는 겪지 못할 일. 기회는 단 한 번. 사랑은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열정적으로 간절하고 의지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사랑의 희극적 결말은 달성감과 성취감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의 거리 유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