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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12. 2023

걸으면서 얻은 것

걸어서 출퇴근한 지 1년이 됩니다. 작년 이맘때 택시가 잘 안 오면서 학교까지 걸었습니다. 차 없고 버스 시간 맞추기 어려워 샛길로 걸으니 30~35분. 눈 오면 길 미끄러워 40분 넘게 걷고, 마스크 끼면 안경에 김 서려 안경 벗고 걸은 날도 여러 번입니다. 처음엔 바빴는데 차츰 습관이 되었습니다. 한겨울 아침과 한여름 오후 아니면 나름 걸을 만합니다.


걸으면서 얻은 것이 제법 많습니다. 차비를 아꼈고, 걸음이 빨라졌으며, 기초체력이 늘었습니다. 가끔 버스나 택시 시간이 맞으면 타지만 답답할 땐 일부러 걷습니다. 집에서 있었던 묵직한 일은 등굣길 맑은 공기에, 학교에서 버거운 기억은 퇴근길 밝은 하늘에 실어보냅니다. 잰걸음으로 한 발 두 발 걷다 재학생이나 졸업생 만나는 기쁨은 덤입니다.


걷다 보면 계절의 흐름이 보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지는 하늘, 햇빛, 풀과 꽃과 나무들이 보입니다. 아주 가끔 여유가 있으면 쨍한 하늘과 오래 담고 싶은 풍경을 휴대폰에 남깁니다. 그러면서 삶을 길게 보고 숨은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한번은 출근길에 찍은 사진을 수업 중 교실 TV에 띄우니 "우리 학교 앞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전화위복(轉禍爲福).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한다는 네 글자를 1년 내내 품었습니다. 새옹지마와는 또 다른 축복이었던 1년을 돌아보며 언제 올지 모를 요행을 바라기보다 제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성실함을 채웁니다. 계획대로 되어도 감사하고, 가끔 돌아갈 일 있어도 숨은 기쁨이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습니다. 걸으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출근길에 얻은 풍경. (20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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