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서의 기록 2
신라 하면 떠오르는 건 몇 가지다. 석굴암, 불국사, 화백회의, 6두품 제도 화랑과 원화 제도. 삼국통일과 선덕여왕 정도다. 아 김유신이랑 장보고도 있네. 비교적 이야깃 거리가 많이 나오는 이 나라의 옛수도 서라벌. 시내 어딘가 조금만 파도 온갖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인 지금의 경주다. 한 번은 수학여행으로 한 번은 거래처 미팅 때문에 간 적이 있다. 진행했던 일 때문에 자료를 찾아보느라 도서관을 뒤졌다. 그렇게 파면 팔수록 신라는 지금은 그저 유물과 옛 느낌이 나는 고즈넉한 관광도시일 뿐인 경주라는 테두리로는 가둘 수 없는 곳이었다. 아름답고 찬란했을 뿐 아니라 엄혹하고 잔인하며 배타적인 곳이기도 했다.
기원후 800년대에 통일신라 시절이 보통은 많이 조명된다. 그때는 청해진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역도 활발하고 외지인들도 서라벌 시내를 거닐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금관이나 금귀걸이, 비단벌레 장식 투구와 같은 왕족과 귀족의 금 장신구. 또한 금으로 된 각종 불상들은 신라가 '금'을 사랑하고 숭상하는 나라였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하게 한다.
중국의 동쪽 칸수의 맞은편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
산이 많고 왕이 많은 나라이다.그곳에는 금이 많다. 신라로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 정착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
이븐 쿠르다드비 <왕국과 도로 총람(A.D. 846년 편찬)> 중
이 책 <황금의 시대, 신라>는 이 찬란한 통일신라 문화가 꽃 피기 200년 전 신라를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련되고 화려하고 조화로운 신라가 아직 세상에 나타나기 전의 이야기이다. 5세기 신라는 세력이 미약했다. 회사로 따지자면 백제의 지사 급인 왜가 내물왕(마립간)의 아들 중 하나인 미해를 볼모로 잡고 있었고 툭하면 협박을 해왔다. 본사인 백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신라는 그 백제와 왜를 쫓기 위해 가장 힘이 세고 세련된 문화를 지녔던 고구려에게 원병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 대가로 고구려의 눈치를 보고 살았으며 나머지 아들인 보해가 고구려의 볼모로 잡혀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눌지왕으로 두 동생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눌지왕은 후대 조선의 왕 인조가 그랬듯 형제를 견제한다. 이 부분은 참 익숙한 대목이다. 나라가 몇 번을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아버지와 아들 피를 나눈 형제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시기하고 살해하고 질투하고...변하지 않는 패턴이 유구하게 내려온다.
문화라는 건 나라가 일단 먹고살 만해야 그 토대 위에 꽃 필 수가 있고 또한 국제적으로 다양한 사상과 문물이 오고 가야 발달하는데, 그 당시 신라는 여러모로 이 나라, 저 나라에 눌려서 기를 못 펴는 상태였다.
소설은 그 상황을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 묘사한다.
총 3개의 챕터로 된 이 책은 책 속의 책 형태를 하고 있다. 한인규 교수가 동료들과 역사유적을 탐구하면서 꿈속에서 옛 고구려 국내성의 신녀를 보는 장면이 첫 챕터이고, 고구려에 볼모로 가있던 보해 즉 갈문왕이 고구려 신당의 신녀 선화와 결혼해 다시 서라벌로 내려와서 생활하는 것이 두 번째 챕터, 다음으로 신라에 불교를 전해준 호자와 그의 아들 호두와 고구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지막 챕터다. 꽤 재미있는 형태의 책이다. 역사소설이라기엔 좀 건조하게 상황을 묘사하며 누구 하나 영웅시 하지 않는다. 또한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판타지처럼 시간 회귀나 뭐 다른 장치가 아닌 아닌 역사학자가 발견한 사실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구조를 차용, 매우 설득력 있게 조립되어 있다. 역사학의 팩트를 쭉 설명해 주다가 어느새 이게 픽션인 줄도 모르게 픽션의 숲으로 들어오는 구조다. 그리고 픽션이기는 하나. 그 모든 사건의 배경과 인물 장치가 역사적인 사실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비록 이 책의 제목이 <황금의 시대, 신라>이지만. 사실 이 책은 고구려의 황금문화에 대해 더 깊게 조명하고 있다. 신라의 황금문화와 금 숭배의 시작은 다름 아닌 '고구려'부터였다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보통은 고구려는 전투 국가나 넓은 영토, 우리 국토 중에서는 북쪽의 추운 바람을 안고 사는 쪽에 있어서 왠지 투박하고 군사문화가 발달하고 세련됨이 없을 거 같았으나 오히려 반대였다.
오히려 신라가 외세의 침입과 내부의 견제와 정치 다툼으로 문화를 발달시키기에 미약해서 문화의 수준이 투박하고 세련된 맛이 적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위는 북한이 고증해서 재 제작한 고구려 단청으로 어찌보면 조선시대 단청보다 훨씬 세련되고 섬세한 맛이 있다.아래 사진의 귀걸이도 그렇다. 신라에서 출토되었지만 '고구려 귀걸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기를 잘 만들어 전투력이 강했으면, 그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기술과 금속을 다루는 연장이 충분히 괜찮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갈고 닦은 실력이니 금제장식을 잘 만들 수밖에 없었겠지.
이 금(金)문화는 서라벌에 있었던 고구려 거리의 대장장이로부터 전해져서 신라에 뿌리박았고, 자신들을 금인이라고 불렀던 김(金)왕조의 욕망을 자극해 신라를 금이 가득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게 이 소설의 한 줄기다.
그리고 이 금붙이들은 왕족과 귀족을 위해 쓰여지다가, 불교가 신라에 본격적으로 뿌리박게 되었을때 온갖 불상들과 불교용품들을 금으로 치장하는데 쓰이게 된다. 그게 지금 우리가 경주 곳곳에서 캐내는 '유물'로 증명되고 말이다.
다시 소설속으로 들어가자면 신라는 보해의 아내 선화가 한 금치레걸이가 최신 유행이 되어, 귀족들이 '고구려풍'을 숭상하기 시작한다. 신라 입장에서는 세련된 선진문명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는 꽤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던 서역 여래의 종교인 '불교'도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보해와 미해는 처음에 이 부분을 함께 걱정해 '금인대'를 구성해 인위적으로 알지 신앙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해와 미해는 마음이 갈린다. 왜에 볼모로 있었고 아끼는 신하가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한 경험이 있는 미해. 보해는 미해에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고구려에 모든 것을 빼앗길 거라며 한때 신라를 공격했던 백제와 왜의 힘을 빌려 고구려를 몰아내자 하고. 미해는 왜에서 경험했던 일을 되새기며 '백제와 왜'는 절대 믿지 마라 하고 보해의 뜻에 제동을 건다. 결국 보해는 미해에게 자결을 권하고 보해에게 있었던 브레이크가 풀려버린다. 한때 고구려 왕에게 호의를 얻었고, 고구려 장수와도 꽤 막역했던 보해는 고구려의 볼모 시절에 느꼈던 두려움과 치욕을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는 듯 신라의 토속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하고 핍박한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와 종교 금속 기술까지 오고 갔던 고구려 거리를 파괴해버린다.
상당히 담담하게 쓰인 이 상황은 생각해 보면 참 무심하고 잔인하며 무시무시하다. 왜 그때 신라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포용하지 못하고 폐쇄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호자와 호두가 와서 선화의 병을 고치고 금세공 기술을 전해주며 '서역 여래'가 몹쓸 귀신도 또 신라의 알지신과 신라를 파괴할 존재도 아님을 알린다. 결국 보해는 자기가 했던 일을 후회하며 죽음의 자리에서 불교를 받아들인다.
지금은 유교보다 더 오래전 우리나라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던 불교가 조선시대의 천주교처럼 위정자들에겐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음을 볼 수 있었다. 하긴 싯다르타 자체가 네팔 사람이니까.
신라가 잠에서 깨서 눈을 뜨기 전 꿨던 혼란스러운 악몽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 혼란스러움 속에서 결국 다양한 갈등을 거쳐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포옹하게 되는 과정을 부여줬다. 매우 자연스럽지만 감상적이지 않게 표현된 이 소설책이자 역사책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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