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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phin knows Mar 03. 2023

W "경계인"

10곡의 노래와 10개의 이야기

언제나처럼 바람이 부는 이곳에서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투표 결과 2대 1로’ 마지막 트랙에 실린 ‘경계인’이다. 일단 ‘전자음악의 귀재’들이 빚어낸 기품있는 어쿠스틱 사운드가 귀를 솔깃하게 한다. 이 곡은 배영준이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를 생각하고 쓴 것.“‘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거든 신문·잡지를 보지말고 스팅의 신보를 들어라.’라는 말처럼 음악에 동시대에 대한 고민이 담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교양은 우아하게 앉아서 차 마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읽을 줄 아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박상숙 기자,  [生生인터뷰] 4년 만에 2집 앨범으로 돌아온 그룹W, 서울신문, 2005.03.11


이성대신 공포가 초래한 야합,
야만이 드리운 그림자에 다친 사람
2003년 9월22일 가족들과 함께 37년 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송두율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 ⓒ 연합뉴스


유신 시절 독일 유학을 떠났던 학자 집안의 아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용 컴퓨터를 발명한 물리학자 아버지를 가진 그는 그야말로 금수저였다. 한국전쟁 때도 아버지는 대학교수였으니까.

뭐 그대로 갔었으면 그러니까 영/미권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타고난 총명함으로 계속 상도 받고 인정받으며 한자리를 잡았으면, 그 간의 고난은 없었을거다.


이 분이 가장 최근에 집필한 책인 <불타는 얼음>을 쭉 읽어보았다.

송두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송두율이 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 않고, 그저 글자의 길을 따라 그 글자 한마디로 학문을 어떻게 더 잘 배울 것인가 호기심을 갖고 걸어온 듯하다. 때로는 정치적인 상황과 위험보다는 학자로서 학문탐구에 매료된 소년 같은 모습이 보여서 뭔가 맘이 아팠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주위에선 이 사람이 뭘 꾸미고 획책한 양 몰아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송두율 교수가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 집안인 외가를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세상을 떠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 많은 지역 중 전북에 자리 잡은 아버지.

제주도/일본/그리고 수 십 년 동안 대놓고 차별과 혐오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던 물과 곡식이 넉넉한 고장 전라도.
태어날 때부터 송 교수는 경계에서 살아서 경계인으로 사는 게 익숙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에서 만약 일정한 시기에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왔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런 시절 조금 더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해 머물렀던 독일에서 '간첩조작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이름들이 거기에 들어있었고, 아마 젊은 송두율에게는 그런 일까지 있는데 한국에 다시 돌아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주친 북한 출신의 한 사람을 만나 학자적 호기심으로 북한을 잠깐 방문하게 된다.
만약 그가 유럽의 한 작은 국가의 시민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그 일이 그가 가진 수많은 얼굴과 특징들을 다 삼켜버리게 된다.

그는 그저 국내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려던 사람이었다. 그 조그맣고 힘없는 나라에서는 국민에게 줄 제대로 된 급여는 없어도 해외까지 연락을 넣어 학자의 밥줄을 끊고 민주화 모임에 폭력배를 투입한 힘은 있었나 보다. 그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송두율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내가 처음 송두율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한 기사 때문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사회 분위기가 무척 좋았을 때 독일서 오랫동안 살았던 철학자가 귀국을 했고 그러다 갑자기 무슨 간첩사건에 걸려서 귀국하자마자 구류되었고 마지막엔 그를 가장 유명하게 한 '법정 최후진술'의 일부를 읽게 됐던 것.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이 겨우 1년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조국을 등지고 다시 독일로 가야 했다. 휴학을 하고 등록금 마련을 하려고 아르바이트 몇 탕 뛰느라 바빴던 그때는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그러나 수년 뒤 극장에서 경계도시2라는 다큐를 보게 됐고, 그 사건을 찬찬히 톺아보게 됐다.


수구는 패닉 상태로
히스테리를 부렸고,
그와 친구라고 자청했던 먹물들은
행여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질까
침묵하고 내뺐다.


이 총명한 학자가 겪었던 사건은 결국 이 나라에 묻어있는 그 '전쟁 트라우마'와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아 아직도 전염병처럼 돌고 있는 사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세상 다 싫어 병이 더 도져버렸다. 그런데 이 분은 참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한다. 체념 속의 낙관 이 책의 제목처럼 불타는 얼음 말이다. 그가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하긴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상처를 받았어도, 또 하필 그때 용기를 내어 그가 처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외치며 그에게 대놓고 안부를 전한 이들이 있었다. 참 그렇다. 나쁜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송두율 교수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자기가 어릴 적부터 살아온 일을 찬찬히 그리고 쉽고 솔직하게 그려준 이 책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안 그래도 내가 다카키 마사오(A.K.A. 박정희)를 무척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세계적인 음악가인 윤이상을 그 딸이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절까지 줄기차게 괴롭힌 데 있다. 딸이 누구를 보고 배웠겠는가. 심지어 윤이상 선생의 사후에까지 그 분의 명예를 축소하고 더럽히려했다, 난 이 책이 윤이상 선생이 그저 위대한 음악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물심양면 애쓴 분인 걸 보여줘서 울컥했다.

그럼 그렇지. 그놈이 그러니까 윤이상 선생을 미워했겠지. 자신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품격과
인격 그리고 지성과 재능. 무엇보다 자신은 절대로 택할 수 없는 이타적인 삶. 는 생존이 아니라 욕심으로 그 길을 택했고 기시 노부스케의 막역지우가 되었다.
식민지 출신 최후의 일본 군인은 역겨운 선택으로 자기와 남의 인생을 박살 내일쑤였으니 살해 당하기 전에도 이미 반은 미친 상태였을듯... 슬프게도 그 인간이 뿌려놓은 독소가 지금도 이 나라를 계속 병들어 앓게 만든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송두율 교수에게는 계속 빚진 느낌이 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비겁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서 맘이 싸늘해질 때
그저 순수하게 뚜벅뚜벅 뒤에서 칼을 꽂든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든 입을 막은 손을 뿌리치고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살아내는 '어른'이 있다는 거. 그 존재 자체가 무한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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