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사무엘하 12장 23절 하반절
모리스 라벨이 파리 음악원에서 가브리엘 포레에게 배울 때 쓴 곡 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라벨 스페셜리스트이자 같은 프랑스 사람인 베르트랑 샤메유가 아주 자연스럽고 풍부한 감성으로 해석해 줬다.
작년 4월, 한 회사와 거의 1년 정도가 걸리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계약했고, 그 때문에 사무실에 일주일에 몇 번은 드나들고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까지 그렇게 출근하다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뒤, 이후 다시 재택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평소처럼 일을 하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게 된다.
오랜만에 듣는 그 아이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태도는 매우 사려 깊고 조심스러웠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000 후원자님 되시죠. 후원자님이 n년동안 함께했던 00가 작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팬데믹도 있었고 아무래도 현지 사정 때문에 빨리 전해드리지 못했네요.
어제 알게 되었는데 바로 알려드리면 또 마음이 어려우실까 봐 기도하고 고민한 뒤에 연락드렸습니다"
그분이 민망스러울 필요도 조심할 것도 없었다. 그분은 자기 일을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고 있으셨고 전혀 내게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집이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들고 계단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 총대 메신 거 다 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말씀드렸다. 인간에 대한 희망도 없고 어쨌든 하루하루 일하고 식료품 사고 세금 등등 내고 살면서 정말 낙담해서 살기 싫었을 때 수년간 그 아이가 내 동아줄이 되어 주었다고.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모양 빠지게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분도 함께 울었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그때 내가 좀 고장 난 것 같았다.
또 말씀하셨다. 후원금을 그동안 모르고 내셨을 테니 그 아이 사망 후 내신 후원금 돌려드리겠다고... 그 단체는 컴패션이다. 그럴 줄 알았다. 괜찮다고 했다. 그냥 다른 아이 위해 써달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또 터졌다. 세수를 하고 다시 들어가 일을 했다. 집에서 전화를 받았으면 정말 좋았을 뻔했다.
제작년 11월까지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그 아이가 살았던 나라의 언어를 더듬더듬 써서 번역이 필요 없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여섯 살 배기가 죽기 직전의 나이가 되기까지 내가 별로 해준 건 없었다.
얼마 안 되는 후원금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한국에서 그 아이를 발견해 후원자를 이어주며 단체를 정직하게 운영하는 분들이 훌륭한거다. 또, 현지에서 그 아이를 알뜰살뜰 돌봐주시는 분들이 무엇보다 큰 수고를 감당하고 있다고 여겼고 감사했다.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길 바랐다. 그러지 않나. 어떤 아이가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더 무시하고 상처 주지만 누군가가 옷매무새라도 신경 써주면 혹시 뒤에 누가 있나 싶어 함부로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 정도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 더 그 아이에게 신경을 쓰게 된 건 2021년 초반에 그 아이가 갑자기 편지를 보내고 나서였다.
암에 걸렸다고. 이해 안 가고 화가 나긴 하지만 기도하면서 주위의 위로받으면서 이겨내고 있다고 기도해 달라고.
그 뒤로 나는 좀 더 시간과 마음을 써서 계속 꾸준히 편지를 보냈다. 괜찮냐고 잘 지내냐고. 그렇게 답장이 왔고 11월을 마지막으로 편지가 끊겼다. 그 이후로도 계속 편지를 쓰고 작은 맘을 보냈다. 그냥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대대적인 수술을 시킬 돈도 없는 무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저울 하나를 머릿속에 두었다. 양팔 저울 말이다. 저렇게 살고 싶어 하는 열 살 배기의 목숨과 매일을 어려운 숙제처럼 여기고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살해당하느니 조용하게 요양병원에서 혹은 좀 더 일찍 일반병원 병실에서 누구에게도 폐 안 끼치고 빨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하는 나라는 사람의 목숨.
신에게 고려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맞바꿔도 전혀 문제없고, 한이 없다고.
누가 봐도 그 애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더 급선무 아니겠냐고. 그러나 내 유치한 기도에 yes라는 응답을 듣진 못했다.
그 아이가 나보다 먼저 세상에서 떠나기 거의 직전, 계속 편지를 쓰고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하던 10월 경에
신기하게도 라벨의 저 곡이 계속 귀에서 맴돌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꿈도 꿨다. 몇 년 전 사망한 여자 가수 하나가 꿈에 나왔다. 중학교 때 데뷔했던 가수였는데 나중엔 잘 풀리진 못했다. 그러나 꿈속에선 데뷔시절의 재능 있고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해, 유명프로듀서의 주목까지 받고 있었고 내심 즐겁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장면 전환 그 가수가 프랑스풍 옷. 검고 하얀 보닛과 드레스를 입고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은 프랑스 인형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서는 장례식을 했다. 그 가수는 내게 '그 인형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그렇게 난 잠이 깼다. 잠이 깨고 나서야 나는 그 가수가 예전에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일을 감각해내기도 한다. 이게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 느끼는 감각 같은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소식을 들은 뒤 나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그대로 살아갔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이 개월이 지나 내 남동생의 딸. 지금도 참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지는 예쁜 조카가 태어나기도 해서. 그쪽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난다. 직접 만나거나 목소릴 들어보지도 못한채 비뚤비뚤한 글씨체와 사진으로만 만났던 아이. 그 아이 또한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던 누군가가 낯선 나라로 보낸 길지 않은편지와 작은 정성에 담았던 것을 전해 받았을까 궁금하다. 혹시라도 아이가 힘들때 누군가는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팍팍한 환경을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그 아이가 살아보지 못했던 열한 살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본다. 나보다는 더 밝고 아름답게 모두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으면서 사는 20대의 그 아이, 30대의, 40대의 노년의 그 아이를 그려보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