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야기 | 인생에 이런 오답
이 글은 브런치북으로 엮기 위해 재업로드한 글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hhy134/5)
울산과 경주, 그 사이 어딘가. 문 닫은지 50년이 넘은 폐교가 있다.
나는 그 곳에서 4년째 살고 있다.
폐교는 1층 건물.
오래됐지만 익숙해 정다운 분위기를 풍긴다.
벽은 20cm 두께의 콘크리트 벽.
그 중간에 위태하게 껴있는건 1겹짜리 샷시.
덕분에 겨울에는 칼바람이 들어온다.
화장실은 쪼그려 앉는 수세식.
구체적으로 수세식과 푸세식, 무려 두 종류가 있다.
푸세식은 건물 외부에 있다.
일을 보고 나면 톱밥과 왕겨를 한 스쿱 떠서 뿌린다. 거름화를 위한 밑작업이다.
휴지를 쓸 수 있다. 다만 휴지가 다리 사이로 빠지면 주우러 내려가야 한다. 함정이다.
게다가 옛날 아이들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덩치가 큰 남자들은 매우 비좁다고 한다.
수세식은 건물 내부에 있다.
물을 내릴 수 있다. 환경을 위해 휴지는 사용 금지. 호스로 뒷물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수압의 한계로 옆 칸에서 물을 내리면, 또 다른 옆칸에선 물이 차길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복도는 긴 나무 복도.
걸으면 삐그덕 거린다. 하지만 이래뵈도 난 5년이나 쌓인 노하우로 ‘잘’ 걸을 수 있다. 소리없이 샤샤샥-
운동장은 2022년 태품 ‘힌남노’로 흙모레가 쌓였다.
바람이 불면 모레바람에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학교를 나오면 양 옆에 동화처럼 펼쳐있는 벚나무 가로수길,
봄이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벚꽃,
한 구석엔 200년도 더 된 무성한 팽나무와 그 아래 시원한 그늘,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리는 은행나무,
밤마다 운동장 위에 뜨는 달과 별.
팽나무 아래 평상에 누우면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
폐교와 그 주위의 시골 분위기가 모든 불편함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무려 4년이 흘렀다.
살다 보니 살만 하다
왜 그런 폐교에서 사냐고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어쩌다 보니 살게됐다”고 답한다. 살다 보니 살만 하다.
첫 해 겨울은 너무 추웠다.
1월은 도망갈 곳도 없는 추위였다. 덕분에 추위가 계속되면 우울해진다는 것도 경험했다.
두 번째 해, 겨울을 단단히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최소한의 공간을 잡고 리모델링을 했다. 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에는 단열재를 넣고, 2중 샷시를 설치했다. 방문은 나무문에서 샷시문으로 교체했다. 샷시 문에는 뽁뽁이를 붙였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이라는 한계는 못 넘는다. 가을이 오자 복도는 코 시릴 듯이 추워진다.
그래도 지금은 세상 어디보다 편히 쉴 수 있는 나의 ‘집’이다.
요즘은 배추 농사가 한창이다. 올해는 6,000 포기의 배추를 심었다.
올해 2023년은 가물었던 작년과 반대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다.
덕분에 배추 뿌리부터 물러지는 무름병이 전국적으로 많다.
그래서 무름병이 오지 않도록, 우리 농장엔 미리미리 난각칼슘제를 뿌리는 예방 작업에 뼈를 갈고 있다.
지난주에 수확한 고구마와 땅콩도 예년에 비해 양이 적다.
적어진 일조량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오늘은 쌈배추를 수확했다.
배추 겉잎 5장은 광합성을 위해 놔두고, 그 속잎을 떼어낸 것이 쌈배추이다.
그럼 다시 배추 속 배춧잎이 자라 2-3일 후에 또 수확할 수 있다.
이제 차차 날씨가 어두워져 밭에 나가는 시간을 늦췄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6시에 밥을 먹는다.
아침 7시반이면 밭에 나가 일을 한다.
12가 되면 학교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1시 반 정도가 되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저녁 6시가 되면 이제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해 학교로 돌아온다.
저녁에는 컴퓨터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단순한 삶. 매일 비슷한 나날들의 반복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서는 1세대로 어머니와 언니의 손을 잡고 뉴질랜드 조기 유학을 갔다.
내가 한국어를 까먹을 때 즈음 돌아왔다. 기억은 안나지만 어릴 때 한국어보다 영어를 편하게 느꼈다고 한다.
나름 치열하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
최저 수능도 필요 없는 전형으로 연세대 경쟁률 높은 과에 입학했다.
매학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교 3학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갔다.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떠났다.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 나온지 9년 차.
폐교에서 농사지으며 산지 4년 차.
같은 부모, 같은 어린시절을 보낸 언니와 참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언니는 반항하는 듯 해도 주어진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스타트업이란 단어 조차 흔하지 않을 때 스타트업에 입사해서, 우당탕탕 하더니 어느 순간 안정되었다. 어느덧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듯 하다.
왜 우리 자매는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됐을까?
어떤 가정환경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 두 인생이 달라지게 됐는지,
각자 선택의 순간들과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각자 시점에서 풀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