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보름 동안 독일생활
늦은 밤 무심코 창밖을 보니 달이 떠 있다. 도톰하게 빚은 송편 같은 달. 일주일 전만 해도 정확히 똑 자른 반달이었는데. 그 순간 마음이 아렸다.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그건 반사적인 감정이었다. 말로 구체화되기 이전에 불쑥 솟아오른 마음.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빠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다는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 거기에 잠시 놀랐다.
스무 살, 그리고 스물다섯, 다시 스물여덟. 처음엔 학교에 간다고 상경한 독립이었다. 그다음엔 취업으로 경제적인 독립, 마지막은 결혼. 그러니까 아빠 나이 스물여덟에 낳은 딸이 비슷한 궤적으로 아빠에게서 멀어진 셈이다. 인생에 있어 부모의 비중이 점점 줄어든 만큼 나와 아빠는 데면데면해졌다. 언젠가 아빠는 오랜만에 전화한 내게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라고 말했다. 거기엔 원망이나 서운한 기색이 없었기에 나는 그걸 흘려들었다. 도리어 나야말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했다. 소식이나 사연은 늘 엄마를 통해 전달되었고, 그 이야기들엔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많았으니까. 나는 서서히 아빠와 멀어져 갔다. 그건 자연스러워 보였다.
더 이상 엄마라는 필터를 통하지 않고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 해석된 아빠 말고, 내가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아빠. 관점이 달라지자 대상도 다르게 보였다. 거기서 기인한 마음이 선뜻 아빠를 초대하고자 했다. 보름, 아빠와 독일에서 보내는 시간. 특별한 일정도 이벤트도 없이, 그저 어수선하던 집이 조금은 정리되었다는 점 하나로 자신 있게 아빠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보름이었다.
꼬마와 아빠의 케미는 은근히 좋았다. 꼬마의 밥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고, 남은 밥술도 헤아려준다. 흘리면 닦아주고 남기면 먹어준다.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말려준다. 수타면 뽑듯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어 말려주는 기술은 내가 어릴 적과 똑같다. 나는 그 리듬에 스르르 눈이 감기곤 했다. 놀이터에 나가면 함께 시소도 타고 자전거 경주도 한다. 나는 벤치에 기대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낮잠 자고 일어나하는 잠투정에 안고 어르는 모습을 보면, 엄마 힘들다 하며 데려가 꼬마의 다리를 주물러줬다. 발코니에 나가 뭐라 뭐라 속닥이고, 머리 맞대고 함께 타요와 띠띠뽀를 시청하는
둘. 아빠와 보내는 일상 동안 몸과 마음, 심신이 고루 편안했다.
자신감을 얻어 즉흥적인 여행도 기획해 보았다. 고속열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도시 뒤셀도르프. 그러나 우리는 그 도시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한다. 꼬마가 목 놓아 노래 부르던 2층짜리 시티투어 버스를 탄다. 놀이터의 정글짐을 오른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잠깐 쇼핑도 한다. 아빠, 우산 쓰세요. 나는 잠바에 모자 있어서 괜찮아. 하니 아빠는 우산을 펴다 조금 후 접는다. 다들 비 와도 그냥 맞는 상남자들밖에 없어서 아빠도 안 쓸란다. 상남자는 우리의 유머코드가 된다. 그래서 상남자들이 머리도 잘 벗겨지나 봐. 부슬비가 두렵지 않은 코리안 상남자와 함께 평점이 높은 한식당에 간다. 한국식 포차 같은 그곳에서 오뎅탕, 닭똥집볶음, 골뱅이무침을 먹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참이슬 덕에 아빠는 싱글벙글이다.
꼬마와 동행하기에 여행의 레퍼토리는 단순해진다. 놀이터에서 놀이터로, 공원에서 공원으로. 주변에 가게도 보이지 않는 강가의 작은 놀이터에서 꼬마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어쩌지, 어디로 들고뛰지, 싶은데 아빠는 태연하게 할아버지 손 잡고 저기 풀숲으로 가자고 한다. 꼬마는 이제껏 밖에서 쉬를 해 본 적이 없다. 페트병 등등을 사용해 본 적도 없다. 괜찮다고, 할아버지가 좋은 장소를 봐두었다고 꼬마를 설득하는 아빠. 주변에 인적도 없다. 그저 오리 두 마리가 어슬렁거릴 뿐이다. 꼬마는 갑자기 놀이터의 작은 자갈들을 한 움큼 쥔다. 쉬를 하고 나서 덮어두어야겠다고. 아빠도 덩달아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는다. 그리고 둘은 손 잡고 풀숲 너머로 사라진다. 잠시 후 돌아온 꼬마의 얼굴엔 안도가,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쉬한 자리에 돌무더기를 만들고, 이파리 붙은 큰 나뭇가지도 잘 덮어주었다고. 그래서 누가 봐도 수상한 영역표시가 완성된다. 뒤셀도르프 다녀갑니다 제대로 인사한 셈이다. 돌아와서도 그런 일상은 계속된다. 아빠는 뭐든 잘 드시고, 피곤한 기색도 없다. 낮잠도 밤잠도 잘 주무신다. 여행 메이트로, 일상 메이트로 손색이 없다. 꼬마와 둘이 자전거 타러 나가더니 우유와 과자 몇 개를 사 온다. 놀이터 다녀오는 길엔 젤라또도 먹고 온다. 동네 풍경도, 마트 구경도 곧잘 하는 아빠. 이 책 읽어보실래요? 하고 건넨 <파친코>를 열심히 읽는 아빠. 1권을 내리읽더니 금세 2권으로 넘어가는 아빠. 펴든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봤다. 그때 다시 실감한다. 아빠가 한국 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네. 다시금 마음이 쓰르르한다.
마지막날엔 드럭스토어에서 선물 쇼핑을 한다. 어린이용 썬글라스 매대에서 꼬마 썬글라스도 구경한다. 민트색을 할까, 핑크색을 할까. 고심 끝에 꼬마는 핑크색을 고른다. 쇼핑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빠가 잠시 어딜 다녀오겠다고 한다. 우리는 젤리를 까먹으며 아빠를 기다린다. 배고프다는 꼬마를 달래는데 저 멀리 아빠가 보인다. 다가온 아빠 손에는 아까의 민트색 썬글라스가 들려있다. 자전거 탈 때 이것도 고글처럼 쓰면 좋겠다고.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다시 사 온 모양이다. 휴, 아빠. 아빠가 이러면 또 내 마음이 아리지. 속으로 생각한다.
정작 배웅하러 간 공항에서 꼬마는 잠이 들어버렸다. 할아버지 가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작별인사는 짧고 담백하다. 나는 아빠에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고 다시 놀러 오라고 말한다. 아빠는 내게 운전 조심하라고 여러 번 당부한다. 어조에 진심이 깃들어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빠를 한 번 꽉 안는다. 출국심사장으로 떠나는 아빠.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웃는 얼굴로 헤어진다. 눈물은 예상 못한 때 났다. 말끔하게 비운 방을 둘러볼 때, 아빠가 드시고 남은 와인을 볼 때. 가지런히 꽂아둔 <파친코>를 볼 때. 할아버지 왜 이렇게 일찍 가셨어? 라고 꼬마가 물을 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요. 내 문장은 단순하고 다정하다. 우리 사이에 남은 마음이 솔직해서 기쁘다. 많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