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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Aug 03. 2024

여름 속 일상

요가, 산책, 한글, 감기, 루시드폴

이곳에 온 지도 6개월째다. 일상의 루틴 같은 게 잡히기 시작했다. 차리고 먹고 치우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의 반복, 그 사이에도 약간의 틈이 생겼다. 매일 아우토반을 달리며 어린이집을 오간 보람이 있었다. 그 여백 위에서 나는 요가 매트부터 폈다.


화면 속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몸을 접었다 편다. 예전보다 몸이 뻣뻣해진 걸 느낀다. 그래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내가 이 부분이 약하구나, 여기에 힘이 필요한가 보다 하는 것들. 같은 동작을 해도 양쪽의 범위가 다르고, 어제와 오늘의 난이도가 다르다. 동작의 사이사이 잠이 쏟아지는 날도 있고, 땀을 뚝뚝 흘리는 날도 있다. 한 점의 미동 없는 선생님과 달리 몸을 지탱한 내 팔은 덜덜 떨린다. 수리야나마스카라 20회를 연속으로 한 날엔 화면을 멈추고 그냥 매트 위에 뻗어버렸다. 30분짜리 수련을 마치고 3일을 근육통에 시달린 적도 있다. 다음 날엔 꾀부리며 하루를 쉬었고, 그다음 날엔 용기 내어 다시 매트에 앉았다. 근육을 파고드는 욱신함, 그런데 그게 은근히 좋았다.


두 달 동안 하루 빼고 매일 수련한 결과, 나는 자신 있게 내가 좋아하는 자세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역시나 사바아사나. 아마 모든 요기니의 마음이 다 같지 않을까 싶다. 수련의 제일 마지막 누워서 몸을 가다듬는 송장자세. 그렇게 누울 때마다 나는 갠지스 강 위를 떠도는 상상을 한다. 혹은 톨스토이가 말했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땅의 크기를 생각한다. 겨우 자기 키만 한 땅. 그러니까 매트 면적 정도 될까. 두 번째 좋아하는 자세는 아기자세. 웅크리고 엎드린 자세다. 오체투지 하듯 이마는 매트에 닿아있고, 두 팔은 접은 다리 옆에 툭 놓아둔다. 이름이 왜 아기자세일까? 하던 의문은 꼬마를 키우며 풀렸다. 아기들은 이 자세로 잘 잔다. 그게 편한가? 싶었는데 고된 동작 뒤 하는 아기자세는 어찌나 편안하고 좋은지.


아기의 마음을 느끼느라 애쓰는 동안, 꼬마는 어린이집에서 뭐라도 배워온다. 까막눈이던 꼬마가 ㄱ과 ㄴ을 알게 되고, ㅣ와 I를 헷갈려한다. ㅐ와 H가 비슷한 것도 신기한 모양이다. '가나다 음절송'이라며 겨녀뎌려며벼셔 하고 노래를 부르더니 그런데 음절이 뭐야? 하고 묻는다. 처음으로 혼자 읽은 문장은 '사랑하는 OO이의'였다. 지난 생일에 써 준 카드의 문구였다. 우리 둘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꼬마를 바라본다. 그리고 감격하고 만다. 몹시 전형적으로 그러나 우리에겐 처음인 만큼 감동은 강렬했다. 한 인간이 문자를 통해 무지와 미혹에서 깨어나는 순간이기도 했으니 아무튼 우주적이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 낱말 카드로 문장 만드는 퀴즈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선생님이 뽑은 카드는 '여름'과 '우산'. 꼬마가 손을 들고 했다는 대답은 이렇다. '여름엔 더워서 우산을 써요.' 놀랍다. 내 새끼 대단해요! 이런 감정이 아니라 뭐랄까. 저 작은 머리에서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는 게 신기하다. 인간의 뇌란 참으로 신비하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이었는데 말이야. 이젠 인과라는 개념도 알고 있다니. 꼬마는 선생님 시늉을 하며 내 눈앞에도 낱말 카드 두 장을 들이민다. 이걸로 문장을 만들어 보라 한다. '나팔'과 '책'. '책에 나팔 그림이 있어요.'라고 답을 하자 그게 아니란다. 그럼 뭔데? 물으니 '나팔을 불면서 책을 읽어요.'란다. 사뭇 독창적이나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는 선생님이다.     

요가와 한글 배우기 사이 많은 산책, 몇 번의 수영장, 친구의 방문, 호된 여름 감기가 있었다. 감기약에 취한 낮잠과 예방 접종도 있었다. 요가로 만든 1kg은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빠르게 소실되었다. (그래서 정녕 귀한 근육이었구나 싶었다) 둥실둥실 뜬 크로아상 모양의 구름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매일 요가를 한 만큼 마음도 좀 맑아지길 바랐으나, 사바세계의 인간에겐 여전히 힘든 일이다. 씨름할 일, 번민한 일들은 계속 새롭게 솟아난다. 그걸 지워주는 건 따로 있었다. 어느 저녁, 달이 앨범을 틀었다. 첫 트랙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툭 열렸다. 루시드폴의 라이브 앨범 <the light of songs>. 달이 목격하기론 순식간에 내 미간이 확 펴졌다고. 순한 표정에 너그러운 얼굴이 되었다고. 노래 하나에 득도하기도 하는 걸까. 달은 이 앨범을 같이 듣던 날을 회고한다. 여름밤, 정동길을 걷다 구세군 회관의 벤치에 앉아 이걸 함께 들었었다. 달려드는 모기를 휘휘 쫓으며. 불안한 눈빛을 하고 우리 앉은 쪽으로 자꾸 순찰을 돌던 경찰도 떠오른다.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기까지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손 잡고 걷던 때를. 첫 차가 달리는 새벽의 세종대로를.

시간은 더 멀리로 흐른다. 앨범 한 장 한 장마다 그걸 듣던 때가 생각난다. 어두운 독서실에서, 늦은 밤 라디오 앞에서. 어쩐지 쓸쓸하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장면들. 같이 공연을 가곤 했던 한참 앳된 얼굴들도 그리워진다. 시 같은 가사를 따라 부르며 남몰래 벅차한다. 그래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 달이 짜 온 여름 여행의 첫날 머물 곳은 로잔. 로잔을 호수 구경도 출장도 아닌, 연방공과대학 보러 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것도 덕질이라면 덕질. 스케일이 좀 큰 덕질이긴 한데 그곳에 가도 막상 오빠는 없는, 십 수년 전 외로운 유학생이던 폴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출발은 내일인데 아직 짐은 하나도 꾸리지 않은, 그저 노래만 있으면 되지 않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베짱이스럽게 여름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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