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s own Seoul

나는 배추전 때문에 이혼한 사람을 알고 있다. (2)

ones own seoul

by 한량

찬 바람이 오스스하게 불어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술을 마셔야 한다. 신촌의 구석진 골목, 더더욱 구석진 위치의 작은 가게에 모여 술을 마신다. 여섯, 일곱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그저 그런 안주들과 술을 시켜놓는다. 그 위로 하나의 유령 같은 연기가 공중을 맴돌고 있다. 그래도 좋았을 때니 아주 한참 전의 일이다. 홀짝 홀짝 잔을 들이켜다 보면 자꾸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설을 쓴다고 모인 우리였으니 이야기를 들려줄 이는 많을수록 좋았다.


k언니도 그중 하나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h언니의 오랜 친구로, 어쩌다 보니 같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모임 사람들 중 결혼한 사람은 하나 없었는데 k언니는 벌써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다 했다. "얘가 왜 이혼한 줄 알아?" 하고 h언니는 싱글싱글 웃기 시작한다. 그렇게 물으니 우리도 궁금해지지만 당사자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해도 되나, 듣고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살짝 고민스럽다. k언니는 달칵달칵 라이터 부싯돌을 돌리더니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인다. 이어 연기 한 모금을 그윽하게 내뱉고서 말한다. "그건 다 배추전 때문이지."


k언니는 만나던 남자친구와 일찌감치 결혼을 했다. 사랑했으니 같이 살고 싶어졌고, 그럴싸하게 같이 살려니 결혼을 하는 게 나아 보였다. 지금보다 더 선택지가 적은 때였으니 이는 당연한 수순 같았다. 딴따다단 딴따다단. 웨딩 마치와 함께 결혼식이 끝나고 언니는 원하던 대로 남자친구와 살게 되었다. 해피 에버 애프터,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남편이 된 남자친구도 잘 모르던 제사에 언니는 불려 간다. 퇴근한 몸 이끌고서 멀리멀리 차를 타고 간다. 서울과 경상도의 거리가 그리 만만하진 않거늘, 마치 옆동네에서 부르는 듯 당당한 어조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도 이제 우리집 며느리가 되었으니 하나둘 알아야 하지 않겠니?" 이제껏 공부하고 회사 다니며 일하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애 차근차근 가르쳐 사람 구실 좀 시켜야겠다는 태도, 거기엔 위엄마저 서려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나 좋은 게 정말 좋은 걸까? 시집에 내려가는 언니의 마음엔 당연한 의문이 일었다. 가서 일어난 일은 안 봐도 뻔한 스토리다. 살면서 고작 계란 후라이 정도 부쳐봤을 언니 앞에 커다란 팬이 놓인다. 이것은 오직 전을 부치기 위해 태어난 팬이다. 비가 오니 김치전이나 좀 먹어볼까? 이렇게 아무 날에나 시시하게 등장하지 않고 아주 특별한 날, 산더미 같은 재료들과 한강수 같은 계란물과 함께 반나절은 족히 지글지글 끓어오를 그런 팬이다. 물론 업소용 사이즈의 콩기름 식용유 통을 옆에 두고서다.


다진 고기에 각종 야채와 으깬 두부를 섞어 빚은 동그랑땡, 손가락 길이로 썬 재료들을 꼬치에 꿰어 굽는 산적, 흔히 볼 수도 없던 상어고기와 통째로 삶은 문어, 얇게 저며낸 동태살로 부치는 동태전과 쑥갓이며 홍고추 고명을 올려 지져내는 애호박전. 그리고 문제의 배추전이 있었다. 배추를 탕탕 두드려 뻣뻣한 기세를 죽이고 계란물을 입혀 앞 뒤로 구워내는 배추전. 언니는 이제껏 이렇게 전을 구워본 적도 없었지만 그중 배추전은 그날 처음 보는 것으로 이름도 모양도 맛도 모르는 음식이었다. 배추전은 이런 음식인가? 구워도 구워도 끝이 없는? 주는 족족 넙죽넙죽 받아먹고서 채근하듯 빈 접시를 들이미는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저 기름진 입술들을 어찌해야 하나?


정신없는 노동이 끝나고 나서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라고 보는 눈이, 거드는 말이 참으로 많다. 게다가 머리카락 켜켜이 스민 기름 냄새에 언니는 계속 메스꺼운 상태다. 그리고 곁의 남편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는 해묵은 말장난도 언니에겐 하나 웃기지 않다. 남의 편만 아니라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인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전 부치던 언니와 지구 반대편만큼의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다. 결혼함으로써 그는 당당하게 '어른'이란 지위를 획득했고, 그래서 남자 어른들만 모인 상에서 축하 인사를 받으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멀고 먼 부엌에 쪼그려 앉은 언니가 튀는 기름에 움찔거리는 사이.


그때 못 마신 술 지금 마시자는 듯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심각하다면 심각했을 사건을 우스개처럼 말한 덕에 분위기는 밝았다. 결혼이 무엇인지, 결코 대등할 수 없는 현실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는 k언니의 말솜씨에 계속 웃었다. 이왕이면 제사 안 지내는 집이 낫네, 이런 평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몇 년 후, 내가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기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사도 없고 배추전 같은 것도 부치지 않는 시집이었으나, 아무렴 배추의 망령은 여기에도 떠돌고 있었다. 퇴근 후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 귀가한 나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택배를 본다. 수신인엔 내 이름 석 자가 똑똑히 쓰여있다. 마냥 보고 있기만 할 수 없는 것이, 이것도 업소용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스티로폼 박스에선 붉은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온 서랍의 밀폐용기를 다 꺼내 담고 또 담아도 결코 다 담을 수 없던 엄청난 양의 김치. 둘 사는 살림에 지나치게 컸던 양문형 냉장고, 그건 곧 김치냉장고가 되었다. 벌건 국물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절대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하다고 전화해야 하는 현실에 어지러웠다.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김치를 보내셨을까? 사랑 아니면 이런 일은 할 수 없을 테지, 절대 할 수 없을 테지. 태양초처럼 뜨거운 사랑에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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