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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y 04. 2024

단톡방에서 꽃피운 노안이야기

마흔 넘으면 사춘기처럼 친구를 다시 찾는다.


1.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때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하곤 한다.

그날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은 특별했다.

친구 한 명이 울먹울먹 하는 표정.

또 다른 사진은 눈물을 찍어내고 있고, 그 옆 다른 애들은 손뼉 치며 웃는 모습.

사진만 봐도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야? 왜 얘는 울어? 너넨 왜 웃어?

흥미진진한 물음에 돌아오는 답이 신선하다.

"물티슈 뒤에 글씨가 안 보인다고 울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도 그 말에 모두 ㅋㅋㅋ를 수도 없이 날리며 웃었다.

그렇다고 울 거까진 뭐야.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지 생각하면서 나도 소리 내어 웃었다.


물티슈 뒷면의 자잘한 글씨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짠 친구는 어릴 때부터 눈이 좋았던 친구다. 안경을 써 본 적도 없고, 늘 1.0 이상의 시력을 자신했었는데 그런 최강 시력을 가진 친구이다 보니 노안이 더 충격적이었나 보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모임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다.


심지어 또 다른 친구는 '그걸 보려면 이걸 써야 돼.'라고 하며 초기 노안을 위해 미세하게 편차를 둔 다초점 안경을 꺼냈다고 한다. 한바탕 눈물을 짰던 친구가 다초점 안경을 썼더니 잘 보여서 또 한 번 울컥했다는 얘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웃음보를 터뜨렸다.

 


스마트폰이 노안을 극복시켜준다. 깨알같은 설명서도 찍어서 확대하면 읽을수 있음

'약 설명서 안보이면 사진찍어서 확대해서 봐.'

'멀리있는 간판 안보이면 그것도 사진찍어서 확대하면 돼.'

갖가지 요령도 공유했다.


2.

어느 날 서류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초점이 잡히지 않고 부옇게 보였다. 안개가 낀 듯 답답해서 눈을 깜빡이며 수 초를 기다렸다. 서서히 초점이 잡히면서 시야가 분명해졌다.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출 때처럼 제 시력으로 보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예전에는 책을 보다가 고개를 딱 들어도 바로 앞이 잘 보였고, 한 곳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획 돌려 옆을 봐도 초점이 안 맞는 경우는 없었다. 라섹수술을 하기 전, 안경을 쓰던 시절에도 근시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이 흐리게 보이긴 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잔글씨가 안 보이는 원시하고는 또 다른 불편함이었다.


안과에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에게 담해봤다.

"마흔 다섯 안팎으로 보통 노안이 옵니다. 원시가 오기도 하고, 가까운 곳 보다가 먼 곳을 볼 때, 거리 조절에 시간이 좀 필요하죠."

"그런 증상도 노안이에요? 근데 마흔넷 딱 돼서 오는 거 너무 정확한 거 아닌가요?"

의사 선생님이 노안을 정해줬나. 그걸 왜  사람한테 따지는 거냐, 물어보면서 나도 어이가 없었다.


허허 웃으며 답하던 의사가 또 다른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환자분은 백내장끼가 약간 있네요."

"네? 백내장이요? 그것 때문에 안 보이는 건가요?"

"지금 당장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그것 때문에 안 보이는 건 아닙니다. 그냥 노안증상이에요."


며칠 후, 청구한 실비보험의 보험금이 지급되었다. 보험금 지급사유가 질병분류코드와 함께 카톡으로 전달되었다.

"초로 백내장"

40대에게 오는, 조금 일찍 찾아오는 백내장이라고 하니 노년 백내장보다는 좋은 병명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3.

마흔 중반에 들어서면서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노화로 인한 질환들이 신기할 만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다. 혼자 곱씹다 보면 새로운 증상들이 두렵고 갑자기 늙은 것 같아 슬퍼지는데 친구들이 함께 겪는다는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된다.

이 초로백내장 사건도 단톡방에 올려 이야깃거리로 승화시켰다.

나 백내장이래, 한마디에 모두들 웃어제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다. 어차피 너도나도 백내장이 코앞이라 서로 위로할 필요가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들로 노화의 징후를 희화시키면서 쾌감을 느낀다.


'백내장은 자외선 피하는 거 말고는 조심할 게 없대.'

'오래된 선글라스는 자외선 차단이 잘 안 된대.'


그 말이 맞든 틀리든 새 선글라스는 상큼한 위로가 되어준다. 선글라스를 좋아하는 나는 이참에 새로운 걸로 한 개 더 살 핑계가 생겼다.


새로 장만한 선글라스를 끼고, 몸과 마음의 건강 비법이라는 하루 만보를 채우기 위해, 햇살이 반짝이는 5월의 나무 사이를 힘차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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