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자본주의 / 베르너 좀바르트 / 문예출판사
자본주의의 기원을 비합법적 사랑과 사치에서 찾는 독특한 책이다. 21세기 현재 시점에 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상이한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국가와 집단이 있겠지만, 어느 사회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 세상 어디를 가도 돈이 통용되고 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사 언제나 교환은 있었고, 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따지기 시작하면 뚜렷한 기원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무엇이 자본주의적인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좀바르트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에 그는 경제학계의 거물이었고, 막스 베버와 한동안 같이 일하기도 했으며 더 유명하기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 시발을 사랑, 그것도 비합법적인 사랑에서 찾았다. 사랑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비합법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지위나 권력 같은 것은 줄 수 없었고 대신에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보상을 통해 자신이 상대방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사치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치는 국가와 왕권의 위대함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몇 대에 걸친 대공사가 필요한 것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사치는 자신이 살아있는 당대에 완성되어야 하며 자신의 애인을 매혹시켜서 자신이 즉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거대 건물이나 화려한 장식처럼 외부에 있던 과거의 사치가 개인들의 집 그것도 집의 내부로 들어왔다. 그런 사적인 사치의 대상이었던 중국 찡더전에서 온 도자기나 실크로드를 건너온 비단, 차 같은 물건에 대한 수요는 중세 영주들의 몰락을 가져옴은 물론 지속적인 동방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재조직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설명이다. 매우 재미있는 관점이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이런 저자의 훌륭한 포인트가 슬며시 뒷전으로 밀려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엔 책 제목이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이었다는데, 지금 제목보다 나은 것 같다. 하지만 나름 당대 최고 지식인의 경제학책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책 표지도 이렇게 구닥다리 도덕교과서처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책의 주요 포인트가 비합법적인 사랑에서 사치가 사회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것임을 생각하면 책이 가득한 서재에 서있는 저자의 엄숙한 모습이 표지로 사용된 것은 좀 아쉽다. 책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저런 근엄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뒷구멍으로 쫓아다닌 비합법적인 사랑을 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